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바싹 마른 초목… 산업화 전보다 20배 ‘불나기 쉬운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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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현지 시간) 스페인 아빌라주 부르고온도.
스페인 아빌라주에서 난 불은 5만 ha를 태워 종전 기록(지난해 3만7765ha)을 일찌감치 넘어섰다.
프란체스카 디 주세페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산불 예측 담당자는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극단적인 습도와 건조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며 "비가 많이 내리면 산불 위험이 낮아질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라고 말했다.
시몽 바브르 바르주 지사는 이 불길을 두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보다 빨랐고, 상식을 초월한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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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한 겨울 지난 뒤 초목 왕성해져… 여름 가뭄 등 말라 불쏘시개 역할
스페인-프랑스 등에서 초대형 화재
산불 발생 쉬운 날씨 ‘화재 기상’…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강도 급증
“산불 유도 나무-낙엽 미리 태우고… 국토 계획-수종 다양화 예방책을”

같은 날 프랑스 지롱드주 보르도 서쪽. 대서양 연안에서 잡목을 제거하던 기계에서 발생한 불꽃이 해송 조림지를 타고 내륙으로 번져 열흘간 4만2000ha를 태웠다. 1949년 이후 프랑스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 화재다. 주민 25만 명이 대피했고, 프랑스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불길이 만든 상승 기류가 스스로 낙뢰와 돌풍을 일으키는 ‘화재 적란운’으로 발달했다.
유럽에서 올여름 ‘메가파이어’(피해 면적 4만 ha 이상의 초대형 산불)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유럽산불정보시스템(EFFIS)이 집계한 올해 누적 피해 면적은 지난달 29일 기준 45만7459ha로 지난해보다 31.8%나 넓다. 같은 기간 20년 평균치(17만2186ha)와 비교하면 약 2.7배에 달한다.
프랑스는 올 들어서만 1만3500건이 넘는 화재가 발생했고 11만6000ha의 면적을 태웠다. 스페인 아빌라주에서 난 불은 5만 ha를 태워 종전 기록(지난해 3만7765ha)을 일찌감치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유럽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위기가 촉발한 화재라고 입을 모은다. 가뭄, 폭우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이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이른바 ‘기후 위플래시’(hydroclimate whiplash)가 발생하면서 산불, 홍수, 산사태 등 각종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습한 겨울 뒤 여름 가뭄… 대형 화재로 이어져
올여름 유럽 산불의 직접적인 발화 원인은 대부분 실화(失火)이지만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아니었다면 산불이 이토록 빠르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기후 위플래시 현상이 여름에 발현될 때는 대개 습한 겨울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습한 겨울이 지나면 봄철 땅의 수분을 흡수한 풀과 관목이 왕성하게 자란다. 이후 여름철 기록적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 이 초목들이 타기 좋게 바싹 마른다.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기계에서 튄 아주 작은 불씨가 삽시간에 초대형 화재로 번졌던 이유다.
스페인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월은 최근 25년 동안 1월 기준으로 스페인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전역에서 월평균 강수량의 2배 가까운 119.3mm가 내렸다. 그렇게 자란 나무와 풀 위로 5월부터 이른 폭염이 찾아왔다. 기상청은 올여름이 관측 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유럽의 월평균 기온은 20.7도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6월이었다. 평년(1991∼2020년)보다 3.05도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와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평년에 비해 무려 9도를 웃돌았다. 프란체스카 디 주세페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산불 예측 담당자는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극단적인 습도와 건조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며 “비가 많이 내리면 산불 위험이 낮아질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라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기후 위플래시를 일으키는 이유는 팽창하는 ‘대기 스펀지’ 때문이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대기가 물을 머금을 수 있는 능력이 약 7%씩 높아진다. 지구 온도가 오르면서 대기 스펀지가 커지면 한 번 비가 올 때 더 많이 오고, 마를 때는 더 빨리 마르게 된다.
최근 국제 기후변화 연구단체인 세계기상특성(WWA)은 기후변화가 올여름 유럽의 메가파이어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산불이 일어나기 쉬운 날씨를 뜻하는 ‘화재 기상(fire weather)’이 산업화 이전 기후와 비교해 스페인 중부에서 최소 20배, 프랑스 남서부에서 최소 2배 높아졌다. 화재 기상의 강도 역시 각각 41.8%, 45.8% 강해졌다. 보고서는 “오늘날 기후 환경에서 화재 기상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8월 들어서는 그리스가 유럽 산불의 최전선이 됐다. 지난달 31일 그리스 아티카주 포르토게르메노. 민간 풍력발전소 송전망에서 불꽃이 튀며 나흘 만에 아티카와 보이오티아 일대 1만3290ha를 태웠다. 주택 100채 이상이 무너졌고 1000명이 넘는 주민이 대피했다. 아테네 서쪽에서 시작된 불은 이달 3일 인구 3만 명의 도시 메가라까지 남하했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대응은 훨씬 어려워진다. EU는 회원국에서 국가 역량을 넘어선 재난이 발생하면 다른 나라에 항공기와 인력을 요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올해는 소방항공기 22대와 헬기 5대, 14개국 소방관 777명을 12개국에 미리 배치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스페인이 같은 시기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역량이 분산됐다. 프랑스에 소방항공기 7대와 헬기 4대, 스페인에 소방항공기 6대와 진화 인력 3개 팀이 투입됐다. 그리스에서는 순간 최대풍속이 시속 130km까지 치솟아 항공기가 아예 뜨지 못했다. 알렉산더 헬트 유럽산림연구소 연구원은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화재의 지리적 특성이 변화하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튀르키예에서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까지 동시에 화재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 연구진이 202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콜로지 앤드 에볼루션(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03∼2023년 위성으로 관측한 화재 3100만 건 가운데 에너지 기준 상위 0.01%에 해당하는 극단적 화재의 발생 빈도가 20년 동안 2.2배로 늘었다. 연중 가장 강한 화재 20건의 평균 강도도 같은 기간 2.3배가 됐다. 또 역대 가장 극단적인 화재 6건이 최근 7년에 몰렸다. 캘럼 커닝햄 태즈메이니아대 연구원은 “기후변화가 극단적 화재에 필요한 조건을 더 흔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 “화석연료 감축, 계획 소각 등 산불 대비를”
EU는 3월 산불의 예방·대비·대응·복구를 하나로 관리하는 산불 위험 관리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 EU에서 관측 이래 최대 면적인 103만 ha가 화재로 사라진 게 계기가 됐다. EU는 각국의 국토 이용 정책에 연료 축적과 농지 방치를 통해 산불 위험이 축적된다고 명시하고, 생태계 복원과 연료 관리, 방화 예방 교육을 추가하라고 권고했다. 산불 대비 단계에서는 조기경보와 화재 확산 예측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대응 단계에서는 공동 소방대를 확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비가 무색하게 올여름에도 유럽에서는 사람의 힘으로 잡기 어려운 산불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WWA는 보고서에서 “효과적인 진화와 국경을 넘는 협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위험을 반영한 국토 계획과 수종 다양화 같은 경관 관리 등의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기후 적응에도 한계가 있으며, 화재 위험이 더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화석연료 사용부터 신속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불이 대형 화재로 이어지지 않도록 일부 관목과 낙엽을 태우는 ‘계획 소각’도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접경 지역의 생물권보전지역을 대상으로 한 2023년 모의실험에서 계획 소각은 향후 산불을 최대 36%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축 방목으로 풀을 관리하고, 농지와 숲을 모자이크처럼 섞어 연료가 이어지는 구간을 잘라내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안나카이사 이트코넨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기후변화가 여름을 더 덥고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목표는 더 많은 불을 끄는 게 아니라 좋은 예방 정책과 조율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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