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잡기 전, 먼저 과로사할 듯… 사기꾼 천국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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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서울의 한 경찰서 3층에 위치한 경제범죄수사팀(경제팀). 여느 직장인들은 벌써 귀가했을 야심한 시각, 10년 차 수사관 A씨는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다른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제팀 수사관 B씨도 "몇 년 새 업무 부담이 한계상황에 다다랐다"고 현장의 고충을 전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는 "수사관이 담당하는 업무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수사 부서를 다들 기피하는 분위기"라며 "수사 전문 자격인 '수사 경과'를 지진 반납하거나 해제한 인원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검사의 수사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경찰이 수사권 조정 이후 사실상 대부분 형사사건의 1차 수사권을 온전히 통제하게 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대폭 축소되면서, 거의 모든 고소·고발 사건이 경찰서 문턱을 넘는다. 여기에 증거 수집, 압수수색, 피의자 조사 등 전 과정을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가장 결정적인 건 '수사종결권'과 '피해자·고소인에 대한 통지 및 절차적 권리 보장 업무'까지 경찰이 전담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인권 보호 기조 아래 고지 의무, 절차 참여권 보장 등 수사관이 일일이 서류로 남기고 확인해야 할 행정 절차가 대폭 늘어났다. 이렇게 많은 권한이 생기면서 경찰관이 감당해야 할 절대적인 업무량 자체가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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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새 담당 사건 23% 증가, 업무 부담 한계…사직서 써놔”
● 한 달 50건, 수사 업무 과중에 피해자 원성까지 이중고
● 대형 로펌, 월급 3~4배 제시…엘리트 경찰 영입에 박차
● 경찰 불송치 약 60만 건, 보완수사권 필요성 ↑
● 경찰 내부 인력, 수사 현장 중심으로 재배치해야
● 국민 피해 최소화할 대안 마련 급선무

"하루에 새로 배당받는 사건만 평균 2~3건이다. 한 달이면 50건이 넘는다. 법률 검토를 하고, 계좌 추적 영장을 신청하고, 피의자를 불러 조사하려면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밥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서류를 작성해도 일이 줄어드는 것 같지 않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책상 속에 '사직서'를 감춰뒀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제든 제출할 수 있도록 미리 서명까지 해뒀다고. "이대로 일하다가는 피의자보다 내가 먼저 쓰러지거나, 과로사할 것 같다는 공포가 매일 아침 밀려온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른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제팀 수사관 B씨도 "몇 년 새 업무 부담이 한계상황에 다다랐다"고 현장의 고충을 전했다. 이어진 그의 하소연이다.
"최근 주식 리딩방, 로맨스 스캠, 팀미션 같은 신종 사기가 끊이지 않아 골치가 아프다. 신종 피싱 사기의 경우 고도로 지능화된 범죄여서 피의자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유의 사건은 제대로 수사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사건 하나 파헤치는 데만 1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 때문에 수사관들이 사기 피해자들로부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원성을 듣기 일쑤다."
경찰 독자 권한 '수사종결권'이 부여한 '업무 폭탄'
업무 과중에 부담을 느끼는 수사관은 이들만이 아니다. 경찰청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장 수사관 1인당 평균 사건 접수 건수는 2020년 108.4건에서 2025년 133.8건으로 5년 새 23%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수사 부서를 떠난 경찰은 1765명으로 집계됐으며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는 "수사관이 담당하는 업무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수사 부서를 다들 기피하는 분위기"라며 "수사 전문 자격인 '수사 경과'를 지진 반납하거나 해제한 인원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전했다. 사태의 발단은 2021년 단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은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는 '수사종결권(불송치결정권)'을 획득했다. 비대해진 권한만큼 책임감과 자부심이 따를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2022년 검사의 직접 수사 대상을 6대 중대 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축소한 이른바 '검수완박법'이 만들어지며 경찰의 사건 결정 건수는 2022년 136만8648건에서 2024년 143만1815건으로 약 4.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찰이 깐깐하게 법리를 검토해 판단해야 하는 '불송치' 결정 건수는 수사권 조정 전 연간 약 38만 건 수준에서 최근에는 연간 60만 건에 육박한다.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 불송치 결정 건수는 2021년 37만9821건에서 2023년 40만6957건, 2024년 54만5509건, 2025년 59만4060건으로 불어났다. 일반 형사사건의 전체 접수 건수 중 약 25%가 경찰 단계에서 자체적으로 종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급증하는 사기 사건의 경우 무혐의 처분율이 과거 25%에서 35%로 증가했고, 법리 검토가 고도로 복잡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한 불송치율이 무려 75%에 이른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늘어남에 따라 이에 승복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는 고소인도 해마다 늘고 있다. 고소인의 이의신청 건수는 2021년 2만5048건에서 2025년 4만7386건으로 4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피해자의 이의신청으로 검찰이 보완수사를 진행한 뒤 경찰의 결론을 뒤집고 기소(유죄 판단)한 사건은 수사권 조정 초기 대비 4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경찰에 새로 부여된 많은 권한이 수사관 발목 잡아

"과거에는 검사의 수사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경찰이 수사권 조정 이후 사실상 대부분 형사사건의 1차 수사권을 온전히 통제하게 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대폭 축소되면서, 거의 모든 고소·고발 사건이 경찰서 문턱을 넘는다. 여기에 증거 수집, 압수수색, 피의자 조사 등 전 과정을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가장 결정적인 건 '수사종결권'과 '피해자·고소인에 대한 통지 및 절차적 권리 보장 업무'까지 경찰이 전담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인권 보호 기조 아래 고지 의무, 절차 참여권 보장 등 수사관이 일일이 서류로 남기고 확인해야 할 행정 절차가 대폭 늘어났다. 이렇게 많은 권한이 생기면서 경찰관이 감당해야 할 절대적인 업무량 자체가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사기 사건을 수사한 경험이 많은 한 베테랑 경찰관 C씨는 "투자 리딩방 사기, 가짜 웹을 활용한 신종 스캠, 정교한 사이버 범죄 등 추적에 상당한 사법 공조와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업무 과중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건 기록을 종이 문서와 온라인 시스템에 이중으로 입력해야 하다 보니 정작 수사관이 '머리를 쓰고 추적하는 시간'보다 '기록을 남기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덧붙였다.
업무량은 폭증하고, 서류 부담은 가중되는데 처우는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현장 수사관들은 결국 '탈출'을 선택하고 있다. 더욱 뼈아픈 것은 단순히 버티지 못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로펌들이 엘리트 경찰관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로펌의 타깃이 된 경찰대 출신 엘리트 경찰들
수사권 조정 이후 대형 로펌의 핵심 화두는 단연 '경찰 수사 단계에서의 조기 방어'다.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기 전, 경찰 선에서 혐의를 벗고 '불송치'를 받아내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 내부의 수사 생리와 결재 시스템을 완벽히 이해하고, 현직 간부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보유한 경찰대 출신들이 로펌의 '영입 0순위' 타깃이 되고 있다."요즘 대형 로펌치고 '경찰수사대응팀'을 갖추지 않은 곳이 없다. 수십 년간 경제팀, 지능범죄수사팀에서 뼈가 굵은 경찰대 출신 간부를 모셔가기 위해 로펌에서 '전문위원' 타이틀과 함께 경찰 월급의 3~4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연봉과 성과급을 제시한다. 밤샘 근무에 악성 민원, 계급정년의 압박까지 견뎌야 하는 현직 수사관 입장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
정부당국이 2024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내는 '의원면직' 경찰공무원은 연간 2115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경찰의 허리에 해당하는 경감 계급이 1340명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수사권 조정 이후 몸값이 폭등한 시기를 틈타 대형 로펌이나 기업의 법무·감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을 가장 잘하고 사건의 맥을 능숙하게 짚어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노련한 엘리트 수사관들이, 국가의 치안 방어선 대신 대형 로펌이 보장하는 안락한 삶을 택한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40대 베테랑 수사관 D씨는 "밖에 나가면 수사 전문성을 수억 원대 가치로 인정해 주는데, 왜 여기서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박봉을 견디며 영혼을 갈아 넣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만약 내게 로펌의 러브콜이 온다면 굳이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사건 해결의 중추 역할을 하던 엘리트 '허리층'의 붕괴. 이는 곧 현장에 법리를 잘 모르는 신임 수사관들만 남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찰서 문을 두드리는 범죄 피해자들의 차지가 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기 피해자 김종배 씨는 "너무나도 억울하게 사기를 당해 경찰에 고소했는데 수사관이 쌓인 업무가 너무 많다며 수사를 질질 끌었다. 그러더니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려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법리적으로 검토할 역량이 부족한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준 것은 불송치 결정 권한을 남발하도록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러다 우리나라가 사기꾼들의 천국이 될 것 같다"고 꼬집었다.
내부 인력을 '수사 현장' 중심으로 재배치해야
형사법 전문가들은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 그리고 무엇보다 무고한 기소나 억울한 불송치로부터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해법이 필요하다"며 "모든 사건을 검찰로 보내는 전건 송치와 함께 제한적으로나마 검찰에게 보완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재웅 변호사는 "그간 검찰권이 남용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경찰의 수사 역량이 증대됐으니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전면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와 국민의 권익 보호를 고려하면 제한적으로나마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인정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경찰 내에서도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KICJ)이 지난해 9~10월 현직 경찰 1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중(35.2%)을 차지했다. 특히 경력이 10년 미만인 경찰에게서 이 같은 답이 많이 나왔다. 3년 미만은 90%에 육박했다. 경력 15년 차인 베테랑 수사관 D씨는 "경찰 수사가 완벽할 수 없다"며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수사기관의 존재 이유인 만큼 법리적으로 경찰보다 우위에 있는 검찰이 보완수사권을 유지하며 경찰과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수사 현장의 업무 과중에 검경 수사권 조정의 영향이 작용한 것은 맞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경찰 조직의 비정상적 구조와 인력 운용의 비효율성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의 부연 설명은 이렇다.
"인구 5000만 명에 경찰이 150만 명이니 경찰 1인당 국민 300여 명을 지키는 셈이다. 이는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다. 진짜 문제는 '수사 현장' 인력을 부족하게 만드는 비효율적 조직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 경찰 계급은 11단계(순경→ 경장→ 경사→ 경위→ 경감→ 경정→ 총경→ 경무관→ 치안감→ 치안정감→ 치안총감)다. 이 가운데 현장 수사는 주로 하위 3개 계급이 맡는다. 나머지는 관리자라는 이유로 내근한다. 미국처럼 계급을 5단계로 줄여야 한다. 내부 인력을 수사 현장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아무리 경찰에서 신규 채용 인원을 늘려도 조직 개혁 없이는 수사 부서의 업무 부담이 줄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검찰청 폐지나 보완수사권 존폐보다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안전한 대한민국, 정의로운 사법 체계의 성패는 이제 '경찰 개혁'에 달렸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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