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논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공·친북 프레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반공 이념
분단과 전쟁, 독재 거치며 정치 성향으로 정착
총풍과 평양 무인기 도발 등 안보 위협을 악용
2022년 멸공 챌린지로 혐오 놀이 문화로 확산
잘못된 역사 청산하자는데 '과거보다 미래' 대꾸
과거 밝혀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 미래 아닐까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4∼1927)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특히 광복 81주년을 앞둔 시점에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간의 관심이 급증했고, 그간 하영이 방송 등에 출연해 증조부부터 이어진 집안 내력을 반복적으로 자랑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가중됐다.

집안의 업보 VS 연좌제 논쟁, 그리고 '멸공'
세상 사람 누구도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하영도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몰랐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영과 그 일가에 쏟아지는 비난은 목숨과 재산을 희생해가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후손이 친일 부역자의 후손보다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친일하면 3대가 잘살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고 말하는 그것 말이다.
소셜미디어에선 하영을 비판하는 입장과 옹호하는 입장이 맞섰다.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친일파를 조상으로 두고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조상의 행적을 제대로 모르면서 의료 명문 집안이라며 자신을 어필하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조상의 부정한 행위로 축적한 재산으로 대대로 호의호식하며 살았으니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한다" "자신이 하지 않은 집안의 업적으로 호감을 쌓았으니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비판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 애국지사 후손들은 왜 존경받는 것인가? 과거의 조상일 뿐인데?"라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반면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본인이 저지른 일이 아닌데 연좌제는 가혹하다" "도대체 몇 대까지 내려가야 죄가 끝나는 거냐"는 의견들이 나왔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 해산과 친일파의 반공 전향
1945년 8월 패망 후 38도선 남쪽을 점령한 미군은 군정 통치를 실시했다. 당시 미군정은 38도선 북쪽의 소련을 견제하며 남한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일본인 관료 밑에서 일을 배운 한국인들을 그대로 치안과 행정 업무에 기용했다. 부역자들 상당수가 반공체제에 편입되며 과거 부역 경력을 덮을 새로운 정당성을 확보했고, "친일 대 반일"이라는 이슈는 반공 이슈에 밀려났다. 미군정이 끝나고 남한 단독 선거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 조사와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으나, 이승만 정부와 경찰의 방해로 해산되면서 친일 부역자에 대한 처벌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뒤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에 직면했고, 휴전이 이뤄진 뒤에도 친일 청산의 목소리는 반공의 목소리에 눌린 채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다.

수십 년간 휴전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실제로 북한의 도발에 의한 무력 충돌이 수시로 발생했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핵무장 추진은 북한과 휴전 상태인 대한민국을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하게 했다. 이런 북한의 위협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므로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의 휴전 대치 상태를 특정 집단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인위적으로 위기를 부풀리는 등 악용한 사례도 있는바, 1974년 '인혁당재건위 사건'과 1997년 대선을 앞둔 '총풍 사건'이 그것이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대법원 확정 판결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형이 집행되어 국제법률가협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하기도 했으며, 2007년 재심에서 사형당한 8명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국가권력이 안보와 반공 논리를 동원해 무고한 희생자를 만든 대표 사례가 됐다. 총풍 사건 또한 선거를 앞두고 북한 측과 접촉해 무력 도발을 요청한 사실이 인정되어 관련자들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그리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2024년 윤석열 정부의 '평양 무인기 도발' 사건은 지난 6월 1심에서 일반이적죄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인정되어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게 각각 징역 30년이 선고됐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실제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그 위협을 정치적 프레임으로 소비하는 매카시즘이 뒤섞여 있는데, 이를 처음 이용한 자들이 바로 해방 후 친일 부역 이력이 부각되지 않길 바라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의문이 드는 것은, 현재 반공 프레임으로 친일 비판을 무력화하고자 하는 이들이 81년 전 해방을 맞은 조국에서 친일 부역 행위로 처벌받을까 두려워하던 부역자들과 동등한 처지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애국우파' '애국보수'를 참칭하면서도, 정작 36년간 식민지배를 받으며 수탈당한 역사에 대해서는 냉소적 태도를 보인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똑같은 논리를 펼치는 이들의 정치적 선택 사이에는 분명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놀랄 만큼 이들의 주장은 흡사하다. 도대체 왜 이런 프레임은 반복되는 것인가.
2022년부터 확산된 '멸공'

이들은 애국자임을 자처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면서 "좌파는 집회 때 태극기를 들지 않는다" "태극기를 드는 게 뭐가 문제냐"며 일부는 태극기를 들고 하면 불법 행위마저 합리화된다고 믿고,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 체제에서 2025년 3분기에 시행하기로 결정한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치 정책이 조기대선에 따른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시행되자 "이재명이 중국인을 유입시켰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며 혐중 정서를 멸공으로 포장했다. 또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친중반미 세력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국민의힘이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중국 공산당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온 사실과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의 친중 행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주한중국대사와 만난 행위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국가의 이익을 위한 행보라고 주장하는 등 모순을 드러냈다.
결국 이들은 80여 년 전 친일파가 생존을 위해 실재하는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반공주의자로 전향한 것과 달리,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상대방을 비난하고 낙인찍기 위해 자신들의 모순된 행위마저 반공과 애국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약 4년의 시간 동안 부역한 자들을 처벌했다. 독일은 나치 전범에 대한 처벌에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가해자였던 부끄러운 과거를 찬양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36년간 식민지배를 당하고도 일본의 주권 침탈과 강제노동, 위안부 등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은 과거를 왜곡하면서 전쟁 범죄자들의 넋을 기리는 신사를 총리가 참배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 내부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친일보다 반공이 우선이라는 프레임을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해방 직후나 지금이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 앞에서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는 논리를 반복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보편적 사람들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가 밝혀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의 미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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