"혼자 나이 들지 않겠다"…1인가구 여성들의 '느슨한 자매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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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혈연도, 혼인도 아니지만 서로의 일상과 노후를 함께 고민하는 여성들의 '느슨한 자매 공동체'가 확산되고 있다. 비혼과 이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살아가는 여성이 늘어나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국내 1인가구는 782만 9,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35.5%를 차지했다. 2052년에는 962만 가구로 늘어 전체 가구의 41.3%에 이를 전망이다. 혼자 사는 삶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그만큼 고립과 돌봄 공백의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통계상 1인 가구가 보편적인 가구 형태 중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우리 사회의 주거와 돌봄, 복지 시스템은 여전히 혈연과 혼인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특히 비혼이나 이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살아가는 여성에게 '누구와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는 단순한 외로움의 문제가 아니다. 아플 때 누구에게 연락할 것인지, 갑자기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를 부를 것인지, 노년의 주거와 돌봄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다.
이 질문에 일찍부터 자신들만의 답을 만들어온 여성들이 있다. 전북 전주의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공동체(이하 비비)'와 서울 은평구의 여성 커뮤니티 '은평시스터즈'가 대표적이다. 출발한 시기도, 공동체의 형태도 다르지만 두 곳에는 공통점이 있다. 함께 살기 위해 반드시 한집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각자의 삶과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주는 방식이다.
비혼여성공동체 비비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잘 살 수 있다"
비비의 시작은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당시 전주의 한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던 6명이 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들이 '비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만났다.
이 초기 여섯 멤버 중 한 명인 봄봄 씨가 최근 비비의 24년간의 여정을 담은 <우리는 혼자 늙지 않는다(도서출판 낮은산, 2026년)>를 출간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봄봄 씨를 인터뷰하며 비비의 그동안의 이야기와 향후 계획을 직접 들어봤다.
봄봄 씨는 "1990년대 제가 20대 후반이었을 때는 결혼보다 경제적 독립이나 일에서의 전문성, 문화를 향유하는 삶이 더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자연스럽게 계속 뒤로 밀리는 선택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부터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비혼모임에서 비슷한 감각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관계를 이어가면서 '결혼하지 않고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구나', '비혼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비혼의 삶을 긍정하게 됐고,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에도 비비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비혼의 의미는 조금씩 달랐다. 모두가 똑같은 이유로 비혼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모임을 이어왔다"라고 덧붙였다.
공동체의 이름인 비비는 어떻게 짓게 됐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첫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이 캐롤 M. 앤더슨의 <단독비행>이었다. 혼자서도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책의 메시지에서 착안해 '비혼들의 비행'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를 줄여 '비비'가 됐다"고 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비는 한 달에 한 번 만나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던 친목 모임에서 생활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그 과정에서 비비가 지켜온 큰 원칙은 분명했다. 공동체 자체보다 개인과 각자의 삶을 중심에 두는 것이었다.
비비의 규칙은 정기모임에 참여하고 월 회비를 내는 정도였다. 그보다 비비가 공동체로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각자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였다.
이어 "합의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되도록 만장일치를 지향했고, 한 명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실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조금 느린 속도로 흘러갔다"며 "공동체가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나아갔기 때문에 비비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비비를 지탱해 온 두 축…'공부'와 '돌봄'
비비를 지탱해 온 실질적인 두 축은 '공부'와 '돌봄'이었다. 봄봄 씨는 "정기모임 때마다 그때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주제를 정해 공부했다. 처음 '비혼'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때는 여성주의를, 모임이 공동체성을 인식하게 됐을 때는 공동체를, 공간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게 됐을 때는 협동조합을, 구성원이 질병을 겪게 됐을 때는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을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다른 몸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공부는 구성원 개인의 성장은 물론이고, 비비가 여러 단계의 공동체로 진화할 때마다 하나의 돌파구가 됐다고 설명했다.
공부가 비비가 변화할 때마다 방향을 찾게 했다면, 돌봄은 구성원들의 관계를 일상 속에서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봄봄 씨는 "돌봄은 주고받는 관계에서, 함께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사소한 도움을 주고받는 것부터 삶의 굵직한 고민을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까지, 서로를 돌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관계를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주거 독립이 일상의 돌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비비 구성원들은 자기를 돌볼 힘을 기르고, 이웃들과 음식과 물건을 나누며,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경찰이나 경비보다 빠르게 출동한다. 주문한 가구를 대신 받아주기도 하고, 집을 비울 때는 반려동식물을 서로 부탁한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돌봄을 주고받고 있다.
비비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방식을 꾸준히 시도했다. 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2010년 문을 연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였다. 봄봄 씨는 "비비의 공동체성은 어떤 하나의 상으로 규정되지 않고 계속 변주돼왔다. 2010년 개소한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 운영은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비비는 여러 형태의 비혼여성공동체를 실험했다. 비비 구성원들이 한 아파트로 주거 독립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이후 더 많은 비혼여성이 이웃으로 살게 되면서 2017년에는 아파트 주민모임 단톡방도 만들었다. 지금은 그렇게 이웃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
24년 동안 비비가 이어질 수 있었던 힘은 결국 변화와 돌봄, 그리고 서로를 맞춰가는 관계에 있었다. 봄봄 씨는 "비비가 공부를 통해 계속 변화하지 않았다면, 돌봄을 실천하면서 신뢰 관계를 쌓지 않았다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비비가 오래돼서 서로 잘 맞는 것이 아니다. 서로 맞추다 보니 이렇게 오래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비비의 목표는 아마 이 사회의 한 시민으로 '함께 잘 살아가기'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은평시스터즈 "1인가구를 넘어 여성 커뮤니티로"
비비와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한 또 다른 여성 공동체도 있다. 2018년 여성 1인가구 공론장을 계기로 서울 은평구에 사는 여성들이 모여 만든 '은평시스터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어느 날, 서울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은평시스터즈 공동운영진 김예진(34) 씨를 만났다.
김 씨는 "처음에는 그냥 동네에서 친구를 만들고 필요한 정보를 나누자는 정도였다. 지금처럼 큰 공동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제 은평시스터즈는 8년 동안 모임을 이어오며 서로의 일상을 돕는 지역 여성 공동체로 성장했다. 현재 은평시스터즈 단체대화방에는 500명이 넘는 '시스터'들이 모여 있다.
은평시스터즈는 먼저 비혼 여성 공동체를 꾸려온 비비를 참고하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운영진 김예진 씨는 "저희도 늘 선배님들(비비)을 찾아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도 비비처럼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정기모임뿐 아니라 구성원들끼리 자연스럽게 생기는 '번개'와 소모임을 통해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거나 등산과 클라이밍을 하고, 제철 과일이나 반찬을 나눠 먹는다. 평소에는 각자의 삶을 살다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나서기도 한다. 코로나19에 걸린 구성원을 대신해 쓰레기를 버려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다주거나, 여행 중인 사람의 고양이를 돌봐주는 식이다. 김 씨는 이를 "아, 나만의 이웃사촌이 있다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공동체가 역할을 한다. 밤늦게 낯선 사람이 집 문을 두드리거나 집 주변을 서성이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올라오면 신고 방법과 CCTV 확인 방법을 함께 찾고, "제가 가서 같이 있어드릴까요?"라고 나서는 사람도 있다. 단순히 취미를 함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는 '진짜 가족'이 된 셈이다.
처음에는 여성 1인가구를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8년 사이 구성원들의 생활 형태도 달라졌다. 이에 은평시스터즈는 최근 '1인가구 공동체'보다 '여성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설명하고 있다. 김 씨는 "어떤 형태로 사느냐보다 가까이 살며 언제든 서로 도울 수 있는 이웃이 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친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비혼 이후의 노후
비비공동체가 시작한 지 24년이 흘렀다. 이전의 비비가 구성원 각자의 성장과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데 중심을 뒀다면, 이제는 '비혼 이후의 노후'를 구체적인 주거와 돌봄의 문제로 옮겨 고민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비비가 함께 마주한 삶의 문제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화와 부모 세대의 노화가 동시에 찾아오고, 질병과 부모 돌봄을 직접 경험하면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봄봄 씨는 "비비는 '(부모님)돌봄 이후의 (나의)돌봄'을 고민하면서 비혼여성의 노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여성주거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비비는 노년 1인가구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공동체주택을 구상하고 있다. 지금처럼 각자의 주거 공간과 생활은 유지하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살피고 필요할 때 협력하는 형태다. 같은 아파트에 각자의 집을 두고 살아온 기존의 경험을 노년의 주거 모델로 확장하는 것이다.
비비는 여성노인의 주거공동체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2013년 개관한 프랑스 파리의 사회임대주택 '바바야가의 집(La Maison des babayagas)'과, 영국 런던의 단체 '나이 든 여성들을 위한 공동주택(Older Women's Co-Housing, OWCH)'이 지어 2016년 입주한 '뉴그라운드'를 탐방하기도 했다.
두 사례를 통해 비비는 여성들이 노년에도 독립성을 유지하며 서로를 돌보는 주거공동체가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국에서도 고령층 1인가구의 주거와 고립 문제가 커지는 만큼 가족 중심 주거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형 주거가 필요하다고 봤다. 비혼여성들의 삶을 살펴본 결과, 친구와 이웃, 안정적인 집이 노후를 지탱하는 핵심 조건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비비는 2021년 중·노년 여성 1인가구 주거공동체 연구를 시작하고, 2022년 '비비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함께 노년을 준비한다는 사실 자체가 비비에게는 중요한 안전망이 되고 있다.
"비혼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택, 혼자 늙겠다는 선택 아냐"
봄봄 씨는 "주거뿐 아니라 돌봄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한층 구체화됐다. 질병이나 간병에 그치지 않고 호스피스와 장례까지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수술을 앞둔 구성원의 보호자가 되려 했지만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었다"며 "이런 일을 겪으면서 '서로 돌봐주면 된다'는 관계의 의지를 넘어, 비혼 여성이 노년에도 존엄과 독립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어떤 제도와 주거 구조가 필요한지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문제 역시 공동체의 중요한 과제다. 비비는 노후의 불안을 개인의 자산 축적만으로 해결하기보다 공동체와 이웃의 연대, 더 많은 친구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여성의 안전과 노년의 경제적 불안, 병원 이용의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있다.
봄봄 씨는 요즘 비비 구성원들과 "시계가 비슷해졌다"고 말했다. 부모와 이별하고,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면서 이제는 서로의 노화와 질병까지 함께 바라보게 됐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누군가를 돌보는 데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도와줘"라고 말하고, 돌봄을 받는 연습도 필요하다고 했다. 비비가 준비하는 노후는 아플 때 부탁할 사람, 위급할 때 달려와 줄 사람, 늙어가는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 곁에 있는 삶이다. 비혼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택이지, 혼자 늙겠다는 선택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의 여성 1인가구 공동체

해외에서도 여성들이 노년의 주거를 스스로 설계하는 공동주택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의 '바바야가의 집'과 영국의 '뉴그라운드'다.
노인이 직접 만든 노인들을 위한 집, 프랑스 '바바야가의 집'
프랑스 파리 인근 몽트뢰유에 있는 '바바야가의 집'은 여성운동가 테레즈 클레르가 구상한 여성노인 공동주택이다. 2003년 폭염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홀로 살던 노인들이 대거 숨진 사건을 계기로, 노인이 삶의 주체가 돼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주거 공간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주민들은 오랜 기간 지방정부를 설득한 끝에 2013년 입주를 시작했다. 이곳은 노인을 수용하거나 일방적으로 돌보는 시설이 아니라, 입주자들이 직접 공동체를 운영하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가능한 한 오래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향한다.
각자의 집에서 살되,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 영국 '뉴그라운드'
영국 런던 북부 하이바넷의 '뉴그라운드(New Ground)'는 OWCH(Older Women's Co-Housing)가 만든 여성 시니어 코하우징이다. 거주자들은 각자의 독립된 집에서 생활하면서 공동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공동 식사와 정원 가꾸기 등 일상을 나눈다. 공동체의 주요 운영과 의사결정에도 직접 참여한다. 입주를 원하는 사람은 곧바로 집을 얻는 것이 아니라 먼저 OWCH 회원으로 활동하며 공동체를 경험하고, 뉴그라운드가 정한 다양성 존중과 상호 배려·지지, 사생활과 공동체 생활의 균형 등의 가치에 동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두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같이 산다'는 것보다 어떻게 독립적으로 살면서 서로 연결될 것인가다. 가족에게 돌봄을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시설에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유지하면서 이웃과 관계를 만들어 노년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비비가 구상하는 여성주거공동체와도 맞닿아 있다.
정주원 기자 simple1@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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