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마가 교통사고 줄였다… 인간과 자연 모두 살린 공포의 생태학
[이영완의 딥사이언스]
최상위 포식자 되살려
무너진 생태계 복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은 동명(同名)의 주인공인 덴마크 왕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 클로디어스 왕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햄릿은 복수 과정 내내 삶의 부조리와 가슴앓이의 고통을 견뎌낼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통해 모든 갈등을 끝낼 것인가 고뇌했다.
햄릿의 고민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야생에서는 사치스러운 푸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월트 디즈니는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으로 세계적인 명작을 만들었다. 바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다. 영화는 아기 사자 심바가 아버지인 사자왕 무파사를 죽인 숙부 스카를 몰아내고 다시 프라이드 랜드의 왕이 되기까지 여정을 그렸다.
햄릿의 복수는 모든 사람을 파멸시켰다. 숙부를 죽여 복수했지만, 그도 어머니도 독에 목숨을 잃었다. 햄릿 때문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고 복수에 나섰던 귀족도 그와 결투하다가 죽었다. 라이온 킹은 결말이 달랐다. 심바가 왕좌를 다시 찾은 프라이드 랜드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심지어 풀과 나무까지 모두 어울리는 낙원이 됐다.
세상은 원래 비극이고 라이온 킹은 아이의 꿈만 같지만, 과학으로 보면 셰익스피어보다 월트 디즈니가 더 정확하다. 멸종 위기로 내몰렸던 퓨마와 늑대, 재규어 같은 최상위 포식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속속 복원되면서 자연이 살아났다. 심지어 자동차와 동물 간 충돌 사고가 줄면서 사람의 목숨까지 구했다. 심바의 프라이드 랜드가 현실이 된 것이다.
퓨마 오자 도로와 낮 피한 사슴
미국 비영리 연구 기관인 ‘보전 과학 파트너스’의 저스틴 수라치 박사 연구진은 지난 5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퓨마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사슴과 자동차의 충돌 예상 건수가 최대 76%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했다. 퓨마가 사슴을 많이 잡아먹어 자동차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개체 수가 줄어든 결과가 아니었다. 그보다 사슴이 도로를 피해 다녔기 때문이었다.
연구진은 워싱턴주 올림픽 반도에 동작 감지 카메라를 500개 이상 설치해 퓨마와 사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조사했다. 퓨마 59마리에게는 위치 추적용 목걸이를 부착했다. 분석 결과, 사슴은 퓨마가 먹잇감을 노리고 잠복할 가능성이 큰 도로 가장자리나 마을, 도시 외곽을 피해 외딴 숲으로 피했다. 덕분에 사슴이 승용차나 트럭에 치일 가능성이 줄었다.
사슴은 또 퓨마가 사냥하는 밤을 피해 주로 낮에 활동했다. 도로에 갑자기 나타나는 사슴은 낮보다 밤에 더 차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퓨마가 더 큰 사고 피해를 막은 셈이다. 수라치 박사는 “대형 육식동물이 도로 안전을 높이는 효과는 더 많은 지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1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멸종 위기에 빠진 늑대를 다시 들여온 곳에서는 자동차와 사슴의 충돌 사고가 24% 줄었다. 웨슬리언대 경제학과 연구진은 늑대가 가축을 죽여 생기는 손실보다 자동차 사고 감소로 63배나 더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줬다고 평가했다.

늑대가 살린 옐로스톤 생태계
과학자들은 퓨마와 늑대가 교통사고를 예방한 것을 ‘공포의 풍경’이 실제로 작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 말은 2001년 미국 아이다호 주립대의 존 론드레 박사가 쓴 논문에 처음 나왔다. 그는 대형 사슴인 엘크가 포식자인 늑대를 경계하느라 먹이를 찾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 현상을 설명하려고 이 용어를 고안했다. 포식자는 먹잇감인 개체군에 직접적인 포식 행위가 아니라 두려움만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그전까지는 자연을 단순히 먹고 먹히는 단순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를테면 초식동물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늑대 같은 포식자를 도입해 개체 수를 쉽게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늑대 도입의 효과는 먹이사슬을 통해 더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이를 잘 보여준다.
1926년 마지막 늑대가 사살되면서 옐로스톤에서 늑대는 공식적으로 멸종됐다. 포식자가 사라지자 엘크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나뭇잎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개울가 나무들이 사라지고 새는 둥지를 잃었다. 땅도 침식돼 물길이 바뀌면서 물고기도 사라졌다. 늑대 대신 코요테가 설치면서 다람쥐, 들쥐가 급감했다. 맹금류와 오소리, 여우의 먹잇감이 사라진 것이다.
1995년부터 늑대가 돌아오자 풍경이 달라졌다. 개울가 버드나무가 다시 자라고 개울이 제 모양을 찾았다. 물고기부터 쥐, 여우, 매까지 동식물이 다시 번성했다. 엘크는 늑대가 마구 사냥하는 바람에 개울가에서 보기 힘들어진 게 아니었다. 엘크가 포식자인 늑대를 경계하느라 개울가에서 잎을 뜯는 시간이 줄었다.

21세기 과학 바꾼 아이디어
올 초 영국 과학 매체 뉴사이언티스트는 21세기에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친 아이디어 21가지를 선정하면서 공포의 풍경을 포함시켰다. 그 개념이 멸종 위기 종의 보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북미 생태계 복원의 상징이 옐로스톤의 늑대라면 남미에는 이베라 습지의 재규어가 있다. 아르헨티나 이베라 습지는 석호(潟湖)와 밀림, 초원 등 다양한 생태계가 모여 있는 곳이지만 20세기 초반 목장으로 개발되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과학자들은 2007년부터 이곳에 야생동물을 재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양서류, 파충류, 조류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나중에는 사슴과 멧돼지류 같은 대형 포유류로 확대됐다. 그 정점은 2021년 대형 고양잇과(科) 동물인 재규어의 방사였다. 과학자들은 이베라 습지에서 1950년대 멸종한 최상위 포식자가 돌아와 옐로스톤처럼 공포의 풍경으로 생태계를 되살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한 재규어 암컷은 3년 뒤 새끼 세 마리를 낳았다. 재규어의 야생 번식이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다. 재규어는 지난 5월 현재 40마리 이상으로 불었다. 아직 먹이사슬 연쇄 효과로 인한 생태계 복원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이미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가축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제거 대상으로만 여겼던 재규어가 이제는 관광객을 불러오는 고마운 존재로 대접받고 있다.
이베라 습지의 야생동물 복원에서 재규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아르헨티나 야생 복원 재단이 마르셀로 카나베리 작가에게 의뢰한 복원 상상도에서 잘 나타난다. 그림은 왼쪽 아래에 있는 재규어에 먼저 눈길이 가는 구도로 그려졌다. 2014년에 나온 첫 그림에는 없었는데 재단 측이 새로 도입된 동물을 추가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돼지류인 페커리, 마코앵무와 같이 들어갔다. 그림대로 재단은 재규어를 이베라 습지 생태계 복원의 핵심 종(種)으로 다루고 있다.

한반도에 호랑이가 돌아온다면
우리나라도 반달가슴곰과 여우 같은 포식자의 야생 복원 사업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2004년 당시 지리산에 남은 야생 반달가슴곰은 5마리 안팎뿐이었는데, 러시아에서 들여온 곰을 방사하면서 올해 96마리까지 늘었다고 추정된다. 80% 이상이 야생에서 태어났다. 붉은여우도 2012년부터 소백산을 중심으로 복원해 현재 100마리 이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반달가슴곰은 덩치는 커도 잡식성으로 최상위 포식자는 아니다. 붉은여우도 고라니 새끼를 사냥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는 했지만 중간 단계 포식자에 그친다. 공포의 풍경 효과가 나타나려면 한반도에서 멸종한 호랑이·늑대·표범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복원돼야 하지만 시작도 못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서식지다. 대형 포식자는 수백㎢ 이상의 넓은 행동권이 필요한데 한국의 산림은 도로·도시·농경지에 끊긴 곳이 많고, 휴전선이 백두대간도 남북으로 갈라놓아 쉽지 않다. 사람과의 공존 문제도 어렵다. 반달가슴곰은 예상과 달리 등산객과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양봉에 피해를 줘 계속 논란이 됐다. 붉은여우는 폐사율이 높았는데 30% 정도는 찻길 사고나 불법 사냥 도구, 농약 등 인간 때문에 죽었다.
해외의 퓨마·늑대 복원 경험은 맹수가 인간과 공존할 길을 알려준다. 최근 국내 도로에서 고라니 충돌 사고가 늘었는데 포식자들이 있었다면 고라니가 도로 근처에 가지 않았을 수 있다. 멧돼지로 인한 농가 피해도 마찬가지다. 최상위 포식자의 귀환은 멧돼지가 더 깊은 숲으로 숨게 할 것이다. ‘타이거 킹’이 한반도 생태계를 다스린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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