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기억을 넘어…서도호 30년 예술세계 한자리에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도호 작가가 집과 기억, 이동을 탐구해 온 30여 년의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8월 27일부터 내년 2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대규모 개인전 '서도호'를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대학 시절 초기작부터 대표작, 최근작과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드로잉·조각·영상·설치 작품과 아카이브 등 500여 점을 선보인다.
서 작가는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테이트 모던 전시가 최근 10년간 작업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면, 이번 전시는 유치원 시절 그림부터 최신작까지 폭넓게 아우른다”며 “회고전이라기보다 현재 작업의 시작점과 씨앗을 모아놓은 특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성장한 뒤 미국과 유럽 등 여러 지역을 오가며 살아온 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과 공동체, 집과 이동,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해 왔다. 특히 집을 고정된 거주지가 아니라 기억과 경험이 축적되고 이동하는 공간으로 재해석한 작업으로 널리 알려졌다.

다만, 서 작가는 자신을 ‘천으로 집을 만드는 작가’로 한정하는 시선에는 거리를 뒀다. 그는 “집은 여러 관심사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와 영상,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벼운 주제부터 무거운 주제까지 폭넓게 다룬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4·5전시실과 공용공간, MMCA스튜디오 등에서 펼쳐진다. 우선, 외부 복도에 마련된 ‘시드 뱅크(Seed Bank)’에서는 작가의 유년기 드로잉과 조각, 대학 졸업작품, 유학 전 제작한 설치 작품 등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 한옥 마당의 나무를 깎아 만든 해양동물 조각을 비롯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 이전의 작업과 기록도 처음 공개된다.
서 작가는 초기작을 다시 꺼내 보인 데 대해 “옷을 모두 벗은 것 같은 느낌”이라며 “어린 시절 그림을 살펴보면서 지난 30년간 이어온 작업의 시작과 씨앗이 이미 그 안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3전시실에서는 성북동 한옥의 대문을 재현한 '작은 문'(2017)을 시작으로 약 200점의 드로잉을 선보인다. 2009년부터 젤라틴 티슈와 수제 종이 등을 활용해 제작한 ‘실 드로잉’을 비롯해 작가의 상상 세계와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살펴볼 수 있다. 출품된 드로잉 대부분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4전시실에서는 대표 연작 '러빙/러빙'을 통해 장소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을 조명한다. 작가는 자신이 떠나왔거나 곧 사라질 장소에 한지를 밀착한 뒤 흑연과 색연필로 표면을 문질러 공간의 흔적을 기록했다. 성북동 한옥을 소재로 한 '러빙/러빙: 서울 집'과 개인의 경험에서 공동체의 기억으로 시선을 확장한 '러빙/러빙: 광주극장 사택' 등이 전시된다.
천으로 만든 집에 문손잡이와 전등 스위치, 경첩 등의 세부 요소를 정교하게 구현한 이유로는 공간에 축적된 신체의 기억을 꼽았다. 서 작가는 “반복적으로 만지는 문손잡이나 전등 스위치의 위치가 공간 안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결정한다”며 “공간의 외형보다 그 안에서 반복했던 움직임을 통해 장소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5전시실에서는 최근 천 작업인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2024)을 비롯해 '다리 프로젝트', 'Who Am We?', '바닥' 등을 만날 수 있다. 공용공간에는 서울과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작가가 거주했던 공간을 연결한 길이 22m의 대형 설치 작품 '둥지/들'(2024)이 자리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부성’을 주제로 작가의 사적인 경험과 가족 이야기를 담은 작품도 공개한다. 신작 '사랑의 기억'(2026)은 작가의 코트 안쪽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를 달고, 그 안에 추억이 담긴 사물을 넣어 가족과 함께한 기억을 표현한 작품이다.
서 작가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뒤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가족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며 “옷은 몸을 감싸는 가장 작고 은밀하면서도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며, 이 개념을 확장하면 건축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대표작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NY 10011'(2012)은 오는 12월 18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서울박스에서 별도로 공개된다. 작품의 전체 유닛을 한자리에 설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 박보검은 이번 전시의 오디오가이드에 목소리를 재능기부했다. 전시는 서울에 이어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과 홍콩 M+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서도호의 작업을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그의 예술에 관한 연구와 논의를 한층 심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