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사 도입, 연명의료법 개정보다 별도 특별법이 적절"

이재원 기자 2026. 8. 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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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말기 자기결정권과 국가의 생명보호의무 간 균형 필요
미국·캐나다·호주 등 해외 제도 비교…말기환자 중심의 제한적 접근 제안
호스피스·완화의료·사회안전망 전제로 반복 요청·독립 심사 등 안전장치 마련해야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의사조력사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을 단순히 확대하기보다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해 독립적인 규율체계를 마련하는 방안이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있다는 국회입법조사처의 분석이 나왔다.
사진 출처=의학신문 DB

국회입법조사처는 26일 발간한 '해외 의사조력사 제도 유형과 국내 입법의 방향성 검토' 보고서를 통해 해외 의사조력사 제도를 비교하고 국내 입법 방향을 검토했다.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지난 2018년 시행되면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유보·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다만 현행 제도는 적용 시점을 '임종과정'으로 제한하고, 허용되는 행위도 연명의료의 유보·중단에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아직 엄밀한 의미의 임종기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고 고통이 지속되는 환자나, 연명의료 중단만으로는 자신의 고통과 삶의 마무리 방식에 대한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말기·비말기 중증질환자 등은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과 관련해 의사가 치사약을 처방·제공해 환자가 스스로 복용하도록 하는 의사조력사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다만 보고서는 연명의료중단이 생명유지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라면 의사조력사는 사망을 직접적인 결과로 한다는 점에서 법적·윤리적 성격이 크게 다르다고 강조했다.

해외 제도도 허용 범위·감독체계 따라 크게 달라

국회입법조사처는 해외 의사조력사 제도를 △말기환자 한정 의사조력자살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함께 허용하는 포괄형 △의료적 조력사망(MAID·VAD) 모델 △형법·판례·민간단체를 통한 특수 허용형 등 4가지로 구분했다.

미국 오리건주 등이 대표적인 말기환자 한정 의사조력자살 모델에서는 회복 불가능하고 자연사가 임박한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 스스로 치사약을 복용하는 방식만 허용한다. 반복 요청, 대기기간, 복수 의사의 판단, 의사결정능력 확인 등을 요구해 허용 범위를 제한한다.

반면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스페인 등은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하나의 법률체계 안에서 병렬적으로 허용하는 포괄형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단순한 말기 여부보다는 회복 불가능한 의학적 상태와 참을 수 없는 고통, 자발적이고 숙고된 요청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캐나다의 MAID와 호주의 VAD는 조력사망을 의료·보건체계 안의 하나의 제도로 통합해 관리하는 모델이다. 캐나다는 2016년 도입 당시보다 대상 범위가 확대돼 현재는 비말기 중증질환이나 장애 환자까지 논의 범위가 넓어진 반면, 호주는 대체로 말기 또는 진행성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와 독일은 별도의 포괄적 조력사망법을 두기보다는 형법과 판례, 민간단체 및 직업윤리 등을 통해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특수한 형태로 분류됐다.

보고서는 해외 사례에서 제도의 허용 범위뿐 아니라 신청·평가·집행·사후보고 등 감독체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도 중요한 차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제도 도입 이후 대상 범위가 비말기 질환이나 정신질환, 삶의 질 저하 사례까지 확대되는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 논쟁이 일부 국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는 허용 범위를 신중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단순 편입보다 독립 특별법이 적절"

국내 입법 방식과 관련해 보고서는 크게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정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의사조력사 관련 규정을 편입하는 방식이다. 기존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등 이미 구축된 제도적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연명의료 유보·중단과 의사조력사는 법적 성격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명의료결정은 무의미한 생명유지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소극적 결정인 반면, 의사조력사는 의료인이 환자의 사망을 직접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적극적 행위에 관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제도를 하나의 법률에서 규율할 경우 생명유지치료 중단과 적극적인 생명단축 행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의사조력사를 연명의료 유보·중단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규율영역으로 보고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이 법체계 및 정합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크다고 제안했다.

특별법을 통해 대상 환자의 요건과 질환·여명 기준, 의사결정능력, 반복 요청과 숙려기간, 복수 의료인의 판단, 독립 심사, 호스피스·완화의료 제공 여부 확인, 사후 보고와 감독 등을 종합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형법 제252조와의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형법은 촉탁 또는 승낙에 의한 살인과 자살을 교사·방조한 행위를 처벌하고 있어, 환자의 요청이 있더라도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거나 치사약의 복용을 돕는 행위가 형사책임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화할 경우 법정 요건과 절차를 충족한 의사조력사 행위에 대해 형법상 촉탁·승낙살인 또는 자살방조 규정의 적용을 어떻게 배제할 것인지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사조력사는 최후의 보루…사회안전망 강화가 전제"

의료법과의 관계도 주요 입법 과제로 제시됐다.

치사량의 약물을 처방·제공하는 행위가 현행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이를 거부하는 의사의 양심적 거부를 진료거부 금지 규정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의사가 종교적·윤리적 신념을 이유로 의사조력사 참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양심적 거부권을 인정하더라도 환자의 제도 접근권이 제한되지 않도록 지정 의료기관이나 지원팀을 마련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의사조력사 논의가 단순히 '죽을 권리'의 문제로 접근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의사조력사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반적인 권리가 아니라 다른 수단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고통과 상황에서만 검토되는 '최후의 선택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말기·임종·비말기 중증질환의 구분과 여명 기준, 호스피스·완화의료 제공, 환자와 가족의 의사 확인 방식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가족이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 의료비 부담, 가족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통증 조절과 완화의료, 심리·사회적 지원, 가족 돌봄 부담 완화, 장애인·저소득층에 대한 소득·주거·의료비 지원, 고령자 돌봄 등 사회적 안전망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 의사조력사 논의에 앞선 과제라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네덜란드·캐나다식 광범위한 포괄형 모델을 우리 사회가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우선 말기환자 한정 의사조력자살과 임종·말기 연명의료중단의 정교한 확장 등 현실적인 논의 범위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반복적인 요청과 충분한 숙려기간, 다학제 평가, 독립 심사위원회, 투명한 사후보고·감독체계 등을 핵심 안전장치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