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노소영에 9440억 재산분할…재계 시선은 ‘재원 마련’
최 회장 측 “심려 끼쳐 송구”…판결문 검토 후 상고 여부 결정
SK㈜ 지분 매각 가능성 제기…경영권 리스크 해소에도 착잡

【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 38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은 갈라섰다.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는 24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재산분할금 규모를 다시 산정하는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최 회장 측)의 9440억원 지급을 판결했다. 이로써 2017년 7월 최 회장이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9년 만에 사실상 법적 분쟁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
이날 오후 2시 선고 공판을 앞둔 서울고법 청사에는 이른 시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법정 출입구 앞에는 방송사 카메라와 취재진이 진을 쳤지만,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선고기일은 판결을 고지하는 절차여서 당사자 출석은 의무가 아니다.
재판부는 재산분할 비율에서 3분의 1을 노 관장의 몫으로 판단했다. 또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분할 대상으로 인정했다. 다만 노 관장에게 귀속되는 주식 중 부족한 부분은 최 회장이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이는 최 회장의 경영권을 유지시켜줬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분할 대상 주식의 가액은 이혼소송 항소심 변론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을 기준으로 산정했다. 재판부는 "항소심 변론종결일 이후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 사이 SK㈜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이는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부부 공동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위해 주가 상승분은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을 재산분할 산정에서 제외했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설령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 측에 전달됐더라도 이를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최 회장이 혼인관계 파탄 이전 경영권 유지와 경영활동 과정에서 친인척에게 증여한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왼쪽)과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이 지난 6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산분할 파기환송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24/552795-r1dG8V7/20260724180009733epjr.jpg)
이번 사건은 국내 이혼소송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을 둘러싼 분쟁이었다. 단순히 부부의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를 넘어 SK그룹의 성장 과정과 상장주식 가치 산정 기준, 배우자의 재산 형성 기여도 등 다양한 법적 쟁점이 함께 다뤄지면서 재계와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첫해, 최 회장과 노 관장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대통령 장녀와 SK그룹 후계자의 만남은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릴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5년이다. 최 회장은 그해 말 한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하고 이혼 의사를 밝혔다. "더 이상 혼인관계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공개 서신은 재벌가의 사적인 갈등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최 회장은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노 관장이 응하지 않으면서 합의는 무산됐다. 결국 2018년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노 관장도 2019년 맞소송을 내면서 재산분할을 둘러싼 본격적인 다툼이 시작됐다.
1심은 최 회장의 유책 책임을 인정해 이혼을 받아들이면서도 SK㈜ 주식은 상속·증여받은 특유재산으로 판단해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사건의 흐름은 바뀌었다.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 성장의 종잣돈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며 약속어음과 김옥숙 여사의 메모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과 재산분할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판결 이후 최 회장은 곧바로 상고했다. 재산분할 규모도 문제였지만, 항소심이 인정한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SK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는 판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대법원은 2025년 항소심 판단 일부를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실제 SK에 유입됐더라도 불법 자금인 만큼 재산 형성 기여분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혼과 위자료 부분은 그대로 확정했지만, 재산분할은 다시 서울고법에서 판단하도록 했다.
파기환송심이 시작되자 예상치 못한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그룹 가치가 크게 뛰었고,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가도 단기간에 급등했다. 이에 따라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 주식 가치를 언제 시점으로 평가할 것인지가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변론이 마무리된 2024년 4월을 기준으로 주식 가치를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인 관계가 사실상 종료된 이후 AI 산업 호황으로 발생한 기업 가치 상승은 노 관장의 기여와 무관하다는 논리다. 반면 노 관장 측은 파기환송심도 새로운 사실심인 만큼 변론종결일인 올해 6월 26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맞섰다. 당시 SK㈜ 주가는 AI 투자 확대와 SK하이닉스 실적 기대감에 힘입어 항소심 당시보다 크게 오른 상태였다.
결국 재판부는 SK㈜ 주식 가액은 항소심 변론종결일 기준으로 산정하되, 이후 주가 상승분은 재산분할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고려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만 최 회장 측이 판결문 검토 이후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으로 밝히면서, 이번 사건이 다시 재점화될지와 1조원에 육박하는 재산분할금 재원 마련 방안에 재계의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최 회장의 SK㈜ 지분 매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최 회장이 지분 매각에 나서더라도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준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