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친일 부자 3대, 항일 가난 5대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2026. 8. 1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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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해마다 8월 광복절이나 3월 1일 등 뜻깊은 기념일이 찾아오면 전국 지자체와 유관 기관에서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찾아 위문품을 전달하고 경의를 표하는 행사가 연례행사처럼 펼쳐진다. 정성 어린 위문품과 사진 속 화려함은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행사장의 조명이 꺼지고 난 뒤 마주하는 현실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흠뻑 누린다"는 비통한 자조가 여전히 생생한 현실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연예인 하영의 친일 논란 증조부의 행적과 그 집안의 부의 축적 과정이 밝혀지며 온 국민의 비난을 산 사실만 봐도 자명하다. '친일   부자 3대, 항일 가난 5대'라는 말은 단순한 자조가 아니다. 항일운동에 나선 선조들이 만주 벌판을 누비고 옥고를 치르며 전 재산을 바치는 동안 남겨진 후손들은 제대로 된 교육과 직업훈련 기회를 박탈당했다. 반면 친일로 일제의 품에서 부와 권력을 누린 매국노의 후손들은 의사, 법조인, 자산가, 고위 공직자 등 사회 상류층의 신분을 대대로 이어왔다.

이처럼 세대를 이어 고착화된 빈곤은 오늘날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심각한 생계 불안과 주거 빈곤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유족 및 후손의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머물러 있으며, 전체 유족의 60% 이상이 70대 이상 고령자로 소득 감소와 의료비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당장 주거 안정이 시급한 취약 가구만도 전국적으로 1만 5000여 가구를 넘어서는 실정이다.

정부도 보상금과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하고, 법 개정을 통해 손자녀 및 자녀대까지 보상 대상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넓혀왔다.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 의료비 감면, 장학금 지원 및 채용 가산점 제도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보상금이 대표 1인에게만 집중 지급되어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형제간 갈등을 야기하며, 복지 제도는 홍보 부족으로 수혜율이 5%에 미치지 못한다. 공적을 인정받고도 후손을 찾지 못한 훈장이 7600여 개에 달하는 것도 보훈 행정의 그늘이다.

따라서 일회성 행사를 넘어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체감형 주거·복지 지원의 현실화다. 주거실태 전수조사를 정례화하고, '찾아가는 신청 서비스'로 임대주택 보증금 지원 및 노후 주택 개보수를 확대해야 한다.

둘째, 미서훈·미발굴 독립운동가 후손 찾기 강화다. 정부 차원의 유전자 DB 구축과 전담 인력을 확충하고, 친일재산 환수금을 전액 후손 발굴 및 생활안정기금으로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자립 기반 강화와 지자체 협력이다. 장학금 지원을 실질화하고 채용 우대 제도를 엄격히 관리하는 한편, 지자체는 주거 환경 개선과 지역 맞춤형 일자리 연계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립유공자 유족 중 대표 1인에 대한 집중 보상 구조의 제도 개편을 전향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됐다. 현행 제도는 보상금이 유족 대표자 1인에게만 집중되어 수혜를 받지 못하는 다른 후손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한계가 있다. 보상금을 분할 지급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거나, 소득이 낮은 후손 전체를 실질적으로 포괄하는 별도의 '생활안정지원금'을 확대·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단순한 복지가 아닌 국가가 역사적 책임을 다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기본 의무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들과 그 가족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국가의 정통성과 국민의 애국심도 단단해진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 잊혀 가는 후손들이 자존감을 갖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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