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 없이 판 한약제제, 건강보험 급여 청구 못해”…환수 적법
서울행정법원 “약사법상 무처방 조제 허용돼도 급여 여부는 별개”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최근 한약사 A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 고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는 'B한약국'을 개설·운영하는 한약사로 일반의약품 한약제제인 한신연교패독산연조엑스(단미엑스혼합제)와 한신형개연교탕(단미엑스혼합제)을 한의사의 처방 없이 판매한 뒤 약가와 행위료 등 총 5만10원을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해 지급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해당 비용이 요양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공단은 당초 5만10원을 전산상계 방식으로 환수하려 했으나 상계할 요양급여비용이 발생하지 않자 소득세 등을 제외한 4만8360원을 현금으로 납부하도록 2025년 4월 10일 다시 통보했다.
A는 한의학 분야에서는 의약분업이 시행되지 않아 한약사가 약사법에 따라 한의사의 처방 없이도 한약제제를 조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한약제제도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급여목록에 포함돼 있어 약가와 행위료를 적법하게 청구할 수 있다고 맞섰다.
완제품 그대로 판매…'조제'로 볼 수 없어
하지만 법원은 A가 한약제제를 '조제'한 것이 아니라 완제품 상태로 단순 판매한 것으로 판단했다.
약사법상 조제는 일정한 처방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한 가지 의약품을 일정한 분량으로 나눠 특정 용법에 따라 사용하도록 만드는 행위지만 A가 판매 과정에서 약을 배합하거나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는 등 별도의 조제행위를 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는 것.
재판부는 해당 한약제제가 제조업자가 일정한 분량을 포장한 완제품이라는 점에서 A가 포장된 상태 그대로 판매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경우 일반의약품을 판매한 것에 불과해 그 행위나 약제가 요양급여 대상에 포함될 여지가 없다고 봤다.
설령 A가 한약제제를 조제했다고 보더라도 요양급여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와 더불어 법원은 약사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은 입법 목적과 규율 대상이 서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약사가 한의사의 처방 없이 일반의약품 한약제제를 조제하는 것이 약사법상 허용되더라도 그 사정만으로 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대상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요양급여는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의학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실시해야 한다"며 "이에 따라 한약사가 한의사의 진단과 처방 없이 일반의약품을 조제·판매했다면 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이 되는 '약사법에 따른 조제'로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처방 조제는 행위료·약가 모두 비급여
아울러 약사와 한약사 사이의 형평성도 판단 근거가 됐다. 약사가 의사나 치과의사의 처방 없이 일반의약품을 조제하면 비급여 대상이 되지만 한약사가 한의사의 처방 없이 일반의약품 한약제제를 조제한 경우만 요양급여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현행 급여기준은 약사가 의사·치과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국에서 의약품을 조제하거나 한방의료기관이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한약제제를 조제하는 경우에만 행위료를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약제제 약가를 요양급여비용으로 산정할 수 있는 기관도 국립병원 한방진료부와 한방병원, 한의원, 보건의료원 한방과 등 '한방요양기관'으로 한정돼 있어 한약국에서 처방 없이 조제·판매한 한약제제의 약가를 지급할 명시적 근거가 없다는 게 법원의 의견.
한편 공단은 소송 과정에서 두 번째 환수 통보는 기존 처분의 납부 방식만 변경한 것이어서 소송 제기 기간이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환수 금액이 줄고 납부 방식이 전산상계에서 현금납부로 변경되면서 납부기한과 연체금, 압류 등 새로운 법적 효과가 발생한 만큼 별개의 처분에 해당한다고 봤다.
공단이 처분서에서 90일 이내에 불복할 수 있다고 안내한 뒤 소송이 제기되자 별도 처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한약사가 약국에서 한의사의 처방 없이 일반의약품 한약제제를 조제한 경우에는 행위료와 약가 모두 요양급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가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한 처분은 적법하다.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