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내 안에 있다”…韓 추상미술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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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가장 큰 작품 두 점을 마주하게 된다.
미술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의 RM(본명 김남준)은 자신의 소장작 '작품(Work·1968)'을 기꺼이 빌려줬고 직접 전시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인공지능(AI) 혁명 시대에, 역설적으로 인간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에 관객들이 공감하고 있다"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산과 강, 바다의 형세가 유영국만의 선, 색, 면으로 귀결된 독창적 추상성에서 사람들은 자부심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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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부조 등 178점 역대 최대
호암 이병철·RM도 작품 소장
오픈런 속 이번주 20만명 눈앞
韓작가 개인전 최다 관객 기대

전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가장 큰 작품 두 점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붉고, 하나는 푸르다. 1994년작 ‘산-Red’와 ‘산-Blue’는 화면을 뒤덮은 격자 아래로 산 닮은 삼각형이 솟아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이 남긴 최대 크기의 작업이다. 평생 산을 그린 화가가 추구한 보편적 추상풍경이다. 당시 나이 일흔여덟, 심장에는 박동기가 달려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유영국 탄생 110주년 회고전으로 기획한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가 쉼없는 인기행진 속에 이번 주 누적 관객 20만 명을 내다보고 있다. 미술관에 따르면 5월 19일 개막 후 지난 26일까지 총 61일 개관일 동안 19만 2670명이 전시를 관람했다. 일 평균 관람객은 3159명으로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에드워드 호퍼’ 전시의 일 평균 관객 3095명을 앞섰다. 이 같은 추세라면 국내 작가의 미술관 개인전 최다 관객 기록인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중섭’의 25만 명을 거뜬히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다.
이번 전시는 유화 115점에 부조, 사진, 드로잉, 아카이브까지 총 178점을 선보인 역대 최대 규모다. 바다 풍경 등 미공개 유화가 15점이나 걸렸다. 미술관이 신설한 ‘한국 근대 거장전’의 첫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는 1964년부터 시작한다. 화가 생활 30년 만인 48세에 작가는 첫 개인전을 열었다. 캔버스 구하기도 어렵던 시절에 100호 넘는 유화 15점을 걸었고, 그 중 9점이 이번에 다시 나왔다. 김환기는 뉴욕으로, 한묵과 문신은 파리로 떠난 그 시기 유영국은 “그룹 활동을 접고 전업 작가로 살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꺾지 않았던 유영국은 ‘자유’를 추구하며 1935년 일본 문화학원 유화과에 진학했다. 이중섭과 김환기가 곁에 있었다. 유럽에서 추상미술의 개념이 탄생한 게 1920년대인 것과 비교하면, 유영국은 가장 빠르게 추상 언어를 이해한 화가였다. 합판과 골판지를 잘라 붙이고, 색마저 지운 완전 추상의 부조를 만들어 1938년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상을 받았다. 대개의 한국 화가는 구상에서 반추상을 거쳐 추상에 닿았지만, 유영국은 처음부터 추상이었다. 왜 추상이냐는 물음에 화가는 “말이 없어 좋다”고 답했다.


태평양 전쟁의 기운이 드리우던 1943년 그는 귀국해 붓 대신 그물을 잡았다. 울진에서 아버지의 배를 몰았고 양조장을 열었다. 스스로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 시기는 1955년 사업을 접고 상경하면서 끝났다. 그때부터 원없이 그렸다. “내 그림은 나 살아생전 팔리지 않는다”고 한 화가의 그림을 처음 구입한 이는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회장이었다. 1975년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주선으로 유영국의 작품을 본 이 회장은 “추상화도 이 정도면 괜찮군”이라고 호평했다 한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 목록에 유영국 작품이 많이 포함된 이유다.
유영국은 평생 고향 울진의 산을 그렸다. 울진은 망망대해와 첩첩산중이 만나는 자리다. 화가는 생전에 “산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고 했고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다채로운 색이 그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실현한 전시장의 산들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삼각형으로 굳은 산, 오솔길과 나무로 풀어진 산을 다채로운 색으로 넘나든다.
화가는 1977년 심장 박동기를 단 뒤 8번의 수술과 수십번의 입·퇴원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이제 좀 쉬시라는 아들에게 그는 소리쳤다. “환쟁이가 그림 그리다 죽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
우직하게 한국을 지킨 화가를 세계가 뒤늦게 알아봤다. 2023년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첫 해외 개인전, 이듬해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통해 유럽 첫 개인전이 열렸다. 미술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의 RM(본명 김남준)은 자신의 소장작 ‘작품(Work·1968)’을 기꺼이 빌려줬고 직접 전시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마지막 붓질은 1999년에 멈췄다. 붉은 삼각형이 층층이 위를 향하고, 꼭대기에는 투명에 가까운 흰 삼각형이 하늘로 오른다. 전시 제목은 1977년 그가 남긴 말에서 왔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인공지능(AI) 혁명 시대에, 역설적으로 인간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에 관객들이 공감하고 있다”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산과 강, 바다의 형세가 유영국만의 선, 색, 면으로 귀결된 독창적 추상성에서 사람들은 자부심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무료전시.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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