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BTS급 인기 뒤 숨겨진 암살 공포…'귀순 용사' 이웅평, '아파트 78채 값' 보상금 한 푼도 안 쓴 슬픈 이유

강선애 2026. 9. 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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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웅평 다음으로 미그기를 타고 온 조종사 이철수 대위 등 북한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마다 이웅평 씨는 발 벗고 나섰어.

"옛날에 강릉으로 넘어오는 이런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이북에서 귀순을 한다, 그러면 저희 집으로 꼭 데리고 와요. 그러니까 얼마나 웃긴 일이 있냐면, 제가 기억에 남는 게. 애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간첩이 그런 식으로 왔어요. 근데 우리 아들이 '엄마, 간첩이 우리 집에 왜 와?' 물어요. 그 사람이 있는 데서. 얼마나 황당해요. 그것도 좋게 생각하더라고요. 북한은 다 교육을 뒤에서 시키는데, 이런 거 하면. 그냥 애가 천진하게 다 물어보는 대로 또박또박 얘기 다 하고. 또 뭐 사는 모습 다 보고. 그냥 저희 집 다 공개하는 거예요. 침실서부터 애들 공부하는 거, 뭐 부엌 이런 거 다 오픈을 하면, 며칠 안 돼서 전향시키고. 그런 일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어요."

"우리가 공기처럼 항상 자유를 느끼고 있으니까 잘 모를 거예요. 그 조그마한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귀순한 이웅평 같은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자유로운 걸 잘 못 느끼는 현실에서 좀 명심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죽었으니까 자유롭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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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3일 방송된 '기수를 자유로 돌려라!-북에서 온 이웅평'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청하, 온앤오프 효진, 배우 윤유선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인생을 바꾼 라면봉지

오늘의 이야기는 어떤 남자의 여름휴가에서 벌어진 일로 시작해. 뜨거운 태양 아래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눈부신 해안가야. 저 멀리서 정체 모를 무언가가 넘실거리는 파도에 서서히 떠밀려와. 그리고 그걸 한 남자가 주워. 그 순간 그 남자의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졌어. 바로 이거야.

라면봉지야. 이걸로 어떻게 인생이 바뀌었다는 걸까? 그리고 뒤바뀐 건 이 남자의 인생뿐만이 아니야. 대한민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거든. 지금부터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때는 1983년 충북 청주야. 여긴 영화 '탑건'처럼 실제 전투기 조종사를 훈련하는 공군 전술개발 훈련본부야. 29살 공윤석 씨는 대한민국의 매버릭, 전투기 조종사를 육성하는 훈련 교관이야.

훈련이 끝난 후 격납고야. 비행을 마치고 장비 점검하고 있는 윤석 씨에게 누군가 찾아왔어. 본부장님이 급하게 찾는다는 거야. 윤석 씨는 의아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기를 부를 일은 없거든. 그렇게 본부장을 찾아갔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자네 말이야. 이제 훈련 교관 말고 다른 임무를 맡아 줘야겠어."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이야. 그러더니 대뜸, 한 남자의 신상 정보가 적힌 종이를 던져줘.

이름 이웅평. 윤석 씨와 같은 스물아홉 살의 전투기 조종사야. 요즘 세대는 잘 모를 수 있지만 1983년 당시의 기억이 있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인물이야. 아주 강렬하고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거든. 이 남자 신상 정보에서 눈에 띄는 점. 특이사항에 '북한의 테러 대상'이라 쓰여있어. 윤석 씨의 임무는 바로 이 남자와 365일 24시간 붙어다니는 거야.

"본부에 가니까 본부에 있는 장국님이 그러더라고요.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혹시 북한에서 테러가 있으면 너도 위험해서, 혹시 그런 테러를 같이 당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느냐."

-공윤석, 의문의 임무를 받은 공군 소령

이 남자랑 있으면 윤석 씨까지 북한으로부터 테러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거야. 즉, 목숨을 건 임무라는 거지. 근데 이 남자의 정체가 대체 뭐길래, 북한의 테러 위협을 받고 있는 걸까. 이웅평의 정체를 알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해.

▲ 목숨을 건 사선

지금은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 25분이야. 이웅평은 전투기 안에서 대기 중이야. 곧이어 전화 사인이 떨어지고, 5, 4, 3, 2, 1, 이륙 준비 완료! 1번기, 2번기 이륙 개시! 이륙 사인과 함께 전투기 두 대가 하늘로 날아올라. 잠시 후, 고도 1000m 성공까지 올라왔을 무렵이야. 앞선 1번기가 기체를 서북 쪽으로 틀며 방향을 잡는 게 보여. 그때였어. 이웅평은 그 반대인 동남 방향으로 재빠르게 기수를 돌렸어. 그렇게 두 전투기는 순식간에 반대 방향으로 갈라졌지. 이웅평이 편대를 무단 이탈한 거야.

이 상황에서 이웅평은 고도를 지상 100m 아래로 급격히 낮췄어. 이렇게 하면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대. 지상 100m는 어느 정도가 될까? 63빌딩이 250m야. 그러니까 63빌딩 중간보다도 한참 낮게 날아야 되는 거야.

그리고 전투기가 지금 속도가 시속 920km야. 이건 1초에 256m를 이동하는 속도야. 이 속도로 가다가 아주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기체가 산산조각 나는 건 순식간이겠지.

이렇게 고도 100m 시속 920km 속도로 남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어. 그러기를 십여 분, 드디어 목적지인 덕적도가 눈앞에 보여.

한편 같은 시각, 서울은 혼비백산. 그야말로 난리가 났어. 수도권 전역에 사이렌과 함께 이런 소리가 울려 퍼졌거든.

"국민 여러분, 여기는 민방위 본부입니다! 지금은 실제 상황입니다! 실제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현재 시각 우리나라 전역에 실제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북한의 전투기가 휴전선을 넘어왔습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 전투기가 남한으로 날아왔대. 그 전투기에 타고 있던 사람이 바로, 이웅평이야. 그는 사실 북한 전투기 조종사였던 거야. 휴전선을 넘어 덕적도 상공에 나타난 이웅평 중위를 대한민국 전투기 4대가 에워쌌어. 국경을 넘어 영공을 침범한 거니까 격추 대상이 된 거지. 이웅평은 그때 어떻게 했을까?

이웅평은 조종간을 좌우로 마구 흔들어대기 시작했어. 비행기가 뒤뚱뒤뚱 흔들리도록. 이게 조종사들끼리의 '당신들의 말을 따르겠다, 그러니 공격하지 말라'는 신호라고 해.

잠시 후 11시 4분. 이웅평은 북한에서 이륙한 지 39분 만에 수원 공군 비행장에 착륙했어. 순식간에 수많은 군인들이 전투기를 둘러싸고 활주로엔 숨소리 하나 낼 수 없는 긴장감이 흘러.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이웅평이 캐노피를 열었어. 그리고 양팔을 든 채 이렇게 소리쳤대.

"나 총에 맞지 않게 해 주시오! 나 할 말이 많습니다!"

남한에 도착한 이웅평이 할 말이 많대. 도대체 무슨 말일까? 직접 들어볼게.

"지금 북에서는, 당장 남에서 쳐들어온다고 주민들을 무장시키고 있습니다. 북의 남침 계획에 대해서 전 세계에 폭로함으로써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에서부터 의결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웅평, 1983년 3월 4일 기자회견 中

북한이 또다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걸 폭로하기 위해 목숨 걸고 넘어왔다는 거야. 이웅평이 하는 얘기들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이땐 다대포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울릉도 간첩선 격침 등 북에서 보낸 간첩들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야. 그래서 항간에선 이런 말이 나돌기도 했어. "이웅평은 북한에서 우리에게 혼선을 주기 위해서 내려보낸 간첩일 것이다"라고.

이웅평은 이를 반박하기라도 하듯, 북한의 전술 작전 계획이나 격납고 위치 같은 1급 군사 비밀들을 모두 공개해. 이건 북한의 입장에선 완전 뒷목 잡을 일이야. 그동안 잘 짜놓은 모든 체계와 전술들을 싹 다 바꿔야 하거든. 여기서 끝이 아니야.

이웅평이 타고 온 전투기야. 기종명 미그-19기. 당시 북한의 주력 전투기인데, 소련이 개발한 전투기 중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최첨단 군사 장비였다고 해. 당시 미국에서도 이 미그기를 못 구해서 안달이 나 있었는데, 이웅평이 우리나라에 재발로 이걸 통째로 가져다준 셈인 거잖아.

정부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역대 최고치의 보상금을 전달했어. 보상금은 얼마쯤 됐을까? 참고로 당시 은마아파트 분양가는 2천만 원 가량이었대. 보상금은 무려 15억 2천만 원. 당시 은마아파트 78채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대.

거기에 북한에서의 경력과 군사적 공로를 인정받아, 공군 소령으로 정식 임관하기로 했어. 임관식도 아주 대대적으로 열렸어. 신문사 기자부터 심지어 공군 참모총장까지 총출동한 초대형 행사였어. 그리고 여기에 우리가 아는 사람도 있었어. 바로 공윤석 소령.

공소령의 임무가 이웅평이랑 24시간 같이 있는 거였잖아. 근데 정말 이게 전부였을까? 감시를 한다든가 다른 숨겨진 임무가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 공소령의 임무는 단 하나, 대한민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옆에 있어주는 거였다고 해.

"공군본부에서 소령 임관식 할 때 처음 만났죠. (감시 임무는 없었는지 묻자) 그건 아니죠. 그냥 가서 '이웅평이 남한 생활을 적응하는데 도와줘라'라는 말만 들었지. '너는 뭐해라, 뭐 하지 말라' 그런 거 없었어요. 임관식 끝난 다음에 같이 이제 동거가 시작된 거죠. 1년간."

-공윤석, 특별 임무를 받은 공군 소령

그날 이후 이웅평과 같은 집에서 생활하면서 24시간 모든 걸 함께 했어.

▲ 귀순 용사 이웅평

그럼 이웅평의 한국 생활은 어땠을까?

"한 달 동안 굉장히 바빴어요. 강의도 많고 환영 행사도 있고."

-공윤석, 특별 임무를 받은 공군 소령

당시 '반공 아이돌'로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었거든. 가는 곳마다 격려와 찬사가 쏟아졌고, 사인 요청에 사진 찍는 대기줄이 끝이 없어. 스케줄이 하도 많아서 항간엔 '대통령보다 이웅평이 더 바쁘다'는 말까지 나왔어. 우스갯소리가 아니야. 당시 대통령 전두환의 한 해 공식 일정이 600회, 이웅평은 무려 900회. 안보 강연, 기자회견, 방송 출연 같은 스케줄이 1년 내내 쉬는 날이 없이 매일 두세 개씩 있던 거야. 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뭐 BTS급이야. 이웅평 한 사람을 보겠다고 여의도광장에 무려 150만 명이 모인 적도 있었어.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150여만 명의 서울 시민들은 목숨을 끌고 자유대한으로 의거 귀순한 이웅평 씨를 뜨거운 동포애로 환영하면서, 북한 괴뢰 남침책동 분쇄궐기대회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당시 전두환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웅평은 반공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이었던 거지. 그래서 이렇게 대대적인 환영식을 열었던 거야. 그렇게 이웅평은 반공 투사가 되었어.

그런데 이 모든 스케줄을 함께 소화한 게 누구다? 공윤석 소령이야.

"많이 했어요. 하루에 3~4개도 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이웅평을 빙자해서 빛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었거든요 그때는. 하여튼 안 가본 데 없이 다 갔으니까요."

-공윤석, 특별 임무를 받은 공군 소령

두 사람 사이는 어땠을까? 처음 한 달 동안은 거의 말 한마디도 못 해봤대. 이웅평은 공소령이 자기를 감시하러 온 요원인 줄 알았던 거야. 그래서 엄청나게 경계를 한 거지. 공소령도 궁금한 게 많았지만 꾹 참고 아무 말도 안 했대. 일명 '무관심 작전'. 모든 사람들이 다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딱 한 명이 무관심한 거야.

"한 달 그렇게 살고 나니까 '쟤가 이상하다, 정보기관 소속이면 뭔가 자기한테 물어보고 그럴 텐데' 전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아 얘가 진짜 남한 조종사구나'라는 걸,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안 것 같아요."

-공윤석, 특별 임무를 받은 공군 소령

결국 이웅평이 먼저 다가가서 이렇게 얘기했대.

"약주 한 잔 하러 가시겠소? 둘이서만 조용하게?"

그렇게 술자리에 마주 앉은 두 사람. 말없이 술잔만 기울여. 그러다 이웅평이 대뜸 말을 건네.

"내 어찌 남으로 왔는지, 궁금하지 않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 기수를 남으로

어린 시절 이웅평은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대. 대대로 손이 귀한 집의 7남매 중에 위로 누나만 둘이 있는 집, 그 집의 장남이었거든. 아버지는 사회안전부(경찰청) 간부, 그리고 누나들은 학교 교사, 동생은 김일성 주석궁 경호원이야. 이 정도면 북한에서 상위 1%, 초엘리트 집안이야. 거기에 이웅평의 직업은 전투기 조종사야. 북에서 전투기 조종사는 군인 중에서도 최상급 대우를 받아. 6.25전쟁 당시 인민군을 가장 괴롭혔던 게 바로 미공군이었거든. 그래서 김일성은 전투기 조종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준 거야.

그중에는 우리가 정말 상상하기 힘든 게 있어. 조종사에게 주어진 특권 중 하나는, 바다 출입증이야. 북한에선 아무나 바닷가에 갈 수가 없대. 바다에서 배를 타고 남한으로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이웅평은 이 바다 출입증을 가지고, 바닷가로 휴가를 갔어. 그리고 거기서 바로 그걸 발견했던 거지. 그래 맞아. 라면봉지! 바로 이 라면봉지가 이웅평의 인생을 뒤바꾼 거였어. 북한 탈출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거든.

"만일 유통 과정에서 변질된 제품이 있으면 특약점이나 회사에서 즉시 교환하여 드립니다" 라면봉지 뒷면 하단에 있는 문구야. 이걸 보고 자유를 느낀 이웅평.

그리고 그는 휴가 중에 더 큰 계기를 맞이하게 됐대. 고향 집에 방문했더니 가족들이 몽땅 사라진 거야. 6.25 전쟁 중에 행방불명된 친척이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친척이 남쪽으로 간 정황이 드러난 거야. 바로 이렇게 문제가 됐어. 그 정황 때문에 아버지가 숙청을 당한 거야. 이웅평은 수소문 끝에 겨우 아버지를 찾아갔대. 한참 말이 없던 아버지는 어렵게 입을 떼고 이웅평에게 딱 한마디 이렇게 이야기해.

"이제 우리 가족은 끝이다. 네 살 길은 알아서 찾아라. 여기 있으면 네 앞날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게 이웅평과 아버지의 마지막이었어. 그리고 이 마지막 대화가 남으로 기수를 돌리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된 거야.

모든 얘기를 들은 윤석 씨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웅평의 모습을 보고, 사실은 정이 많고 여린 사람이구나 싶었대.

"정이 좀 많아요. 정이 많고 북에 남겨놓은 가족, 부모님하고 남동생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자기가 꼭 나중에 데리고 와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그런 얘기를 주로 많이 했죠."

-공윤석, 특별 임무를 받은 공군 소령

▲ 한눈에 반한 그녀

그런데 윤석 씨가 이웅평의 한국 적응을 도와주는 공식적인 조력자였다면, 이웅평을 그림자처럼 몰래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어. 바로 보안사, 그리고 안기부 요원들. 하나는 북한의 암살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즉 신변관리.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감시를 위해.

그리고 이 무렵,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어. 이웅평이 자꾸 어느 집을 몰래 배회한다는 거야. 그 집은 공군사관학교 박예제 교수의 집이야. 박 교수는 이웅평의 전담 과외 선생님이었어.

그 시각, 박 교수네 집은 지금 그야말로 난리가 났어.

"너 대체 행실을 어떻게 했길래, 쟤가 자꾸 여길 찾아와!"

"전화통화 한 두 번 한 게 다예요. 저도 모르겠다고요."

박 교수에게 대학생 딸이 있었거든. 박선영 씨야. 이웅평이 선영 씨에게 한눈에 반한 거지. 어느 날, 이웅평이 박 교수님 집에서 차를 마시게 됐는데, 그때 차를 내온 사람이 바로 선영 씨였던 거지.

하지만 이웅평은 선영 씨한테 바로 다가갈 수 없었어. 아무래도 북에서 온 사람이기도 하고, 나이 차이도 9살로 당시로서는 꽤 있었거든. 심지어 선영 씨는 아직 대학 졸업이 한참 남은 음악사범대 3학년이야. 그리고 당시 이웅평의 인기가 BTS급이라고 했잖아. 그런 사람이 열애설이 나면 어떻겠어? 선영 씨도 곤란해질 거야.

그래서 이웅평은 맘에도 없는 말을 늘어놨어. "주변에 친한 언니나 선배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지요"라며. 그러면서 소개를 핑계로 선영 씨한테 계속 전화했지.

"주말에는 뭘 하시오?"

"애들 피아노 레슨이 있어요."

"그럼 내일은 뭘 하시오? 나 서울 구경 좀 시켜주시오."

적극적인 플러팅이었어. 당시 선영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꼬꼬무'가 이번에 아주 어렵게 선영 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어.

"전화를 많이 했죠. 정말 1시간, 2시간씩 전화를 많이 했어요. 제가 마음에 너무 들고 그런데, 자기가 좀 미안한 건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아직 학생이고. 그런 게 조금 염치가 없다. 그렇지만 잘해줄 자신이 있다. 이런 식으로 했는데… 솔직히 저는 그 당시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박선영, 북한 남자에게 플러팅 받은 남한 여자

선영 씨 집에서 반응이 어땠겠어? 무조건 반대지.

"엄마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 문화 차이도 심하고 또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그러니까 저희 집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얘기였어요."

-박선영, 북한 남자에게 플러팅 받은 남한 여자

이런 상황에서 이웅평의 마음 받아줄 수 있을까? 근데 선영 씨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어. 직접 들어볼게.

"인연이 되는 게 우습더라고요. 그때가 장마철이었거든요. 제가 6월에 만났으니까 7월. 저희 집에 와서 무릎 꿇고, 저하고 결혼하겠다고.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거 같다' 그 비를 다 맞고. 약간 측은지심이라고 그럴까? 굉장히 강해 보이는데도 말하는 가운데 외로움, 저한테는 크게 다가왔죠. 그래도 집에서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셨거든요. 제가 엄마, 아빠한테 그랬어요. '내가 누구와든 결혼을 할 건데, 나 이렇게 좋다는 사람이 훨씬 나을 거 같다. 그리고 내가 많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 같다'고."

-박선영, 북한 남자에게 플러팅 받은 남한 여자

이웅평의 끊임없는 노력과 진심이 결국 선영 씨의 마음을 연 거야. 두 사람은 1984년 11월 2일. 만난 지 4개월 만에 백년해로를 약속했어.

그런데 재밌는 건 이 둘의 결혼을 음지에서 두 팔 벌려 대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대. 바로 안기부와 보안사 관계자들. 이들에게 이웅평은 테러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잖아. 이웅평이 선영 씨를 따라다닐 땐 보호 대상이 한 명 더 늘었던 거잖아. 그런데 이 둘이 결혼하게 되면 같이 보호할 수 있으니까 일손이 준 거지.

▲ 북한의 테러 대상

속전속결로 결혼에 골인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신혼은 트러블이 끊이질 않았어.

"은수저, 은숟가락, 은밥그릇, 국그릇도 은으로 쓰고. 독이 있으면 은이 변하잖아요. (암살)당하는 걸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갑자기 가다가 독침 맞을까. 그러니까 항상 나가면, 문도 열 때 굉장히 조심해서 열어요. 장치가 돼서 터지지는 않을까. 항상 불안하게 사는 거예요."

-박선영, 이웅평 아내

암살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거야. 아까 봤던 프로필 기억나지? '북한의 테러대상'. 서울 한복판에서 간첩에 의해 언제 어디서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

"결혼해서 10년 될 때까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은 절대 제가 못 들였어요. 예를 들어서 우유를 배달한다든가, 시장도 한 군데 단골로 가면 안 돼요. 여기저기, 여기저기, 뭐가 음식에 들어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저는 정말 일반 사람이고, 아기 아빠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낯설죠."

-박선영, 이웅평 아내

근데 서울 한복판에서 암살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적이 있어.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때는 1997년 2월 15일 밤 9시 52분. 경기도 성남의 한 아파트야. 14층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자가 내려와. 이 남자는 지금 미칠 지경이야. 요새 들어서 의문의 전화가 계속 수시로 걸려왔거든. 그것도 매일 똑같은 시간, 오후 7시에.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면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그냥 뚝 끊어버려. 거처를 옮기고 전화번호를 바꿔도 소용이 없어.

이날도 답답한 마음을 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 남자. 집 앞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괴한 두 명이 앞을 가로막아. "당신들 누구야?" 아파트 복도에서 큰 소리로 실랑이가 벌어지더니, 이내 탕! 실탄 한 발이 이마를 관통한 거야. 사망자의 이름은 이한영. 이 사람의 정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야.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 그와는 사촌지간인 셈이지. 그야말로 북한의 로열패밀리. 그런 사람이 무장간첩들에게 암살을 당한 거야. 그것도 서울 인근 아파트 복도에서.

"이한영 집 권총 피습 사건으로 북한이라는 냉혹한 실체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범인이 북한 공작원이라면 북한은 마음만 먹으면 남한의 어느 누구도 위해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이웅평도 전투기까지 끌고 와서 북한의 군사기밀정보를 다 넘긴 상황이잖아. 이웅평은 물론 선영 씨까지 이런 위협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거야.

"저희는 그런 거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았잖아요.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서 사는 것보다 정말 힘들다…"

-박선영, 이웅평 아내

두 사람은 안전을 위해 신혼생활을 공군 관사에서 시작했어. 그렇게 결혼한 지 한 1년쯤 지났을까. 또 한 가지 사건이 이웅평 부부에게 일어나. 선영 씨가 거실에 앉아있었는데, 바닥에 깔린 카펫을 자세히 보니까 뭔가 싸한 느낌이 들더래. 그래서 걷어봤지. 그런데 이게 웬걸?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까만 전기선이 길게 연결되어 있는 거야. 도청 장치가 있었어. 밖에서는 북한의 암살 위협을 받으면서, 안에서는 감시를 받고 있었던 거지. 선영 씨는 그 길로 곧장 어딘가를 찾아갔대.

"그거(도청 케이블)를 다 제가 다 떼어냈어요. 그랬더니 케이블로 이만큼이 되더라고요. 그걸 가지고 제가 어디로 갔냐 하면, 보안사령부에 전화를 해서 '나 보안사령관하고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래서 독대를 했어요."

-박선영, 이웅평 아내

당시 보안사령관이라고 하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였거든. 참고로 전두환, 노태우가 전임 보안사령관이야. 혈혈단신으로 그런 사람을 만나러 간 거야. 선영 씨는 뭐라고 했을까?

"그거(도청 케이블) 딱 올려놓고 '나 이혼하겠다' '나 이런 상태에서 못 산다' '내가 싫어서 이혼하는 걸로 해달라' 그러니까 난리가 나서 뭐가 불만이냐는 거야. '하루를 살더라도 나가서 살게 해 주세요' 그랬어요. '어떻게 하실래요? 저희 나가서 살게 해 주실래요? 아니면 저 내일 바로 이혼합니다' 그랬어요."

-박선영, 이웅평 아내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하고 온 이웅평 씨한테 선영 씨가 얘기를 했어.

"나도 당신하고 결혼하고 보니까, 사람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그건 당신하고 나하고 운명이다. 그 대신 단 한 시간을 살더라도 편하게 살자…"

-박선영, 이웅평 아내

그 뒤로 이웅평과 선영 씨는 곧장 관사를 나와 민간 아파트로 이사했어. 꼭 신혼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대. 그곳에서 토끼 같은 딸 다빈이와 개구쟁이 아들 준기를 얻었지.

북쪽의 위협과 남쪽의 감시에 힘들어하던 이웅평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표정도 한층 밝아지고 웃음도 아주 많아졌어. 이제 행복할 일들만 있을 것 같았지.

▲ 탈북민 전향을 돕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 이웅평이 갑자기 사라진 거야. 며칠째 연락도 되질 않아. 공군이나 보안사 쪽에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 찾을 길이 없어. 사실 이웅평은 지금, 대만에 있어. 거기서 누군가와 은밀하게 접선 중이었거든. 그게 누구였냐? 바로 북에서 탈출한 사람들이었어.

김만철이라는 북한 의사가 배를 타고 무려 11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탈출을 감행했거든. 그런데 태풍을 만나 배가 고장 나면서 바다 한가운데에 표류하게 된 거야. 대한민국 정부는 이 가족을 꼭 데려오고 싶어 했어. 이때가 88올림픽을 1년 앞두고 있던 시기였거든. 게다가 이 가족이 탈출한 날짜가 아주 묘했는데, 바로 그날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거든.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여론을 돌리기에도 아주 제격이었던 거야.

하지만 김만철 가족은 제3국으로 망명을 요청했어. 아주 완강해. 남한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극비로 투입된 게 누구다? 바로 이웅평인 거야. 이웅평은 김만철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얘기했대.

"나는 부모 형제 다 북에 남겨두고 혼자 내려왔습니다. 밤마다 가족들 생각에 눈물로 밤을 지새웁니다. 선생은 온 가족 다 모시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더니 이걸 꺼냈대.

차 키 두 개. 그러면서 "이만큼 잘 살고 있습니다. 남쪽으로 꼭 오시오."라고 덧붙였어.

결국 김만철 일가는 대한민국행을 결정했어. 이 사실을 몰랐던 선영 씨는 얼마나 놀랐겠어.

"나간다, 들어온다, 언제 온다 이런 얘기가 없어요. 사라지면 '아 뭐 나라에 일이 있나 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돼요. 그거 중간에 알려주지도 않아요 잘."

-박선영, 이웅평 아내

사실 김만철 일가뿐만이 아니야. 이웅평을 보고 북한 탈출을 결심한 육군 신중철 대위. 이웅평 다음으로 미그기를 타고 온 조종사 이철수 대위 등 북한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마다 이웅평 씨는 발 벗고 나섰어. 심지어 집까지 데리고 왔대. 북에서 온 간첩들을.

"옛날에 강릉으로 넘어오는 이런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이북에서 귀순을 한다, 그러면 저희 집으로 꼭 데리고 와요. 그러니까 얼마나 웃긴 일이 있냐면, 제가 기억에 남는 게. 애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간첩이 그런 식으로 왔어요. 근데 우리 아들이 '엄마, 간첩이 우리 집에 왜 와?' 물어요. 그 사람이 있는 데서. 얼마나 황당해요. 그것도 좋게 생각하더라고요. 북한은 다 교육을 뒤에서 시키는데, 이런 거 하면. 그냥 애가 천진하게 다 물어보는 대로 또박또박 얘기 다 하고. 또 뭐 사는 모습 다 보고. 그냥 저희 집 다 공개하는 거예요. 침실서부터 애들 공부하는 거, 뭐 부엌… 이런 거 다 오픈을 하면, 며칠 안 돼서 전향시키고. 그런 일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어요."

-박선영, 이웅평 아내

이웅평은 어떤 마음으로 북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을까? 이웅평은 평소에도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으로 와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 컸대. 그래서 계절마다 가족사진을 찍었다고 해.

왜 가족사진을 자주 찍었을까? 이것 때문이었어.

실제로 북한에 날려 보내는 대북 심리용 전단이야. 옛날 말로 '삐라' 같은 거지. 가족사진을 대북 전단에 실어 보냈어. 자꾸 북을 자극하면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그냥 조용히 행복하게 살 수도 있는데, 이웅평은 그거를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귀순을 진심으로 도왔어.

이웅평은 만나본 수많은 귀순자들 중에 가장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따로 있었대. 직접 안기부에 연락해서 본인이 먼저 만나고 싶다고 한 사람. 바로 1991년 귀순한 전직 김일성 통역관이자 북한 외교관 고영환 박사야.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어. 고영환 박사도 북한에서 엘리트 출신인 데다, 귀순 당시 떠들썩하게 기자회견을 했거든. 이웅평과 똑같이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을 한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어. 그런데 거기서 이웅평은 정말 상상도 못 한 이야기를 듣게 됐어.

"처음 만난 게 아마 냉면집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거 좀 까다로운 질문일 수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되냐'했더니 '물어봐라' 그래서 '지휘관 부인이라는 게 누구냐?'"

-고영환 박사, 전 김일성 통역관, 전 북한 외교관

'지휘관 부인'이라는 게 뭘까? 이웅평이 귀순할 83년 당시 고영환 박사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를 했대. 그때 이웅평에 대한 전문이 내려왔다는 거야. 근데 그 내용이 정말 충격적이었어. "남조선으로 넘어간 민족의 반역자 이웅평은 지휘관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른 파렴치한이다"라는 거였어. 북한이 이웅평을 이렇게 매도한 거야.

"지휘관 부인과 불륜을 저지른 나쁜 작자니까, 주재국 신문에 널리 알리라고... 그러니까 '내 말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거지. 내가 그 여자하고 불륜을 저질렀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내가 그때 20대 중반에 새파란 놈인데, 우리 엄마 나이보다도 그분이 많았거든' 이러면서 어처구니가 없다고…"

-고영환 박사, 전 김일성 통역관, 전 북한 외교관

그렇다면 북한은, 고영환 박사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을까?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가지고 도주한 반동분자다"라고 매도했어.

"그러니까 그냥 우리 서로 범죄자네, 이러면서 '너는 강간범이고 나는 도둑놈이고' 그러면서 둘이 깔깔대고 웃다가 내가 '야 너는 진짜 백만 달러 탔다며. 너는 진짜 괜찮네. 우리는 종잇장 몇 장 가져왔다고 돈도 그렇게 많이 안 주더라. 너는 비행기 타고 오니까 돈도 많이 주고' 그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고영환 박사, 전 김일성 통역관, 전 북한 외교관

그리고 이날 이후에 두 사람은 평생지기 친구가 됐어. 이렇게 마음이 맞는 친구도 생기고,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능력을 인정받아 공군대학의 교수로 임명됐어. 그리고 대한민국에 온 지 14년째인 1996년엔 대령으로 진급까지 하게 돼.

이 무렵 이웅평은 공군대학이 있는 대전에서 지내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선영 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어. 북에서 전투기를 탔을 때 넘었던 죽음의 사선을 또 한 번 넘어야 할 일이 생겼거든.

▲ 두 번째 사선

1997년 11월 서울에 있는 집이야. 선영 씨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청소 중이야. 오늘 아들 친구 엄마가 집에 놀러 오기로 해서 한창 부엌 청소를 하고 있는데, 부엌 한편에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이 있는 거야. 봐도 잘 모르니까 일단 식탁 위에 올려두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어.

잠시 후 아들 친구 엄마가 집에 찾아왔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부엌으로 향해. 그런데 아들 친구 엄마의 표정이 갑자기 확 굳어. 엑스레이를 본 거야. 아들 친구 엄마의 직업이 의사였거든.

"준기 엄마,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닌데? 남편 당장 입원시켜. 안 그러면 큰일 나."

이 말을 듣자마자 선영 씨는 마음을 굳혔어. 서울 생활을 접고 대전으로 내려가기로. 그리고 며칠 후, 불길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어. 이웅평이 근무 중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는 거야. 선영 씨는 바로 달려갔어. 침대에 누워있는 이웅평을 보고, 선영 씨는 심장이 덜컹 했대. 몰골이 말이 아니야. 당시 상황 보여줄게.

얼굴은 황달을 넘어 흑달까지 와있었고, 피를 얼마나 토해댔는지 입 주변에 피가 흥건해. 원인은 B형 간염에 의한 간경화. 간의 70%가 굳었다는 거야.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선영 씨에게 말해.

"저희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국립묘지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갑작스레 남편의 시한부 선고를 듣게 된 선영 씨.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런데 참 이상하게, 사람이 그렇게 되니까 제가 굉장히 침착해지더라고요. 왜 그러냐면 제가 애들 아빠랑 살면서 이런저런, 가다가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다른 거에 의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그런 게 항상 머릿속에 있어서, 침착해야 돼. 일단 침착해야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누워있는 한이 있더라도, 평생 그렇게 살더라도 살려야 된다.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컸어요. 죽는다는 생각은 저한테 안 들더라고요. 희한하게."

-박선영, 이웅평 아내

남편의 목숨만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지극정성 병간호하던 선영 씨한테 뜻밖의 제안이 왔어. 바로 간이식이야. 지금이야 잘 알려진 수술이지만 당시엔 완전 새로운 의료기술이었거든. 이제 막 시도하기 시작해서 성공 사례가 거의 없었어. 그러니까 삶과 죽음 사이에서 도박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지. 그래도 선영 씨는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

간이식 개념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야. 누가 자기 간을 남한테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선영 씨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자기 간을 주고 싶다고 했어.

"제 거를 주려고 했죠. 그래서 검사를 다 받았어요."

-박선영, 이웅평 아내

놀랍게도 검사해 보니까, 혈액형도 맞고 인식도 가능해. 하지만 이웅평이 죽어도 싫다고 결사반대야. 자칫 둘 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애들을 돌볼 사람이 없잖아. 그럼 이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선영 씨는 밤이면 밤마다 병원이며 터미널 화장실을 돌아다녔어. 이걸 모으려고 했어.

장기 매매를 주선하는 불법 전단지야. 하나하나 간절한 마음으로 다 전화를 걸어본 거야.

"터미널 화장실에 가면 그게 엄청 많아요. 그래서 밤에는 남자 화장실까지 다 뒤져서, 그걸 다 노트에 적어서. 아기 아빠 아플 때는 간호하고, 나는 복도에 나와서 거기에 전화 돌리고."

-박선영, 이웅평 아내

심지어 수술을 하겠다는 사람을 찾기까지 했지만, 병원에서 불법이라 안 된다고 거절했어.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어느 날, 기증자가 나타났어. 진짜 기적적인 일이야.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어.

"어느 날, 이식을 할 수 있을 수도 있겠대요. 순번도 왔고. 근데 문제가 있대요. (기증받는 간이) 여자 간이라서, 남자하고 여자하고 간 사이즈가 다르대요. 근데 남자한테 여자 간을 해보는 건 처음이라는 거죠. 근데 뭐 어떡해요. 제가 막 매달렸죠 선생님한테. '그냥 해주세요'. 저한테 그러시더라요. '냉정하게 생각해라. 실패할 수도 있다'. 나는 장애인이어도 좋다, 누워만 있어도 좋다,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그런 거면 하겠다."

-박선영, 이웅평 아내

선영 씨가 수술 동의서에 서약하고 이웅평은 곧장 수술대로 옮겨졌어. 성공 확률 기껏해야 20%. 수술대에 누운 이웅평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통일을 보지 못한 게… 간다면…"

-이웅평

이 말을 끝으로 수술이 시작됐어. 이웅평이 수술실에 들어간 건 오전 9시. 그런데 자정이 다 될 때까지도 이웅평이 나오질 않아.

"수술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애들한테 '수술이 오래 걸리니 기도를 해라. 아버지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다'. 정말 초조했죠. 한 열몇 시간이 한 한 달? 그렇게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박선영, 이웅평 아내

그때 드디어 수술실 문이 쫙 열려. 그런데, 의료진이 다급하게 침대를 끌고 이웅평을 또 어디론가 옮겨. 바로 무균실이야. 간 이식 환자들에겐 아주 작은 병균도 치명적일 수가 있거든. 무균실로 옮겨지고 나서야 선영 씨는 창 너머로 이웅평을 볼 수가 있었어. 수술은 천만다행으로 성공적으로 끝났어. 가족들은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했어.

"애기 아빠가 문어가 먹고 싶다는 거예요. 그날 밤에 문어를 가서 사 와서 병원 비상구에서 그걸 끓였어요. 그러니까 조금씩 먹더라고요. 그런 게 신이 난 거예요. 뭐라도 먹겠다고 하면 해주겠다는 일념이 있어서."

-박선영, 이웅평 아내

그렇게 하루하루 회복해 가던 이웅평은,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처럼 집에 돌아오게 됐어. 집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선영 씨한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었어. 정확히 제시간에 맞춰서 이웅평에게 이걸 꼭 해줘야 했거든. 바로 주사와 약. 이식 수술을 했으니까 면역 억제제를 제때 맞지 않으면 몸에서 거부 반응이 와서 사망에 이르기까지도 해. 선영 씨는 매 끼니, 용변, 거기에 주사와 약까지 꼬박꼬박 챙겨가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어.

그 결과, 처음에는 누워만 있던 이웅평이 이후 서서히 걷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아들과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호전된 거야.

이렇게 몸을 회복한 이웅평은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해.

"하루는 전화가 왔어요. 자기랑 같이 임진강 가보자고. 임진강에 몇 번 갔었어요. 저 건너 땅이 바로 북한인데, 그냥 둘이서 난간에 손대고 하염없이 북녘 땅 쳐다보고. 30분, 40분 동안 말 한마디 안 하고. 돌아서서 '너는 어떠냐 여기 오면', '너무 마음이 안 좋다'… 그 친구도 울먹울먹하고. 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어디 가겠어요. '네가 건강을 해야지 이 자식아. 통일이 되고 우리가 집을 팔아서라도 김정일이 타는 외제차를 하나씩 사서 같이 평양 들어가자. 서로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었어요."

-고영환, 이웅평의 친구

▲ 안타까운 이별

그러던 어느 날, 선영 씨가 약 먹을 시간이라 챙겨주려 하자 이웅평은 이렇게 말했어.

"이거 무슨 약이야? 당신 정부에서 무슨 지시받았지? 나한테 왜 약을 먹여?"

자꾸 이상행동을 보이고, 심지어 선영 씨를 자기를 감시하러 온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거야. 가장 걱정인 건, 자꾸 선영 씨 몰래 밖에 나가는 거야. 심지어 연락도 잘 안 돼. 이러면 제일 걱정은 주사랑 약이야. 제시간에 맞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워.

"이게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그걸 안 맞으면 거부 반응이 일어나서 죽거든요. 제가 얼마나 애를 타고 찾았겠어요. 근데 뭐 오리무중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기관에 요청을 했죠. 좀 도와달라. 보면 찾게 해 달라."

-박선영, 이웅평 아내

결국 이웅평은 군에 의해 발견된 뒤 병원으로 이송됐어. 선영 씨도 한달음에 달려갔지. 그런데 이웅평의 반응이 싸늘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한마디 걸지 않는 거야.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웬일인지 그날은, 이웅평 씨가 먼저 선영 씨를 찾았대. 그러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러더니 자기가 먹고 싶은 게 있대요. 그래서 뭐냐 그러니까, 네가 해준 물김치가 먹고 싶대요. 알았다고. 내가 가서 여기 얼른 가서 해오겠다고."

-박선영, 이웅평 아내

바로 집으로 가서 물김치를 만들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울려. 받아보니까 병원이야. 지금 즉시 서둘러 오래. 불길한 느낌에 바로 달려갔어. 병실 문을 연 선영 씨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아. 이웅평이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고 있는 거야. 그리고 한참을 하혈하던 이웅평이, 대뜸 "여보 나 물 한 통만"이라고 말해. 이웅평은 그대로 숨도 안 쉬고 물을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켜. 그리고는 선영 씨한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귀에 대고 이렇게 얘기해.

"'그동안 고생했다'고 그러면서 '안 해도 될 고생 했다'고. '애들 좀 잘 길러달라', 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이제 저한테 마지막 유언 남긴 거예요."

-박선영, 이웅평 아내

그리고 그는 눈을 감았어.

"그래서 저한테, 돌아가시기 전에 한 달 내내 속 썩인 건, 아 정 떼려고 그랬나 보다. 너무 나한테 못 되게 하고, 애들한테도 못 되게 한 게, 정 떼게 하려고 그랬나 보다…"

-박선영, 이웅평 아내

근데 수술 잘 마치고 회복을 하던 이웅평. 갑자기 왜 삶의 끈을 놓아버리게 된 걸까? 여기엔 마음이 먹먹한 이유가 있어. 직접 들어볼게.

"그때 그 당시에 뭐를 들었냐면, (남으로) 넘어오신 분인데, 누나가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데 같이 있었던 사람을 만난 거예요. 누나가 너무 힘들게 살고 있고, 식구들이 다 죽었다는 말… 거기에 쇼크를 굉장히 받았던 모양이에요."

-박선영, 이웅평 아내

북에 남겨진 가족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된 거야. 이웅평이 처음 귀순했을 때 받았던 보상금, 기억나지? 근데 평생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대. 그 이유가 나중에 통일이 되면, 자신 때문에 고통받았을 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쓰려고.

"우리가 공기처럼 항상 자유를 느끼고 있으니까 잘 모를 거예요. 그 조그마한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귀순한 이웅평 같은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자유로운 걸 잘 못 느끼는 현실에서 좀 명심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죽었으니까 자유롭겠지."

-공윤석, 이웅평의 친구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평양 가게 되는 날이 온다면, 묘지에 있는 흙을 조금 가져가서 대동강에 뿌려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너하고 같이 왔다, 내가 너를 평양에 데려왔다, 이런 말을 대동강에 대고 꼭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할 거고요."

-고영환, 이웅평의 친구

"남들은 그냥 쉽게 비행기 타고 넘어와서 대접 잘 받아서 영웅 칭호 받고 이렇게 잘 살았다고 그랬지만, 사실 실상의 생활은 정말 힘든 삶이었거든요. 아기 아빠가 항상 얘기하기를, 자기는 남과 북의 군복을 다 입은 사람이고, 얼마나 이게 비극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그렇지만 아기 아빠의 삶도 그렇고, 또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울림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박선영, 이웅평의 아내

남으로 기수를 돌렸을 때 이웅평은 어떤 삶을 꿈꿨을까?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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