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사 전성시대… 어플라이드, 생산 능력 앞장서 韓 고객 ‘풀 서포트’
7월 용인 클러스터 입주…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도 뿌리 내려
반도체 장비사와 한국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세계 최대 장비사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를 비롯해 도쿄일렉트론(TEL), ASML, 램리서치, KLA가 메모리 호황과 폭발적인 수요에 따라 한국으로 몰려들면서 장비 수요도 함께 급증했다. D램과 HBM(고대역폭메모리) 생산 최전선에 위치한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가 한국에 첨단 기술을 들여오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는 31일 서울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센터에서 'AI 시대를 위한 D램·첨단 패키징 미디어 브리핑'을 열고 마이크로범프와 하이브리드 본딩 등 반도체와 AI(인공지능)이 직면한 과제, 그리고 회사의 대응 방향을 설명했다.
무쿤드 스리니바산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그룹 부사장은 "현재 반도체가 직면한 두 가지 핵심 과제는 기술과 생산능력에 관한 것"이라며 "AI 모델이 점점 더 많은 연산을 필요로 하면서 소비 전력량도 극적으로 늘고 있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HBM 패키징 공정 장비 지출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대형 장비사다. 지난해 반도체시스템 부문 매출 208억 달러 가운데 D램 비중이 약 26%로, 54억1000만 달러 수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장비사 가운데서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증착과 화학적기계연마(CMP) 등 전공정을 아우르는 종합 1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램리서치가 식각과 실리콘관통전극(TSV) 등 전공정 강자, TEL이 D램 식각과 코터·디벨로퍼 강자로 꼽히는 것과 달리 전 영역에서 고르게 강하다는 시각이다.
종합 장비사답게 한국을 보는 시선도 중장기적이다. 박광선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 대표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면 AI와 반도체 성장이 비약적이었다"며 "생산능력 문제와 관련해 어플라이드로서는 고객들과 장기 수요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설비를 적시에 공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장비 양산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을 이어갔다. 그는 "설비를 제공할 때 당장의 3~6개월이 중요하다기보다 생태계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에 초점을 두고 고객들과 일하고 있다"며 "고객들과 니어텀, 숏텀, 오늘내일의 문제보다는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할지를 긴밀하고 깊게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이라고 말했다.
빅테크를 포함한 고객사들이 필요한 생산능력과 설비 수요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어느 시점에 어플라이드가 장비를 공급해야 하는지까지 제시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글로벌 실적 발표와 증권가에서 거론된 2028년 생산능력 확장,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이 차지할 비중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메모리를 제조하는 3개 업체 중 2개가 한국에 있고, 여기에 패키징과 첨단 로직까지 더해지는 위치"라며 "올해보다는 내년, 내년보다는 2028년이 훨씬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증권과 대신증권 등 국내 증권가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연간 가이던스와 업황에 대해 고객사들의 수요 가시성이 개선된 점을 짚으면서 클린룸 병목을 성장 제약 요인으로 꼽았다.
문 연구원은 "투자의 병목이 의지가 아닌 클린룸 일정인 만큼 여전히 추가 상승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플라이드는 중장기 수요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생산능력을 2028년까지 2배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조재운 대신증권 연구원은 성장의 무게중심이 파운드리·로직에서 메모리로 옮겨간 점에 주목했다. 조 연구원은 "어플라이드 경영진이 HBM 패키징을 포함한 D램 매출이 전년 대비 52% 늘어 사상 최대에 도달했으며, 고객들이 클린룸 증설에 들어가면서 D램 매출이 매우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첨단 패키징 전망은 5월 콘퍼런스콜의 50% 초과에서 '2026년 패키징 매출이 70% 넘게 성장할 것'으로 상향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영업활동현금흐름 30억4000만 달러는 사상 최대이고 잉여현금흐름은 직전 분기 2억1000만 달러에서 23억3000만 달러로 정상화됐다"며 "매출과 이익률, 현금흐름, 수주 전망이 동시에 개선되는 조합은 흔치 않다"고 평가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지난 7월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협력화 단지 안에 대규모 시설을 짓기로 했다. 램리서치와 ASML, TEL 한국법인에 이어 이 클러스터에 터를 마련한 4번째 장비사다. KLA는 동탄과 이천 오피스를 주로 쓰고 분당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다.

TEL코리아도 2024년 8월 1815명에서 올해 7월 2164명으로 350명가량 늘었다. TEL코리아는 올해 공개채용에서 용인 연구개발(R&D)센터(TTCK-Y)와 기존 거점 인프라 고도화에 대응할 실무 인재를 뽑았고, 경력직은 상시채용까지 열어뒀다. 지난 26일과 27일 이틀간은 산학협력 대학의 이공계 학생 40명을 대상으로 반도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KLA코리아도 인재 확보에 나섰다. 지난 3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와 함께 반도체 유관 분야를 연구하는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앞서 지난 5월에도 인재 채용을 진행했다.

빅테크에 이어 장비사들까지 자리를 잡고 채용을 늘리면서 한국지사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언택트 시절과 AI 챗봇 및 LLM(거대 언어 모델) 초기 시절 컴퓨터공학과 대학생들을 최대한 많이 채용하고, 개발자들 연봉이 폭등했던 당시처럼 엔지니어를 포함한 반도체 업계도 비슷한 업황을 따라갈 것이라 전망 중이다.
특히 어플라이드는 대량의 데이터 처리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연산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소재를 찾고 있고 공정 혁신과 공정 제어에도 공을 들이고 있어, 이를 연구할 고학력 엔지니어가 다수 필요한 상황이다. 실리콘 포토닉스와 하이브리드 본딩 등 HBM 미래 기술 개발에도 인력 투입이 절실하다.
무쿤드 부사장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아키텍처 안에서 칩 내외 배선을 오가는 데이터양이 늘고 있어 신소재를 통해 저항과 정전용량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라며 "생태계 차원에서 반드시 생산 증량이 이뤄져야 하고, 고객사도 로직과 메모리 팹을 더 증설하는 가운데 장비 추가 공급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 공급과 구매 수요, 소재 생태계 전반의 혁신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과제 대응을 위해 산업 생태계가 함께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