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추진 중인 11조원 규모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의 명칭을 무단 사용한 혐의로 MBK파트너스·영풍 측을 경찰에 고발했다.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내며 사업 추진을 막으려 했던 당사자들이 미국 현지에서는 사업 주체로 비칠 수 있는 활동을 했다는 것이 고려아연 측 주장이다.
고려아연은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 윤종하 MBK 부회장, 장세환 영풍문고홀딩스 대표이사 등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발했다고 5일 밝혔다.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이며, 장 대표는 장형진 영풍 고문의 차남이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MBK·영풍 측은 올해 6월 27일 프로젝트 명칭과 사업 예정지인 미국 테네시주를 결합한 도메인 'crucibleTN.com'을 등록자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방식으로 등록했다. 7월 초에는 테네시 주정부 관계자와 지역 인사, 언론인 등에게 프로젝트 크루서블 명칭을 주최 측 이름보다 크게 적은 리셉션 초대장을 돌렸다. 회신 연락처 역시 해당 도메인의 이메일 주소였다.
이후 지난달 9일 테네시주 내슈빌 허미티지 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에는 윤 부회장과 장 대표가 참석했다. 윤 부회장은 MBK 홍보 영상과 함께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소개했고, 장 대표는 영풍 석포제련소 기술이 프로젝트 크루서블에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은 이런 행위가 리셉션과 도메인 운영 주체를 고려아연으로 오인하게 만들어 현지 인허가와 투자 유치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고 있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고려아연이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 전략적 투자자들과 함께 74억 달러(약 11조원)를 투자해 테네시주에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한 비철금속 12종과 반도체황산 등을 생산하는 통합제련소를 짓는 사업이다. 고려아연은 온산제련소와 호주 썬메탈제련소에서 50여 년간 축적한 제련 기술을 집약해 2030년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미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의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MBK·영풍 측은 프로젝트 발표 다음 날 투자 유치를 위한 신주 발행을 막아 달라며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지난해 12월 24일 이를 기각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이 사업을 "미국의 핵심광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한미 협력 강화, 고려아연의 안정적인 글로벌 수요처 확보를 목적으로 추진된 거래"라고 평가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프로젝트 추진을 원천적으로 막으려 했고 그 가치를 평가절하해 온 MBK·영풍이 이제 와서 사업 주체인 양 홍보하는 것은 양국 정부와 투자자, 주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풍·MBK 측도 즉각 입장문을 내어 "최대주주로서 미국 정부,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정당한 주주 활동"이라며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고려아연이 독점적 권리를 보유한 등록 상표가 아니며, 행사 주최자를 명확히 밝힌 만큼 사칭 주장은 사실과 법리를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영풍·MBK 측은 지난해 1월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결의 취소를 구하며 낸 소송을 약 1년 6개월 만에 취하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당초 액면분할 등 다수 안건을 문제 삼았다가 소송 중 청구를 축소했고, 정작 반대했던 액면분할 안건은 올해 정기주총에 주주제안으로 다시 상정하는 등 일관성 없는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되면 임시주총 결의의 법적 효력을 둘러싼 분쟁은 모두 해소된다. 앞서 대법원이 지난해 정기주총 결의에 문제가 없다고 최종 판단하면서 고려아연의 현 이사회 구조와 경영 체제는 적법성을 인정받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