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원인만 콕 집어 공격… ‘항체 치료제’ 전성시대
60대 여성이 최근 기억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병원을 찾았다고 해보자. 검사 결과 초기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됐다. 과거라면 처방할 수 있는 약은 기억력 저하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치료제가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쌓이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비정상 단백질을 찾아가 달라붙어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가 쓰인다.
비슷한 일이 암 병동에서도 벌어진다. 유방암 환자의 암세포 표면에 허투(HER2)라는 단백질이 많이 만들어져 있다면 HER2를 알아보는 항체를 투여하여 암 발생 요인을 차단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염증성 장질환을 치료하는 진료실에서도 질병 발생 핵심 요인에 달라붙어 차단하는 항체는 익숙한 약이 됐다. 바야흐로 항체 치료제 전성시대다.

특정 항원의 한 가지 부위에 결합하는 단일클론항체를 만드는 기술이 등장한 지 50년, 2025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리뷰 면역학’은 세계적으로 승인된 항체 치료제가 최소 212개에 이르고, 수천만 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항체의 가장 큰 특징은 선택성이다. 수많은 단백질 가운데 자신이 인식하도록 만들어진 특정 표적을 찾아 결합한다. 항체를 ‘유도 미사일’에 비유하는 이유다. 항체는 암세포에 유난히 많이 존재하는 특정 단백질을 찾아갈 수 있고, 자가면역질환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특정 신호만 차단할 수 있다.
항체 치료제가 가장 화려하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는 암이다. 항체는 암세포의 ‘명찰’을 읽는다. 암세포 표면에는 암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러 단백질(항원)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HER2다. 일부 유방암에서는 암세포 표면에 HER2 단백질이 과도하게 발현된다. 여기에 달라붙어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체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HER2 양성 유방암 치료 성적은 크게 향상됐다<항체 치료제 사례 그래픽 참조>. 항체 치료제 덕에 암 치료 개념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어느 장기에 암이 생겼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그 암세포가 어떤 분자적 명찰을 달고 있느냐가 치료제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항체가 항암제를 짊어지고 가서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이른바 ‘항체-약물 접합체(ADC)’다. 이 약물은 항체, 연결고리(linker), 강력한 항암제가 한 몸체로 구성된다. 항체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항체가 암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에 결합하면 항암제가 암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이후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항체에 매달려 있던 강력한 항암제가 방출돼 암세포를 죽인다. 이 같은 방식의 ADC는 유방암뿐 아니라 폐암, 위암, 혈액암 등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항체 치료제는 ‘이중특이항체’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일반적인 항체가 한 종류의 표적을 인식한다면 이중항체는 서로 다른 두 표적을 동시에 붙잡도록 설계할 수 있다. 한쪽 팔로 암세포를 잡고 다른 팔로 면역세포 T세포를 잡는 식이다. 항체가 둘을 강제로 만나게 해주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일대일로 공략해 사멸시킨다.
최근 항체 치료제 영역 확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분야가 알츠하이머 치매다. 환자의 뇌에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다. 항체 치료제는 아밀로이드 베타의 특정 형태를 찾아가 결합한다. 그러면 뇌의 면역세포가 이를 제거하는 과정이 촉진되고, 뇌의 아밀로이드 양은 감소한다.
암 전문의들은 “앞으로 항체에 어떤 항암제를 매달 것인지, 몇 개를 붙일 것인지, 면역세포를 어떻게 암세포로 끌어들일지에 따라 암 치료 판세가 결정될 것”이라며 “항체가 암세포도 찾고, 치매 단백질도 치우고, 염증 스위치도 끄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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