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㊺ 관계의 가능성이 확장한 가족 서사 ‘가족의 탄생’

KBS 2026. 8. 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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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2006)은 관계와 유대가 어떻게 가족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IMF 이후의 가족 해체, 고개 숙인 아버지,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가족 담론 속에서 대안 가족을 그려낸 작품으로 호평받았고, 여성의 정체성과 돌봄에 대한 해석들 속에서 풍성하게 읽혀 왔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새 가족의 형식이 아니라, 만나고 돌보고 알아보며 이어지는 관계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게 하는 시선이다. 영화는 영제 처럼 관계와 유대를 통해 맺어진 이들을 유쾌하게 가족이라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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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의 가능성

<가족의 탄생>(2006)은 관계와 유대가 어떻게 가족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IMF 이후의 가족 해체, 고개 숙인 아버지,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가족 담론 속에서 대안 가족을 그려낸 작품으로 호평받았고, 여성의 정체성과 돌봄에 대한 해석들 속에서 풍성하게 읽혀 왔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새 가족의 형식이 아니라, 만나고 돌보고 알아보며 이어지는 관계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게 하는 시선이다.

김태용 감독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서로가 겪어온 양육의 방식과 사랑의 시간까지 함께 만나게 된다는 것을 포착하며, 전통적 가족 개념이 포괄하지 못한 바깥의 관계들이 가족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연출했다.

영화 <가족의 탄생>. 채현(정유미 분)과 경석(봉태규 분)의 만남으로부터 거슬러 오르는 비선형 구성을 보여준다.


■ 돌봄의 역사

영화는 채현(정유미 분)과 경석(봉태규 분)의 만남을 먼저 보여준 뒤 미라(문소리 분)와 선경(공효진 분)의 과거로 돌아가는 비선형 구성으로 전개된다.

이 구성은 두 사람의 사랑이 두 가족의 역사가 만나는 일임을 보여준다.

미라와 무신의 이야기가 채현의 역사라면 선경과 매자의 이야기는 경석의 역사다.

그 역사는 남성들의 어긋난 약속으로 시작된다. 형철(엄태웅 분)은 채현을 책임지겠다고 했으나 떠나버리고, 운식(주진모 분)은 매자(김혜옥 분)를 사랑한다고 했으나 법적 가족 안에 머무른다.

미라와 무신이 채현을 돌보고, 선경이 아버지가 다른 동생인 경석을 돌보는 일은 전통적 관계망 바깥에서 이루어진 유대다.

채현은 그 돌봄을 닮아 딱한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고, 경석은 채현의 친절에 끌렸으나, 매자와 선경의 상처를 보고 자란 탓에 그 친절을 헤픔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경석은 형철이나 운식과 달리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 채현에게서 물러섰던 그는 돌아와 채현을 길러낸 엄마들을 마주하고, 채현의 헤픔이 가벼움이 아니라 돌봄의 방식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배우들의 섬세한 호연은 이 과정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영화 <가족의 탄생>. 선경(공효진 분)은 엄마 뒤치다꺼리에 지쳐 한국을 뜨고 싶지만, 엄마의 시한부 소식을 듣게 된다.


■ 가족사진, 시간의 은유

영화는 노래와 스웨터 등 반복되고 변주되는 소재들로 인물의 감정을 은유한다. 사진은 그중에서도 유독 시간을 붙잡아 둔다.

미라의 집 거실에서 카메라는 미닫이문 너머 마당을 비추며, 통화 중인 미라를 액자처럼 프레임 속 프레임에 담는다.

안방으로 들어간 미라가 군복 입은 형철과 찍은 사진을 꺼내 남매의 어린 시절 사진 옆에 둔다.

그리고 형철이 떠난 뒤, 미라와 무신이 마루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가운데 마당에서 아스라한 웃음소리를 내며 뛰어노는 채현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순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액자가 펼쳐진다.

미라와 무신의 시간은 밥 한 끼의 속도로 흐르고, 채현의 시간은 낮과 밤을 반복한다.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이 한 프레임에 공존하는 이 장면은 미라의 새 가족사진이다.

영화 <가족의 탄생>


선경에게도 사진은 시간을 붙잡고 관계를 연결한다. 관광 가이드로 여행객들 사진을 찍어주던 선경은 뷰파인더로 매자의 죽음을 느낀다.

그리고 매자의 가방을 열었을 때 먼저 보이는 것도 매자의 품에 안긴 어린 선경의 사진이다. 선경이 매자의 사랑을 그제야 깨달을 때, 낡은 액자는 마법처럼 허공에 떠오른다.

사진은 과거의 기록이고, 과거가 쌓여 현재를 만든다. 그렇게 보면 미라의 사진은 채현의 가족사진이며, 선경의 사진은 경석의 가족사진이다.

TV 속 선경과 그 화면을 바라보는 미라, 무신, 채현, 경석의 뒷모습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장면은 두 가족사가 겹쳐진 대가족 사진처럼 보인다.

경석이 채현의 헤픔을 돌봄으로 이해하고, 그 시선이 선경의 삶에까지 닿는 순간, TV 속 선경은 반짝이며 날아오른다.

영화 <가족의 탄생>. 선경은 터울이 많이 지는 경석과 함께 남겨진다.


■ 영어 제목 'Family Ties'

영화가 보여주듯, 혈연과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라고 해서 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공백을 채워 온 제도 밖의 관계들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가족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는 영제 <Family Ties>처럼 관계와 유대를 통해 맺어진 이들을 유쾌하게 가족이라 호명한다.

그래서 <가족의 탄생>은 우리에게 미라의 집으로 가는 길을 상상하게 하고, 스쳐 지나간 관계들까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영화 '가족의 탄생' 이야기

1. 김태용 감독은 민규동 감독과 공동 연출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로 장편 극영화에 데뷔했으며, <가족의 탄생>은 그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이자 첫 단독 장편 극영화이다.
2. <가족의 탄생>은 김태용 감독이 들은 라디오 사연에서 영감받아 출발했고, 이후 제도 밖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3. 영화 에필로그의 기차역 플랫폼 장면은 원래 배우들의 이름이 뜨는 타이틀 장면으로 구상되었으나, 촬영 과정에서 에필로그에 가깝다고 판단되었다.
4. 영화는 16mm 카메라로 대부분 실제 공간에서 로케이션 촬영되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미라의 집은 춘천의 한 주택이며, 선경과 매자의 이야기인 두 번째 에피소드는 오산 미군기지 부근에서 촬영되었다.
5. <가족의 탄생>2006년 제47회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골든 알렉산더상을 수상했다. 김태용 감독은 각본상도 받았으며, 여우주연상은 이례적으로 문소리, 고두심, 공효진, 정유미 네 배우 전원에게 수여됐다. 관객상까지 받아 모두 4개 부문을 석권했다.

글 : 영화평론가 송연주,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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