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영화 《호프》, 왜 관객들은 그토록 분노했나
호평 관객 향한 맹비난 폭주…다양한 감상 존중해야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현재 상영 중인 영화 《호프》와 관련해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개봉 12일 만에 34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작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이긴 하지만, 기대치를 충족할 만한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다. 이 작품은 제작비 500억원을 초과한 역사적인 대작으로 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흥행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는 개봉 직후 불거진 논란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왕과 사는 남자》가 관람객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탄력을 받은 것과 달리, 《호프》는 많은 관람객이 매우 적대적인 관람평을 쏟아냈다.
호평도 공존한다.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만큼 흥행 흐름 역시 아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마치 양측이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이 작품과 관련해 화를 내는 관객이 많다는 게 특기할 만한 지점이다. 단순히 '나는 재미없었다'는 개인적인 감상을 밝히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격앙된 어조로 작품을 비난하며 심지어 '재밌게 봤다'는 사람까지 공격하고 있다.

"돈 받고 호평?"…평론가 집단 향한 공격도
이러한 공격이 얼마나 거셌는지,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해명 글까지 올려야 했다. 그가 이 영화에 별점 5점 만점에 4점을 주며 호평하자 집단 공격이 쏟아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평론가가 《호프》 나홍진 감독과의 인맥이나 금전적 대가 때문에 호평을 남겼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이에 이 평론가는 "나 감독과 친분이 없다. 커피 한 잔 마신 적도, 전화번호를 아는 사이도 아니다"며 연줄설을 적극 해명했다. 최근 몇 년간 건강 문제로 영화계 인사들과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았다는 개인적인 상황까지 밝혔고, 제작사로부터 받을 이권을 노린 것도 아니라고 했다.
평론가의 평가는 그 자체로 끝날 일이다. 사적인 친분, 건강 문제, 이권 유무 등에 대해 구구절절 해명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이례적인 해명이 나온 것은 그만큼 대중의 분노가 거세게 일어났다는 뜻이다. 《호프》에 대해 좋게 말하면 바로 '돈 받고 호평하는 사람'이란 딱지가 붙으며 비난당하는 분위기다. 비난 여론이 얼마나 거셌는지 TV 뉴스에서까지 다룰 정도다.
보통 대중의 공분이 터지는 작품들은 역사 왜곡이나 정치적 논란에 연루된 경우가 많다. 반면 《호프》는 그저 '괴물 액션 오락영화'일 뿐인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괴물 액션물로 흘러가던 영화는 막판에 장르가 SF로 바뀌더니 갑작스럽게 끝난다. 단순한 '열린 결말' 정도에도 관객들이 화를 낼 때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아예 영화의 기본 틀을 뒤집고 바로 막을 내려버렸다. 주인공이 결말부에 '그냥 마음이 좀 이상해'라고 혼란스러워하면서 끝나는데, 관객도 혼란에 빠졌다. 이러자 '영화는 한 작품 내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또 영화 내내 괴물 같았던 존재가 막판에 괴물이 아닌 존재로 바뀐다. 감정이입의 포인트도 뒤집힌다. 괴물에 대한 동정심 없이 인간을 응원했던 관객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이 정도로 혼란을 안겼으면 추가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그냥 끝내버리니 황당하기만 하다. 상업영화에서 감정이입의 포인트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관객이 확실하게 몰입할 대상을 만들어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한다. 반면에 《호프》는 주요 인물들이 확실하게 몰입할 만한 캐릭터도 아니었는데 괴물에 대항하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약하게나마 몰입했지만, 막판에 괴물이 괴물 아닌 존재로 승화하면서 그조차 혼란스러워지자 '어이없음'만 남았다.
'정답 교육'에 길들여진 관객들
아울러 2시간30분이 넘는 대작인데 별다른 이야기(서사)도 없다. 그저 추격 액션만 이어지는데, 요즘 영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관객들은 이야기를 매우 중시한다. 유튜브 영화 비평은 거의 문학 평론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영화를 이야기 중심으로만 본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약한 《호프》에 더 적대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할리우드 대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시각효과(CG)의 품질, 괴물의 속도나 주인공의 내구도 등 개연성이 떨어지는 몇몇 옥에 티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한국 특유의 '입시 교육'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입시는 대학 서열 체제 아래 학생들의 서열을 정확히 구분하기 위한 장치다. 이 구분에 모호함이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 그래서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 변별력이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으로 서열을 정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정답이 명확한 문제로만 교육을 받는다. 맞음과 틀림이 있을 뿐 중간이 없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과 느낌의 공존이 어렵다.
감상과 평가는 본질적으로 주관적 영역이다. 하지만 '정답 교육'에 길들여진 이들은 타인의 주장을 '답안 제시'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왜 틀린 답을 제시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한다. '저런 관점도 있구나' 하고 가볍게 넘기지 못한다. 영화 평가는 국어 시간에 하듯 이야기 분석으로 재단하는 것이 정·오답을 가리는 간편한 방법이다. 시청각적 느낌은 객관적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이야기가 절대적 기준이 됐다.
《호프》는 이야기를 차치하고 액션 그 자체에 온전히 몰입한다면 충분히 시청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나 감독도 "와이드 화면과 사운드, 비주얼로 극을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경험을 통해 관객들이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이런 목표는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다. 다만 이런 영화를 즐기는 관객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수 있다.
작품의 이야기가 부실하고, 막판에 뒤집히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을 중요하게 여긴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오답'으로 인식됐다. 이들에게 이 작품이 재밌다고 하는 건 오답을 정답이라고 호도하는 불공정한 행위다. 결국 타인에 대한 공격적인 대응과 연줄 의혹 제기 등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일각에선 '나홍진'이라는 이름값 덕에 후한 평가를 받는다고 지적하지만, 무명 신인 감독 작품이었으면 훨씬 뜨거운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나 감독 특유의 묵직한 서사에 대한 기대치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셈이다. 영화가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 없이 건조하게 추격만 한다는 점도 흥행에 불리했고, 나 감독의 유머가 들어간 장면들에도 반응이 엇갈렸다. 이런 것들이 모두 '오답'이라고 규정한 이유가 됐다.
하지만 영화 감상에 정답은 없는 법이다. 영화를 어떻게 느끼건 각자의 자유이고 그걸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평론가가 해명까지 하게 만든 일부 관객의 공격적인 태도가 아쉬운 이유다. 《호프》는 특색이 분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럴 때 어느 쪽이건 자신의 감상과 다른 상대의 감상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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