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별점도 자본… 데이터 경제 속 당신은 몇 등급?

사지원 기자 2026. 8. 2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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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를 확인한다.

책은 데이터를 남기지 않거나 디지털 시스템에서 이탈하려는 행위 자체가 오히려 의심스러운 신호가 돼 개인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거대 기술기업의 데이터 수집을 단순히 '악'으로 규정하는 익숙한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때 디스토피아적 상상처럼 보였던 장면을 이 책은 오늘날 데이터 경제의 작동 원리와 연결해 현실의 문제로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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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높은 식당에 찾아가고 심박수-운동량 등 데이터화
숫자로 평가하는 디지털 세상… 새로운 ‘사회적 계급’ 만들어
검색 기록 등 개인 정보에 따라 온라인 세상에서 평가 달라져
◇서열사회/마리옹 푸르카드, 키런 힐리 지음·서영찬 옮김/324쪽·1만8000원·동아시아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 중 에피소드 ‘추락’의 한 장면. 이 에피소드는 소셜미디어 평점이 개인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까지 좌우하는 사회를 섬뜩하게 그려낸다. 신간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사람의 가치를 수치화하고 서열화하는 새로운 ‘서열 사회’가 기존 불평등을 강화하고 또 다른 차별의 기준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넷플릭스 유튜브 화면 캡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를 확인한다.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 깊은 잠에 든 시간, 수면 중 깬 시간 등이 숫자로 정리돼 있다. 오늘의 수면 상태는 ‘관심 필요’. 손목에 찬 작은 기계는 심박수와 걸음 수, 운동량까지 몸 상태를 촘촘한 데이터로 환산해 보여준다.

건강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가장 빠른 길’로 출근하고, 주문이 많거나 별점이 높은 식당을 찾아 밥을 먹는 삶에 익숙하다. 타인이 매긴 점수와 순위, 알고리즘의 추천이 어느새 일상의 선택을 좌우한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와 듀크대 사회학과 교수가 함께 쓴 이 책은 이처럼 삶 곳곳을 파고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새로운 ‘사회적 위계’를 만들어 냈다고 본다. 데이터는 개인의 건강을 챙기거나 조금 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편리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검색 기록과 신용점수, 위치 정보,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같은 디지털 흔적은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재료가 된다. 저자들은 개인마다 축적되는 이런 디지털 자본을 ‘고유 자본(eigencapital)’이라고 부른다.

저자들은 고유 자본을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 자본’과 대조해 설명한다. 부르디외는 취향과 학력, 문화적 경험처럼 개인이 지닌 자원이 사회적 위치를 나누고 불평등을 재생산한다고 봤다. 오늘날엔 대면 관계와 기존 제도가 수행하던 이런 ‘분류’의 상당 부분을 알고리즘이 대신한다. 검색 기록과 소비 패턴, 클릭과 이동 경로처럼 온라인에 남긴 흔적은 개인을 평가하는 수치로 전환된다. 그 결과로 취업이나 보험 가입, 물건 가격부터 콜센터 대기 시간까지 우리가 받는 대우가 보이지 않는 디지털 평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더 섬뜩한 건 이런 ‘데이터 왕국’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책은 데이터를 남기지 않거나 디지털 시스템에서 이탈하려는 행위 자체가 오히려 의심스러운 신호가 돼 개인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알고리즘이 검색 결과와 소비를 갈수록 개인화할수록,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된 현실보다 각자에게 맞춰진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점 역시 이런 예속을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정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비튼 ‘자기 주권의 길’을 제시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하이에크가 국가의 개입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면, 저자들은 디지털 기술이 개인의 자유와 행위능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 자유를 관리하고 증명할 책임까지 개인에게 떠넘기는 역설을 짚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거대 기술기업의 데이터 수집을 단순히 ‘악’으로 규정하는 익숙한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용자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내놓으면서도 계속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에는 분명 편리함이란 대가가 존재한다. 저자들은 이 거래의 양면성을 인정하면서, 그 편리함 뒤에서 데이터가 어떻게 새로운 분류와 위계를 만드는지 추적한다. 부르디외와 하이에크 등 기존 사회학·사회과학의 논의를 디지털 사회에 끌어와 새로운 틀로 재구성한 점도 대담하다.

영국 공상과학(SF)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미러’ 가운데 에피소드 ‘추락’은 소셜미디어 평점이 인간관계의 평판을 넘어 주거와 이동 등 삶의 기회를 결정하는 세계를 그렸다. 한때 디스토피아적 상상처럼 보였던 장면을 이 책은 오늘날 데이터 경제의 작동 원리와 연결해 현실의 문제로 데려온다. 매일 달콤한 편안함을 얻는 대신 무심코 남긴 수많은 데이터가 언젠가 나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서열표’가 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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