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관세폭탄 예고…삼성전자·SK하이닉스 ‘美 투자’ 압박
TSMC·마이크론 대규모 투자…관세와 현지 생산 연계 가능성
노트북·서버 등 완제품까지 확대 가능성…산업계 긴장 고조
삼성·SK 미국 투자 압박 가중…K반도체 전략 수정 불가피

이번에는 세율만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 내 생산과 투자를 관세 혜택과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면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있지만, 해외 생산을 고수하면 미국 시장 진입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명확해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현지시간 2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에 대한 ‘표적적이고 신중한’ 관세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기업에는 관세 감면을 제공하고, 미국 내 생산에 나서지 않는 기업에는 관세를 부과하는 구조가 골자다. 그는 해외 기업의 관세 부담을 미국 내 투자와 연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사실상 추진 의사를 확인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생산 기반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과 맞물려 있다. 미국은 반도체를 국가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으로 규정하고 이미 수입 반도체와 관련 제품에 대한 관세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올해 1월 백악관은 특정 첨단 컴퓨팅 칩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의 기술 공급망과 국내 제조 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수입품에는 예외를 적용했다.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더 폭넓은 반도체 관세와 투자 기업에 대한 우대 조치를 연계할 수 있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특히 미국이 의약품 분야에서 활용한 관세 감면 모델을 반도체 산업에 적용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기업들의 투자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러트닉 장관은 TSMC와 마이크론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 규모만 5000억달러를 웃돈다고 강조했다. TSMC의 미국 투자 계획은 애리조나 생산시설 확대를 포함해 2650억달러 수준으로 확대됐으며, 마이크론 역시 미국 내 대규모 메모리 생산기지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관세의 범위가 반도체 칩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노트북과 게임 콘솔, 데이터센터 서버 등 반도체가 탑재된 완제품까지 관세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업체뿐 아니라 서버와 정보기술 기기,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미국 소비자까지 비용 상승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기업에도 부담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시장을 위해 현지 생산 기반을 확대할지, 한국을 비롯한 기존 생산거점의 경쟁력을 유지할지 선택의 압박을 받게 됐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생산설비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공장 건설부터 양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해 관세 발표만으로 투자 결정을 신속하게 바꾸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정책이 기업 투자 판단을 넘어 공급망 재편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현지 생산이 관세 회피의 조건으로 자리 잡으면 기업들은 비용과 효율만을 기준으로 생산지를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미국 정부가 원하는 투자 규모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경제성이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의 관세율과 적용 범위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투자 규모에 따른 관세 면제나 일정 물량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 간 대규모 투자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관세가 새로운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번 반도체 관세 구상은 미국 시장에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에 비용을 부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기지와 자본까지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산업정책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관세를 앞세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축을 자국으로 옮기려는 가운데 한국 기업과 정부가 얼마나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느냐가 향후 반도체 경쟁력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