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다” 엑셀방송 뛰어든 청년들, 위약금 늪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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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사이버 룸살롱'으로 규정한 업계. 30대 남성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유튜버의 권유로 이곳, 이른바 '엑셀방송' 업계에 발을 들였다.
계약 해지를 원한다면 원칙적으로 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A씨는 활동 일주일 만에 일방적으로 방송을 중단한 상태라 "보호 가치가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비용을 얼마 썼는지, 수입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배분율이 얼마인지 엑셀로 정리는 하지만 정확한 근거가 없다"며 "엑셀방송이라는 이름값을 하듯 엑셀로만 기록하는데, 증빙이 있어야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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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법원, 전속계약 효력 존중…피프티피프티 사건 이후 변화”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국세청이 '사이버 룸살롱'으로 규정한 업계. 30대 남성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유튜버의 권유로 이곳, 이른바 '엑셀방송' 업계에 발을 들였다. 실시간 후원금 현황을 엑셀(Excel) 시트로 띄운 채 진행하는 이 방송은 출연자 간 후원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다. 자극적 행위나 과도한 신체 노출이 곧 수익과 직결된다.
A씨는 소속사와 수익을 5대 5로 나누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를 미리 검토해 줄 변호사는 없었다.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서명하라는 곳에 서명만 했다"고 그는 말했다.
문제는 계약서 안에 있었다. 중도 해지 시 위약금은 1000만원으로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옆에는 "정확한 손해액은 산정할 수 없다"는 모호한 문구가 함께 붙어 있었다. 소속사는 상표 등록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A씨는 계약 체결 이후 개인적인 일로 부상을 입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그는 초기에 해지 의사를 밝히는 게 유리하다는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활동 일주일 만에 그만두려 했다.
하지만 위약금이 발목을 잡았다. 계약은 지금까지도 해지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차후 다른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얻더라도 계약이 유효한 이상 나눠야 한다"고 그는 취재진에 토로했다. 비슷한 시기 함께 교육받은 스트리머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수익을 낸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기대만큼 벌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는 비단 A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인터넷 방송인 영베리는 지난 4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로 엑셀방송에 나서게 됐다고 주장했다. K팝 댄스 경연 콘텐츠로 소개받아 합류했지만, 방송 분위기는 애초 약속과 다르게 흘러갔다. 참여를 중단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발목을 잡은 건 위약금 조항이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칠 행동을 하면 예상 수익 상당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조항 탓에, 당장 수천만원의 빚을 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통제는 계속됐다. 영베리는 방송 시간과 제목, 시청자 대응, 심지어 의상까지 소속사로부터 강도 높은 관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동의 없이 유튜브·틱톡에 올라간 방송 클립을 두고 경찰 신고를 언급하자, 그제야 회사 측은 마케팅팀 소행임을 인정했다. 그동안 이를 알리지 못한 이유로는 계약서상 비밀유지 조항을 들었다.
A씨의 사례와 마찬가지다. 모호하거나 과도한 위약금·비밀유지 조항은, 방송인들의 정당한 문제 제기와 계약 해지를 가로막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었다.
"'미등록·모호한 조항'만으로는 계약 무효 안 돼"
이런 계약서는 법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까. CJ ENM 방송사업부문 PD 출신인 이승우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전속계약도 어쨌든 계약인 만큼, 법원은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사기나 협박처럼 민법상 무효·취소 사유(108조~110조)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회사 상호가 미등록됐다는 사정만으로 계약이 당연히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사안은 '무효'가 아니라 신뢰관계 상실을 이유로 한 '전속계약 해지 소송'으로 다퉈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걸그룹 뉴진스가 소속사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효력정지 소송과 같은 구조다.
방송인 박수홍씨의 사건을 맡았던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도 법인 미등록이 계약 효력과는 별개라고 봤다. "엔터 사업장은 법인으로 등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게 계약의 효력 요건까지는 아니다"라고 노 변호사는 설명했다.
"정확한 손해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문구를 두고는 두 변호사의 진단이 겹쳤다. 이승우 변호사는 "나가고 싶은 사람이 돈을 먼저 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당사자는 해지를 주장하면 되고, 위약금을 청구하려면 회사 측이 반소로 손해액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그런 내용이 모호하게 쓰여 있었다면 원칙적으로는 계약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맞지만, 대부분 BJ나 연예인 지망생들은 그런 내용을 잘 모른 채 서명한다"고 덧붙였다.
노종언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해당 조항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렇게 모호하고 추상적인 위약금 조항이 어디 있느냐"며 "그 부분만큼은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위약금 조항의 무효가 계약 전체의 무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승우 변호사도 "무효와 해지는 다른 개념"이라며 "몇 개 조항이 불공정하다고 계약 자체를 원천 무효로 되돌릴 수는 없고, 해지 소송을 제기할 사유가 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계약서 안 읽은 책임, 본인에게도 있다"
이승우 변호사는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서명한 책임이 전적으로 회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집을 살 때 계약서를 제대로 안 봐서 문제가 생겼다고 나중에 무를 수 없는 것과 같다"며 "성인인 이상 왜 계약서를 안 읽었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고, 본인 과실이 인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판례 흐름의 변화도 언급했다. "피프티피프티 사건 이후로 법원도 회사 입장을 고려해 냉철하게 보는 경우가 늘었다"며 "요즘은 예전처럼 크리에이터 측이 무조건 유리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엑셀방송 업계에서도 수익 배분 방식에 불만을 품고 뒤늦게 소송을 제기하는 BJ들이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종종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위약금과 손해배상액을 내더라도 빨리 나가는 게 더 이득인 경우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노종언 변호사는 A씨의 사례를 다소 냉정하게 짚었다. 계약 해지를 원한다면 원칙적으로 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A씨는 활동 일주일 만에 일방적으로 방송을 중단한 상태라 "보호 가치가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어 노 변호사는 "1~2년 활동하면서 회사가 세금을 아끼려고 차명 계좌로 후원금을 받고, 정산표 증빙이 불확실한 정황이 쌓이면 그걸로 소송에서 거의 이긴다"면서도 "지금은 그런 증거가 쌓일 시간조차 없었다"고 진단했다.
노 변호사가 짚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산 구조 자체였다. A씨는 회사와 수익을 5대 5로 나누기로 계약했다고 밝혔지만, 노 변호사는 "그 5대 5가 신빙성 있는 5대 5냐"고 되물었다. 회사가 100만원 벌었다고 하면, 실제로는 200만원을 벌고 100만원이라고 속이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산 근거 자료는 대부분 엑셀 파일 한 장이 전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용을 얼마 썼는지, 수입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배분율이 얼마인지 엑셀로 정리는 하지만 정확한 근거가 없다"며 "엑셀방송이라는 이름값을 하듯 엑셀로만 기록하는데, 증빙이 있어야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후원금을 소속사 명의가 아닌 차명 계좌로 받는 관행도 문제로 꼽았다. "탈세와 차명, 불투명한 정산 구조가 이 업계 대표들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이다. 국세청 조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당연하다. 엄청난 돈이 오가는데 생각보다 사각지대"라고 답했다.
"200만~300만원 벌게 해준다"는 말, 기망일까
A씨가 처음 들었던 것과 같은 "하루 200만~300만원 벌게 해주겠다"는 말을 근거로 계약을 유도했다면 기망(欺罔)에 해당하는지 묻자, 노 변호사는 "그건 계약 당사자가 판단할 부분"이라며 "잘하면 벌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은 기망이 아니라 호객 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 발언이 계약서에 '보장' 조항으로 명시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200만원을 보장하겠다고 써놓고 매출이 안 나와 지급하지 못하면, 그건 정산 의무 위반이라 계약 해지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노 변호사는 엑셀방송 산업을 두고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는 과정에 있다"며 "그동안 정산 구조뿐 아니라 탈세, 마약, 조직폭력배 개입, 성추행·동거 등 다양한 문제가 산업 전반에 걸쳐 있었으나 이제는 점점 양성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BJ철구의 도박 사건도 예로 들며 "그게 엑셀 자금을 통해 도박한 것"이라며 "정산 구조가 얼마나 투명하지 않으면 남의 돈이 그렇게 도박으로 쓰였겠느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계약 전 법률 검토 부재, 위약금 산정 기준의 불명확성, 미등록 법인과의 계약 체결이 스트리밍·인플루언서 산업에서 반복돼 온 문제라고 지적한다. 급성장하는 엑셀방송 시장에서도 크리에이터들이 계약과 정산 관련 분쟁에 놓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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