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작품이라더니 친일파 글씨... 유홍준 “사실 확인 미흡했다” 사과
애국지사 박원근 아닌 친일파 박중양 글씨
서예·근현대사 등 전문가 7인 검증 결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7월부터 특별전에서 애국지사 박원근(1912~1950)의 유묵으로 소개한 서예 작품이 친일파로 알려진 박중양(1874~1959)의 글씨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작품이 공개된 지 한 달이 지나 외부 제보를 통해 문제를 인지한 데다 전시 작품 검증 절차가 부실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유홍준 관장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은 박물관이 국민 앞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이에 대해 미흡했다”고 사과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전시한 서예 작품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에 대해 전문가 조사를 진행한 결과, 박원근이 아닌 박중양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박물관은 당초 이 작품을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이 전시실에서 무릎 꿇고 흐느껴 우는 사진이 공개돼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개막 한 달여 만인 지난달 10일 낙관(落款)의 ‘박원근’이 박중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제보가 나오면서 작품을 철거했다.
이후 박물관은 서예·근현대사·고문헌·보존과학 분야 전문가 7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분야별 검증을 진행했고, 이를 종합해 박중양이 일본 유학 시절 남긴 글씨라는 결론을 내렸다.
박물관은 “‘일반시국은’ 유묵과 박중양의 필적을 대조한 결과, 획 처리 방식에서 유사한 특징이 확인돼 박중양의 필적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작품에 새겨진 인장도 박중양과 관련이 있었다. 머리 부분에 찍는 두인(頭印)에는 1932년 말 서예가 김태석(1874~1951)이 박중양에게 새겨준 것으로 알려진 인장 문구와 일치하는 내용이 확인됐다. 박물관은 “유묵에 쓰인 ‘한인(韓人)’이라는 표현은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 유학 간 학생이나 방문자들이 주로 쓰던 말”이라며 “박원근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에 머문 기록이 없지만, 박중양은 대한제국기인 1896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에 유학 간 인물로, ‘한인’이라는 표현을 쓴 시기, 정황과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일본 등 해외 경매 사이트에서 ‘박원근’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된 서예 작품 중에 ‘일반시국은’과 같은 글씨체와 인장을 쓴 작품도 확인됐다. 이 중에는 일본인에게 써준 작품도 있었다. 박물관은 “지하 조직 활동 등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박원근이 해외에 유통될 만큼 여러 점의 서예 유묵을 남기고 일본인을 위해 썼다는 것은 그의 삶의 궤적과 거리가 있다”며 “이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유묵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박물관은 “박원근 지사의 유가족께 조사 경위와 결과를 설명하고 거듭 사과드릴 예정”이라며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전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유홍준 관장은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송구한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전시품 검증 절차를 더욱 강화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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