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인사이드] 한미 반도체 협력 9500억달러 "누가, 무엇을 얻었나?"

최진홍 기자 2026. 7. 2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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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 5GW·GPU 200만장 투자 합의
삼성 2000억 SK 7500억
네이버는 엔비디아·브룩필드서 100억달러 유치

국내 기업들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향후 5년간 총 9500억달러(1375조원) 규모의 반도체 분야 협력을 추진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지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의 성과를 이같이 공개했다.

9500억달러는 두 건의 대형 공급 협력을 합산한 수치다. 삼성전자와 브로드컴이 향후 5년간 2000억달러(290조원) 규모의 첨단 메모리 반도체 공급과 AI 칩 생산을 위한 파운드리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SK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향후 5년간 7500억달러(1085조원) 규모의 첨단 메모리 반도체 장기 공급 협력을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AMD는 지난 23일 국산 AI 반도체인 NPU와 AMD의 CPU·GPU를 연계한 AI 컴퓨팅 인프라 공동 구축·실증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김 실장은 "반도체 공급과 생산뿐 아니라, 차세대 칩의 공동 설계와 국산 AI 반도체 실증까지 아우르는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양국 기업들은 약 5GW, GPU 약 200만장(B200 기준) 규모의 투자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와 최대 2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확장에 대한 지원과 최신 GPU 베라루빈 시스템 우선 할당에 합의했다. 앤트로픽과는 국내 기가와트(GW)급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투자·협력을 추진한다. AWS와는 기존 울산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기반 파트너십을 국내 주요 거점으로 확대해 GW급 AI 컴퓨팅 용량 확보에 나선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와 전략적 투자 협약을, 글로벌 투자기업 브룩필드와 인프라 공급 계약을 각각 체결해 총 100억달러(약 14조6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AI 팩토리를 구축한다. 엔비디아로부터 10억달러를 유치해 GPU 공급과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브룩필드로부터 최대 90억달러를 지원받아 기가와트급 AI 팩토리 운용에 필요한 인프라와 공급망을 공동으로 마련한다.

피지컬 AI 분야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과 엔비디아가 AI 로봇을 개발·검증할 수 있는 표준화된 기반인 '로봇 레퍼런스 플랫폼'을 공동 구축한다. 대학과 스타트업의 로봇 개발 지원에 활용된다. 현대차그룹은 웨이모와 자율주행차 파운드리 계획도 발표했다. 삼성SDS와 앤트로픽은 AI 신규 시장을 공동 발굴하고 AI 엔지니어를 양성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SK그룹과의 협력을 언급하며 "그 규모는 5000억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집계한 SK 관련 7500억달러는 엔비디아를 포함한 복수 빅테크와의 협력을 합산한 수치로, 양측이 제시한 범위에 차이가 있다.

황 CEO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칩 및 메모리 설계 분야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현대차그룹과는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제네시스 차량을 공동 개발한다고 설명했다. LG와는 공장과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발전 시스템을 공동 개발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AI 프론티어 랩'을 조성하고 엔비디아 연구원 일부의 한국 이주를 검토하는 방안,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협력해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을 위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할 계획"이라는 구상도 내놨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램프 레스토랑에서 열린 글로벌 AI 리더 만찬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최태원 SK 회장,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용범 정책실장, 라니 보르카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하드웨어 사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사진=연합뉴스

기업별 파급은 사업 구조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먼저 삼성전자가 확보한 2000억달러는 메모리 공급과 파운드리 수주가 한 건의 협약에 묶였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브로드컴은 하이퍼스케일러의 커스텀 AI 칩 설계를 사실상 독점해온 사업자로 생산 파트너 선택이 곧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와 연결된다. 삼성 파운드리로서는 선단 공정 가동률을 채울 대형 고정 물량을 확보하면서 수율 개선의 여지를 얻었다. 메모리 쪽에서도 엔비디아 중심으로 쏠려 있던 고객 구성을 분산하는 효과가 따라온다.

SK의 7500억달러는 단기 판매가 아닌 5년 단위 공급 계약이라는 점에 무게가 실린다. 메모리 사업의 최대 변수인 가격 사이클을 물량 계약으로 일부 상쇄할 수 있고, 대규모 설비 투자를 앞당겨 집행할 근거가 생긴다.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이미 선주문·장기계약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는 흐름의 연장선인 셈이다. SK텔레콤은 통신 사업자에서 AI 컴퓨팅 용량을 임대하는 인프라 사업자로 수익 모델을 이동시키는 중이다. 엔비디아와 앤트로픽, AWS를 동시에 확보한 점은 특정 고객 의존도를 낮추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네이버에게 100억달러의 의미는 금액보다 조달 방식에 있다. 지분 투자와 인프라 공급 계약을 결합하는 형태여서 자체 재무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GW급 사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룩필드는 데이터센터와 전력·재생에너지 등 실물 인프라 운용에 강점을 가진 운용사로 엔비디아와 최대 10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프로그램을 함께 운용하고 있어 후속 확장의 여지가 남아 있다. 

자체 서비스 운영을 위해 쌓아온 데이터센터 설계·운영 역량을 대외 사업으로 전환하는 계기이자, 특정 빅테크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국가 단위 수요를 겨냥할 발판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의 협력은 완성차 판매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영역에 집중됐다. 로봇 레퍼런스 플랫폼은 개발·검증의 표준을 쥐는 사업으로, 국내 로봇 생태계가 현대차그룹의 기반 위에서 형성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웨이모와의 자율주행차 파운드리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경쟁의 부담을 줄이면서 제조 역량 자체를 매출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새만금 부지에 단계적으로 투입하는 9조원, 블랙웰 GPU 5만장 확보, 엔비디아와의 약 30억달러 규모 AI 기술센터 설립과 맞물려 로보틱스·피지컬 AI 거점을 국내에 두겠다는 그림이 유지되고 있다.

삼성SDS와 앤트로픽의 계약은 규모는 작아도 방향이 다르다. 시스템통합(SI) 중심 매출 구조에서 프런티어 AI 모델 기반 서비스와 인력 양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통로여서다. 앤트로픽 입장에서도 SK텔레콤을 통해 인프라를, 삼성SDS를 통해 기업 고객 접점을 동시에 확보하는 진입 구조가 만들어졌다.

LG와의 발전 시스템 공동 개발은 AI 인프라의 병목이 반도체에서 전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AI 프론티어 랩과 KAIST 협력은 국내 연구 인력이 해외로 이동하던 흐름을 일부 되돌릴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지목된다.

다만 발표된 협력 상당수는 업무협약과 파트너십 단계로 본계약 과정에서 규모와 일정이 조정될 수 있다. 5GW급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전력 계통 접속과 인허가, 지역 수용성 확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AI 서밋에서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발표하고 대한민국을 대체 불가한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행사에는 젠슨 황 CEO와 혹 탄 브로드컴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의장 등 230여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서밋 이후 현지 식당에서 황 CEO, 혹 탄 CEO, 라니 보르카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하드웨어 사장과 국내 총수들이 함께한 만찬을 가졌다. 참석 기업들의 최근 종가 기준 시가총액 합계는 약 1.7경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