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뽀얀 김 ‘모락’…수원 정자시장 20년 만둣집 [먹어볼만두]

서다희 기자 2026. 8. 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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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는 추억을 불러오는 음식이다. 얇은 피 안에 소를 가득 채운 만두 한입에는 오래된 시장 골목과 동네 만둣집, 가족끼리 둘러앉아 판만두 한 판과 모밀을 나눠 먹던 풍경이 함께 담겨 있다.

담백하고 얇은 만두피를 좋아한다면 두툼하고 단맛이 도는 피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왕만두가 두툼한 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판만두는 피부터 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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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큰한 왕만두부터 쫄깃한 판만두…서로 다른 매력
쫄면 ‘중간맛’은 제법 매콤…고기·김치 특징도 뚜렷
가게 안팎 무전기로 '칙칙'…배달은 ‘공공 배달앱’만

만두는 추억을 불러오는 음식이다. 얇은 피 안에 소를 가득 채운 만두 한입에는 오래된 시장 골목과 동네 만둣집, 가족끼리 둘러앉아 판만두 한 판과 모밀을 나눠 먹던 풍경이 함께 담겨 있다. 특별한 날을 기다려야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만두 앞에서는 오래전 기억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만두는 오랫동안 서민들의 한 끼이자 간식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시장 골목에서도, 동네 분식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몇 사람이 둘러앉아 한 판을 시켜 나눠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오래 곁에 남은 음식이다.

그래서 만두를 찾아보기로 했다. 화려한 맛집보다 동네와 시장 한편에서 오랫동안 찜통을 지켜온 만둣집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만두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수원 정자시장 ‘대왕만두’다.

수원 정자시장에 위치한 20년된 만둣집 전경. 이실유기자

“만두 한 판이랑, 쫄면 하나요.”

수원 정자시장 골목 안쪽. 과일가게와 생선가게를 지나 걷다 보면 유독 뽀얀 김이 솟아오르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찜통 뚜껑이 열릴 때마다 손바닥만 한 왕만두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게 안은 장을 보러 나온 주민과 점심을 해결하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물론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자리도 한쪽에 마련돼 있다. 메뉴판에는 만두를 비롯해 쫄면과 라볶이, 김밥 등 익숙한 분식 메뉴들이 빼곡하다.

가게 밖 찜기 앞에는 박경애씨(63)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40대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으니 어느덧 20년가량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아온 셈이다. 폭염이 이어진 이날도 찜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주문을 받고 있었다.

■ 큼직한 왕만두, 한입 베어 물면 먼저 느껴지는 ‘달큰한 피’

자리를 잡고 왕만두와 판만두, 쫄면을 주문했다. 잠시 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왕만두가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올랐다. 고기와 김치를 두 개씩 섞어 담은 네 알이다.

왕만두 하나를 집어 반으로 갈랐다. 두툼한 피 안에는 고기와 채소로 만든 소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이름만 ‘왕만두’인 집은 많다. 막상 받아보면 ‘왕’이라는 이름이 민망할 만큼 평범한 크기인 경우도 있다. 이곳은 적어도 크기만큼은 이름값을 한다. 하나를 손에 올려보니 제법 묵직하다. 네 개가 한 접시에 놓이자 간식보다는 한 끼 식사에 가까워 보였다.

그런데 첫입에서 가장 먼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고기소도, 김치소도 아니었다. 만두피였다. 일반적인 만두피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은근한 단맛이 났다.

고기 왕만두는 육향이 비교적 또렷하다. 채소가 고기 맛을 덮기보다는 뒤에서 받쳐주는 느낌이다. 반면 김치 왕만두는 첫입부터 제법 매콤하다. 김치의 알싸한 맛이 먼저 올라오고, 뒤이어 달큰한 피가 매운맛을 부드럽게 눌러준다.

피에서 단맛이 나는 이유가 궁금해 박씨에게 물었다. 그는 반죽에 빵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반죽을 일부 섞는다고 설명했다. 이 집 왕만두의 개성은 만두소보다 피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물론 취향은 갈릴 수 있다. 담백하고 얇은 만두피를 좋아한다면 두툼하고 단맛이 도는 피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찐빵처럼 폭신하면서 달큰한 피를 좋아한다면 익숙하게 손이 갈 만하다.

김치왕만두(왼쪽)와 고기왕만두. 빵같은 달큰한 피가 매력이다. 이실유기자


■ 얇고 쫄깃한 피 속 또 다른 매력의 ‘판만두’

같은 집에서 나오는 만두지만 판만두는 왕만두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왕만두가 두툼한 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판만두는 피부터 얇다.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 속이 은근히 비칠 정도다. 얇은 피 안에는 만두소가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

고기 판만두는 채소보다 고기 맛이 먼저 느껴진다. 흔히 고기만두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부추나 당면의 향보다는 육향이 앞선다.

김치 판만두는 왕만두보다 매운맛이 좀 더 직접적이다. 단맛이 있는 두꺼운 피가 매운맛을 감싸주지 않기 때문이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면 고기 판만두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개인적으로는 만두소 자체의 맛을 즐기기에는 판만두 쪽이 더 좋았다. 반대로 이 집만의 특징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맛 나는 두툼한 피를 가진 왕만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고기 판만두(왼쪽)와 김치 판만두. 이실유기자


■ ‘중간맛’이 이 정도면 매운맛은 ‘쓰읍…’

만두만 계속 먹다 보면 입안이 조금 무거워진다. 이럴 때 분식집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짝은 쫄면이다.

순한맛·중간맛·매운맛 가운데 중간맛을 골랐다. 이름 그대로 적당히 매울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처음 몇 젓가락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먹을수록 혀끝에 매운맛이 차곡차곡 쌓였다. 매운 음식에 약한 사람 기준으로는 ‘중간맛’이라는 이름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때 왕만두가 제 역할을 한다. 쫄면 한입을 먹고 고기 왕만두를 베어 물면 달큰한 피가 매운맛을 잠시 눌러준다. 처음에는 만두를 먹기 위해 쫄면을 주문했는데, 나중에는 쫄면을 먹기 위해 만두를 찾게 됐다.

매운맛에 자신 있다면 별일 아닐 수 있다. ‘맵찔이’라면 순한맛부터 시작하는 편이 안전하겠다.

■ 노하우가 묻어난 ‘무전기 소통’…배달은 ‘공공배달’만

만두 한 접시를 비워낼 때쯤, 문득 가게 안쪽과 밖을 바쁘게 오가는 주문 방식에 시선이 머물렀다. 가게 밖, 자욱한 하얀 김을 내뿜는 찜기 곁에는 무전기 한 대가 놓여 있다.

왁자지껄한 시장통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무전기에서는 쉴 새 없이 주문 소리가 흘러나온다. 가게 문을 자주 열어젖히면 찜기의 뜨거운 열기가 매장 안을 해칠까 싶어 쥐어든 지혜이자 배려다.

또 요즘의 분식집이라면 스마트폰 화면 속 수많은 배달앱 목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대왕만두는 조금 다르다.

이 가게가 이용하는 배달 플랫폼은 경기도 공공배달앱 ‘배달특급’이 유일하다. 다른 민간 배달앱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손님이 멈춰 설 때마다 무전기는 쉴틈이 없었다. 시장의 소음 사이로 짧은 주문이 무전기를 타고 오갔고, 찜기에서는 연신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서다희 기자 happiness@kyeonggi.com
이실유 기자 lsy0808@kyeonggi.com
남희정 인턴기자 southeee9210@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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