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딸 25년 병원 안보낸 부모,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김태언 기자 2026. 8. 10. 04:3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의대에 진학했던 총명한 누나. 하지만 1983년 어느 날, 25세였던 누나에게 병이 찾아왔다.

후지노 감독은 "아마도 부모님은 누나의 조현병이 창피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영화는 조현병의 원인이나 치료 과정 혹은 누나에게 포커싱한 작품이 아니라, 누나를 방치한 나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감독은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日 다큐 ‘어떻게 해야 했을까?’
후지노 감독 가족 이야기 담아
의학교수 부모는 자가 치료 고집
지켜보던 동생은 9년간 집 나가
“우리 가족처럼 하지는 말았으면”
“누나(왼쪽에서 두 번째)는 주변인들로 인해 어쩌면 달랐을 본인의 미래와 가능성을 잃어버렸어요. 그 시간을 덮어놓고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는 건 부모님이 누나를 숨겼던 것과 같지 않나요.” 엣나인필름 제공
의대에 진학했던 총명한 누나. 하지만 1983년 어느 날, 25세였던 누나에게 병이 찾아왔다. 조현병이었다. 부모님은 병원에 가는 대신 자가치료를 시도했다. 나아지지 않는 누나를 지켜보던 남동생은 부모와 대립하다가, 결국 1992년 집을 나왔다. 9년이 지난 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다시 20년이 흘렀다. 어느덧 머리가 희어버린 남동생은 이 기록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했다. 제목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일본의 후지노 도모아키(藤野知明·60) 감독이 가족의 지난날을 기록하며 스스로에게 던져온 물음이다. 지난달 29일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10일 만에 4만 관객을 넘어섰고, 독립예술영화 예매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해외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만큼 주목받는 건 드문 일이다.

최근 서울 동작구 엣나인필름에서 만난 후지노 감독은 “비슷한 일을 겪는 이들에게 ‘우리 가족처럼 대처하면 안 되지 않겠냐’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덤덤한 표정 뒤로 이어진 자기반성은 냉정했다.

“우리 가족의 지난 20여 년은 조현병 대응의 실패 사례입니다.”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부제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은 “공개해야만 했던 이야기”라고 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감독의 부모님은 모두 대학교수였다. 그것도 꽤 저명한 의학·약리학 전공 교수. 그러나 아버지는 누나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극구 거부했다. 그 대신 현관문에 자물쇠를 걸고 침묵을 택했다. 어머니는 고성을 지르는 누나를 보며 ‘설탕물을 마시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후지노 감독은 “아마도 부모님은 누나의 조현병이 창피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영화는 작위적인 연출이 거의 없다. 배경 음악이 없음은 물론이고, 내레이션 또한 사후 해석처럼 여겨질 수 있어 제외했다고 한다. 누나가 발작하는 순간은 아주 짧게 삽입돼 있다. 조현병 증세가 있다는 걸 관객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까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감수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조현병의 원인이나 치료 과정 혹은 누나에게 포커싱한 작품이 아니라, 누나를 방치한 나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감독은 말했다.

영화는 뭔가를 강하게 주장하거나 가족의 비극을 전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딸을 지극히 돌보는 부모가 서글플 뿐이다. “‘넌 9년간 도망친 것 아니냐. 부모님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스스로 털어놓는 감독의 모습 또한 그렇다.

실은 후지노 감독은 처음 녹화할 당시엔 영화화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영상의 공개를 고려한 건 2008년. 발병 25년 만에 누나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걸 지켜본 뒤였다. 단 3개월의 입원으로 누나는 눈에 띄게 호전됐다. 그리고 2021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암이었다.

20년간 기록된 80시간의 영상을 편집하며 후지노 감독은 이 영화의 끝을 계속 고민했다고 한다. 누나가 호전된 다음, 가족들이 함께 불꽃놀이를 보았던 장면으로 마무리 짓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였다. 그러나 누나의 장례 날, 아버지가 추도사를 읊으며 누나의 삶을 두고 “충만한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 순간 다시 질문이 솟아올랐다.

영화의 마지막, 후지노 감독은 90세가 넘는 아버지를 찾아가 그 질문을 던졌다.

“누나의 삶은 이렇게 끝이 나버렸잖아요. 만약 다시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야 좋았을까요?”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