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국 해군 '구조적 파산'…왜 한국이 메워야 하나

김종대 매의 눈 2026. 9. 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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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거친 압박 속 짙어지는 이란전 파병 가능성
얼마 전까지 "불가" 입장서 왜 갑자기 바뀌었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동력 위한 '거래' 관측도
반도체 등 관세 압박 '협상용 레버리지' 가능성
중동의 미국 함대는 호르무즈에 갇힌 ‘맹탕 함대’
우리 비전투함·초계기 하나 보낸다고 만족할까
한번 발 담그면 구축함·특수부대 등 요구 커질 것
이란 등 전 세계 반미 진영의 격렬한 분노 자극
우리 유조선·상선들 드론 등 공격에 노출될 것
지금은 모호성 유지하며 시간 끄는 지연전 필요
‘해외 파병 국회 동의’ 헌법 제60조 무기 삼아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중동 분쟁 해역에 해군 군수지원함(AOE-II 소양급)과 해상초계기(P-8A 포세이돈) 등 이른바 '비전투 전력'을 파병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여전히 "최종 결정된 바는 없다"며 특유의 정무적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만, 물밑 실무 검토가 상당 부분 진척되었음을 사실상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동 파병에 대해 단호하게 "불가" 입장을 고수하던 정부가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는가. 평화와 국익, 균형 외교를 표방해 온 이재명 정부의 이러한 급선회 이면에는 결코 단순치 않은 동맹의 비틀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지난 2018년 취역한 대형 군수지원함 소양함. 2028. 9. 4 연합뉴스 자료사진

안보 협박, 관세 폭탄, 그리고 용산의 침묵

정부의 돌연한 기류 변화를 추동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거친 압박, 아니 사실상의 '협박'이다. 트럼프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가리지 않고 "한국이 우리의 안보 요구를 거부하는데, 왜 우리가 주한미군 3만 9000명을 주둔시키며 그들을 지켜줘야 하느냐"고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려왔다.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란 비핵화에 관심없다며 "파병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정상 간 통화 사실을 공개하였다. 여기에 지난 8월 한미연합훈련을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축소한 정황까지 겹쳤다. 이는 단순한 주한미군 감축 위협을 넘어, 대북 핵심 군사정보 지원 중단이나 확장억제 공약의 유보 등 실질적 안보 불이익 카드로 한국 정부의 목줄을 죄고 있음을 방증한다.

둘째는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드라이브에 맞춰 한국이 위험천만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다. 역사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윤영관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반대급부를 담보받기 위해 이라크 파병이라는 뼈아픈 고뇌의 카드를 던진 바 있다. 지금 이재명 정부 역시 트럼프의 화려한 외교적 치적을 세워주는 대가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동력을 얻겠다는 식의 '위험한 거래'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셋째는 관세와 투자, 첨단기술을 둘러싼 전방위 통상 압박을 관리하기 위한 '협상용 레버리지'의 유혹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기업들을 향해 미국 내 반도체·배터리 공장 추가 투자를 노골적으로 강요하며 관세 폭탄을 무기 삼아 흔들고 있다. 안보와 경제의 복합 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가 비전투 자산 몇 척을 내어주고 경제적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면, 이는 너무나 안이하고 위험천만한 착각이다.

유지보수 시스템 붕괴로 녹슨 채 멈춰 선 제국 해군

이 세 가지 요인이 맞물려 트럼프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직접 손을 내밀고, 한국 정부가 파병 검토로 성의를 표시하는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계산대로 P-8A 해상초계기나 소양급 군수지원함 정도로 미국이 만족하며 고마워하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미군은 역사상 유례없는 '군사적 과부하'와 '구조적 파산' 상태에 직면해 있다. 얼마 전 중동 해역에서 쉼 없이 혹사당하다 간신히 태국으로 철수한 미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CVN-72)의 몰골을 보았는가. 선체 하부는 시꺼먼 녹과 들러붙은 해조류로 뒤덮여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2일(현지 시간) 태국 촌부리주 램차방항에 입항하고 있는 미 해군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함의 선체 하부가 시커멓게 녹슬어 있다. 2026. 9. 2 촌부리=AP/연합

미국의 군사적 마비는 감정적 과장이 아닌 차가운 숫자로 입증된다. 미 회계감사원(GAO)과 의회조사국(CRS)의 데이터에 따르면, 미 해군의 수상함과 잠수함 정비 창정비(Depot Maintenance) 순기는 이미 파탄 났다. 공공 조선소에서 제때 정비를 마치는 비율은 고작 11% 안팎에 불과하다. 함정이 작전 배치 후 반드시 거쳐야 할 정기 수리가 조선소 부족으로 밀리면서 발생하는 '정비 대기일수(Maintenance Delay Days)'와, 작전 중 돌발 고장이나 노후화로 도크에 묶이는 '비계획적 정비 소요(Unplanned Maintenance Days)'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해군 함정들이 부두에 멍하니 묶여 있는 '작전 손실 일수'는 지난 10년간 무려 1만 5000일을 넘어섰다. 특히 미 해군의 전략적 자존심이자 비대칭 핵심 전력인 44척의 공격원자력잠수함(SSN) 상황은 재앙에 가깝다. 44척 중 정비창에 제때 들어가지 못해 부두에 발이 묶인 '활동 대기(Active Idle)'와 폐선 대기 함정의 적체로 잠수함 전력의 상당수가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수상함 역시 마찬가지여서, 구축함 한 척이 비계획적 수리로 도크에 들어가면 수백 일씩 대기하는 정체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링컨호를 대신해 조지 워싱턴호가 황급히 중동으로 기수를 돌리면서, 현재 태평양에는 미국의 항공모함이 단 한 척도 없는 초유의 전력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기뢰 하나 못 치우는 맹탕 함대, 호르무즈를 빼앗긴 미군

실제 전황은 더욱 비참하다. 이번 중동 위기에서 미군은 연안 작전에서의 치명적 약점을 낱낱이 드러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미 해군에 실전 투입할 수 있는 기뢰제거 소해함(MCM)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연안전투함(LCS)의 소해 모듈 개발 실패와 노후 어벤저급 소해함의 퇴역으로 인해 미군은 좁은 해협 바닥에 깔린 기뢰를 탐색·제거할 독자 수단을 상실했다. 기뢰제거 능력이 없다는 것은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좁은 길목에서 연안전투 능력이 사실상 '제로'임을 뜻한다. 이 때문에 미 해군은 이란 연안에 접근조차 못한 채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 주도권을 이란에 완전히 빼앗겼다. 이란의 고속정, 연안 기뢰, 지대함 순항미사일, 그리고 벌떼처럼 쏟아지는 자폭 드론 앞에서 미 항모전단은 페르시아만 내부로 진입조차 못 하고 오만만 등 바깥쪽 먼바다에서 겉돌고 있을 뿐이다.
오만 무산담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풍경. 많은 선박이 닻을 내린 채 떠 있다. 2026. 06. 03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이란 항구를 봉쇄하겠다며 페르시아만 바깥 원해에서 항모를 장기간 대기시키는 작전 역시 미 해군의 현재 창정비 상태와 보급 여건상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형편이다. 걸프 지역의 미 지상기지 역시 쏟아지는 드론과 미사일을 막아내느라 토마호크 미사일과 사드(THAAD), 패트리어트 요격체계 비축분은 이미 절반가량 소모되었다. 이를 다시 채우는 데만 빨라도 3~4년이 걸린다.

오죽했으면 미군 내부에서 체제 붕괴 수준의 내홍이 터져 나왔겠는가. 최근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국방부) 장관이 중동 내 미군 전력의 전개 기간을 일방적으로 연장하려 하자, 유럽사령관과 아프리카사령관을 비롯한 4성 장군들이 연명으로 명령서에 '비동의' 서명을 하는 초유의 집단 반발을 감행했다. 이는 군 통수권과 문민 지휘체계에 대한 사실상의 항명이자, 군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합법적 저항이다. 헤그세스의 안하무인식 독단에 질린 크리스틴 드래스톨 육군 장관이 백악관에 이를 고발하고 사임했고, 이미 장성 20여 명이 줄줄이 군복을 벗었다. 지난 4월 해군장관이 경질된 데 이어 지금 펜타곤은 군사적 전략이 아니라 권력 암투와 시스템 마비로 신음하고 있다.
안규백 국방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이 11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미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6. 5. 12 연합뉴스

중동에 갇힌 군대, 한국을 늪으로 끌어당기다

이 지점에서 워싱턴의 악몽이 시작된다.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관은 최근 "만약 미군이 중동에서 물러난다면 중동 전역은 순식간에 중국의 안마당이 될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중동 바닷길을 중국에 내주는 순간 미국의 글로벌 해양 패권은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한다. 따라서 미군은 스스로 물러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파산 직전의 자체 전력만으로 버틸 수도 없는 '중동에 갇힌 군대'가 되어버렸다. 이 수렁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미국이 선택한 유일한 돌파구는 무엇인가? 바로 동맹국을 어떻게든 끌어들여 미군의 피로를 분산시키고 패권 유지 작전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체면을 차릴 여유조차 없다.

이런 다급한 처지의 미국에게 비전투 함정 한 척과 초계기 한 대를 보내는 것은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발 담그기(Foot-in-the-door)'의 덫에 걸려드는 일이다. 일단 군수지원함과 초계기가 페르시아만에 진입하는 순간, 미국은 이를 "대한민국의 참전"으로 포장해 트럼프의 정치적 위신을 세우는 선전 도구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소해함과 이지스 구축함, 특수전 부대 등 더 위험하고 본질적인 전투 전력을 보내라는 2차, 3차의 감당 못할 청구서를 내밀 것이 자명하다.
지난 2024년 제 76주년 국군의 날 미디어데이 리허설에서 전투기들의 호위 받으며 비행하는 해군 해상초계기 P-8A, 2026. 9.4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 국제 정세를 보라. 영리한 유럽 주요국들과 일본조차 트럼프의 무모한 도박에 동조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다. 동맹이라는 허울 좋은 멍에를 메고 한국 해군만 홀로 미국 옆에 서게 된다면, 이란을 비롯한 반미 진영의 격렬한 분노는 오롯이 한국을 향할 것이다. 당장 군함이 피격되지 않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을 드나드는 우리 유조선과 상선들이 대리 세력의 드론과 기뢰 공격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생명선 전체가 인질로 잡히는 파국이다.

헌법 제60조라는 방패를 들라

외교와 국방의 본질은 남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영토를 지켜내는 데 있다. 정세를 오판하여 섣불리 미국의 수렁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가 경제의 마비와 군의 희생으로 돌아온다. 지금 정부가 취해야 할 전략은 단 하나, 최대한 시간을 끌며 모호성을 유지하고 파병의 압박을 우회하는 정교한 지연전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가장 강력한 합법적 레버리지가 존재한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제60조 제2항에 명시된 '국군의 해외 파견에 대한 국회 동의권'이다.
김종대 국방전문가·전 국회의원

동맹국의 무리한 요구 앞에서 행정부 혼자 비장하게 총대를 멜 이유가 없다. 행정부는 민주적 헌법 절차의 무게를 방패로 삼아야 한다. 국회의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 전에 즉각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명분 없는 중동 분쟁 참여는 단호히 거부하며, 국회 동의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그것이 미국에게는 넘을 수 없는 한국의 국내 정치적 한계선(Red line)으로 작동하여, 역설적으로 정부의 대미 외교 협상 공간을 지켜주는 유일한 힘이 될 것이다.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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