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당뇨 관리 넓힌다면서 진료비는 중단…“등록체계 흔든다”
기명 교수 “1500원은 등록·데이터·맞춤관리 잇는 핵심 기전…만관제와 달라”

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기명 교수(남양주시 고혈압·당뇨병등록교육센터장)는 지난 3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소액의 진료비·약제비 지원은 환자 등록과 지속적인 의료기관 방문, 의료이용 정보 축적, 맞춤형 교육·상담을 연결하는 핵심 기전"이라며 "환자 지원금은 등록관리사업의 순환을 움직이는 중심축"이라고 밝혔다.
앞서 전국 고혈압·당뇨병 등록교육센터도 공동성명을 내고 질병관리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2027년부터 진료비와 약제비 지원을 중단하고 교육·상담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하려 한다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센터들은 약 75만명의 노인환자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기존 등록교육센터를 '만성질환통합관리센터(가칭)'로 개편해 관리 대상을 전 연령으로 넓히고 센터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사업의 외형을 확대하면서 환자의 참여를 끌어내는 지원을 없애면 기존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주장이다.
실제 효과평가에서 등록관리사업의 치료 지속성과 합병증 예방 효과가 확인됐다. 2020년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 'JKMS'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전국 65세 이상 등록환자 12만6450명과 동일한 규모의 대조군을 5년간 추적했다.
그 결과 등록환자의 뇌졸중 입원율은 5.7%로 대조군의 6.1%보다 낮았으며 허혈성심질환은 3.8% 대 4.1%, 신부전은 1.7% 대 1.9%로 나타났다. 사망률도 등록환자군에서 1.9% 낮았다.
또 국제 오픈액세스 학술지 'PLOS ONE' 2024년에 실린 관련 연구에 따르면 경기 광명·하남·안산·남양주 등록환자 4만6865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환자 1인당 연평균 내원일수는 등록 전 9.26일에서 등록 1년 후 10.04일, 5년 후에도 9.92일을 유지했다. 반면 비등록 대조군은 같은 기간 10.32일에서 9.26일로 줄었다.
이는 진료비 지원과 등록, 교육·상담, 리콜·리마인더가 결합된 통합관리체계가 지속적인 치료 참여와 합병증 예방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게 기 교수의 설명.
월 1500원은 '할인' 아닌 환자 등록의 출발점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은 지난 2009년부터 전국 19개 시·군·구에서 시행됐다. 환자가 주소지 관할 보건소나 지정 동네의원에서 등록하면 의료기관과 약국, 등록교육센터가 치료 이력과 의료이용 정보를 바탕으로 교육·상담과 리콜·리마인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부터는 기존 만 65세 이상으로 고정됐던 진료비·약제비 지원 연령을 지자체가 60~80세 사이에서 정할 수 있도록 했으며 관리 질환에는 이상지질혈증이 추가됐다.
진료비는 전국 공통으로 월 1회 1500원, 약제비는 지자체에 따라 질병당 월 1000~2000원을 지원한다. 30~80세 등록환자에게는 지역 결정에 따라 5000~1만원의 검사비도 지원할 수 있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만성질환을 여러 개 앓거나 소득이 낮은 고령층에게는 의료기관을 꾸준히 방문하게 하는 실질적인 동기가 된다. 환자의 등록과 방문이 이어져야 의료이용 정보가 축적되고 개인별 상담과 치료 중단 예방도 가능해진다.
기 교수는 "본인부담금 몇 천원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취약노인을 서비스에서 배제할 수도 있는 큰돈"이라며 "지원금을 폐지해 등록 동기가 사라지면 데이터도 만들어지지 않고, 의료이용 정보와 연결되지 않은 교육·상담은 획일적인 접근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복사업 아니다"…고당사업은 지역, 만관제는 의료기관 중심
질병관리청이 지원 중단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등록관리사업과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의 기능이 중복된다는 판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은 동네의원이 환자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교육·상담을 제공하면 수가를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기명 교수에 따르면 등록관리사업이 환자 지원을 토대로 지역의 의료기관과 약국, 센터를 연결한다면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은 개별 의료기관과 의사가 세운 관리계획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차이가 있다.
환자 정보의 활용 범위도 다르다. 개별 의료기관 중심 사업에서는 의료정보가 해당 기관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지역센터가 관리 주체가 되면 다른 의료기관이나 운동·영양·복지 등 지역사회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다.
기 교수는 "고당사업이 환자와 지역을 통해 움직인다면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은 의사와 의료기관을 통한 질환 관리"라며 "보편적인 지역사회 서비스를 없애면서까지 이용자가 제한된 서비스를 중심으로 재편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지원 확대 뒤 중단 추진…취약노인 건강불평등 우려
올해 지원 연령과 질환 범위를 확대하고 불과 1년 만에 진료비와 약제비를 중단하려는 정책 방향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본인부담이 발생하는 서비스만 남으면 저소득층과 고령층이 관리체계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무학 노인의 만성질환은 평균 2.9개로 전문대학 이상 졸업자의 1.6개보다 많았다. 취약한 노인일수록 관리할 질환은 많지만,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기는 더 어려운 셈이다.
지원 중단에 따른 단기적인 예산 절감이 장기적으로 치료 중단과 심근경색·뇌졸중·만성콩팥병 등 합병증,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기명 교수는 지원 중단 계획을 철회하고 등록·교육·상담·리콜·리마인더가 결합된 통합관리체계를 유지해야 하며 객관적인 효과평가와 근거자료를 공개하고 등록교육센터와 의료계, 지방자치단체, 학계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기 교수는 "비용 장벽을 가진 선택적 서비스만으로는 보편적인 만성질환 관리체계를 만들 수 없고 건강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지역이 잘할 수 있고 지역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능은 하나라도 더 지역에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