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되는 책 들고 물과 환상 속으로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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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시원한 물속이 간절했습니다. 권혜영 작가의 단편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 이야기 속으로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사카 주스 1등 경품인 '오션뷰 풀빌라 숙박권'과 포켓몬빵 속 희귀한 띠부씰을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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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갱년기 증상까지 겹치니, 밖에서 조금만 걸었을 뿐인데 어질어질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생전 처음 ‘더위’를 먹고 꼼짝없이 누워 지냈습니다. 일요일이 되어서야 간신히 몸을 회복했습니다.
시원한 물속이 간절했습니다. 여름에 어울리는 ‘워터프루프 책’을 들고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온탕에서 꽝꽝 뭉친 어깨를 풀고 냉탕에 몸을 담갔습니다. 냉탕이 차갑기보다 상쾌하고 시원했습니다. 몸의 열기를 식힌 뒤 책 ‘오렌지빛 해변의 소설’(민음사)을 펼쳤습니다. 권혜영 작가의 단편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 이야기 속으로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퇴사한 지 두달 된 청년 주인공 ‘나’. 그저 누워 쉬고만 싶은 그는 오후 3시만 되면 편의점에 갑니다. 사카 주스 1등 경품인 ‘오션뷰 풀빌라 숙박권’과 포켓몬빵 속 희귀한 띠부씰을 기대하면서요. 취업하기도 어렵고, 설사 취업을 하더라도 안정적인 삶을 살기 힘든 현실 속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이 ‘작은 행운’에 기대게 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야도란 띠부씰’을 팔러 집 근처 놀이터에 갔다가 신기한 미끄럼틀을 발견합니다. 띠부씰을 미끄럼틀 안으로 굴리면 다른 물건으로 바꿔주는, 신기한 미끄럼틀이죠. 25쪽 남짓한 짧은 이야기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끄럼틀을 소재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마음을 절묘하게 그려냅니다.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주 .txt에 ‘할머니의 여름휴가’ 그림책을 소개한 이진민 작가는 “몽상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재창조하는 인간의 아름답고 존엄한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잠시 상상해 봤습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주는 미끄럼틀이 있다면, 나는 어떤 물건을 넣고, 또 어떤 결과를 바랄까 하고요. 환상과 몽상 속으로 빠져보기, 무더위를 견디는 꽤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양선아 텍스트팀장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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