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제비티] 17시간 잠 안 자면 ‘만취 상태’···“잘 잤다” 믿다가 수면장애 놓친다
질환 연관성 높은 수면
17시간 깨면 만취 상태
원격 진료로 장벽 낮춰

수면이 식단 운동과 비견될 만큼 중요한 건강 지표로 부상했지만 정작 수면 장애를 겪고도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적인 피로와 코골이 등을 스트레스나 노화 탓으로 돌리며 방치하는 사이 신체 및 뇌 기능 저하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글로벌 수면 호흡 기기 전문 기업 레스메드가 올해 3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건강과 장수를 위한 최우선 요소'로 수면을 꼽았다. 반면 수면 문제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23%에 그쳤다. 수면 무호흡증 등 만성 수면 장애를 앓고도 진단 없이 수년간 방치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의미다.
건강한 수면을 위한 스마트 기기 사용률도 늘었다. 미국수면의학회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8%가 수면 추적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3년 35% 대비 크게 증가한 수치다. 샬리니 파루티 미국수면의학회 대변인은 미국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스마트 기기는 수면의 질이 영양이나 운동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데이터에 대한 높은 관심이 실제 치료로 직결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대 수면 연구진은 연구 논문을 통해 "현대인들은 깨어 있는 시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휴식을 일종의 사치로 여긴다"고 분석했다. 야근이나 가족 모임 등 일정을 핑계로 수면 부족을 합리화하며 치료 시기를 놓친다는 것이다.
17시간 깨어있으면 만취 상태···경제 손실 연 1150조원
수면 장애의 방치는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진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17시간 연속으로 깨어 있을 경우 인지 기능이 혈중알코올농도 0.05% 상태와 맞먹는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경고했다. 집중력과 반응 속도가 눈에 띄게 저하된다는 것이다.
안드레아 골드스타인피에카르스키 스탠퍼드 의대 박사는 수면 연구 논문을 통해 "수면과 기분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면서 "만성적인 수면 장애는 불안 및 우울증과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수면의학회 역시 수면 부족이 고혈압 심장 질환은 물론, 장기적으로 뇌 기능의 영구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국가적 경제 손실로도 이어진다. 글로벌 헬스케어 매체 월드헬스넷은 수면 부족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미국 경제가 매년 4280억~8670억 달러(한화 약 570조~1150조원)의 손실을 입는다고 추산했다.
진단 접근성 한계와 의료 기술 발전
2025년 미국수면의학회 조사 결과 성인의 45%는 의료진과 수면 문제에 대해 상담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짧은 1차 진료 시간 △높은 수면 검사 비용 △전문의 부족 등이 주된 장벽이다. 데이나 존슨 수면 역학자는 현지 언론에 "일부 지역에서는 수면 전문의 진료를 받기 위해 수개월을 대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압기 치료에 대해 '시끄럽고 불편하다'는 과거의 잘못된 인식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최근 의료계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단 및 치료 기술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수면의학회는 특정 증상을 보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가정용 수면 무호흡증 검사를 표준 진단 선택지로 인정했다. 일렌 로젠 미국수면의학회 회장은 "가정용 수면 검사는 진단 과정의 핵심"이라며 "다만 검사 결과는 반드시 수면 전문의가 환자의 전반적 건강 상태를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신 양압기 기기들의 소형화 및 무소음화 그리고 원격 진료 보편화도 치료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정기 건강 검진에 수면 평가를 포함시켜 선제적으로 문제를 진단해야 한다"며 "명확한 이유 없는 주간 졸림증이나 코골이가 지속된다면 즉시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타나다 데쓰지 일본수면종합검진협회 이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수면 문제의 피해는 환자 본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면서 "수면 부족과 수면장애는 고혈압과 당뇨병, 심장질환과 연관되고 주간 졸림과 집중력 저하는 교통사고와 작업 오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잘 잤는가라는 주관적인 판단만으로 질환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와 지속 관리로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양압기: 수면 중 기도를 열어두기 위해 일정한 압력의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의료 기기를 뜻한다. 주로 수면 무호흡증 치료에 사용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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