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36주 임신중지’ 산모 항소심 무죄, 제도 공백은 언제 메우나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고 태아를 숨지게 한 산모에게 2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용석)는 23일 산모 권모씨에 대해 “산모가 사산으로 알았을 뿐 살해를 인지·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 유죄를 뒤집고 무죄로 판단했다. 병원장과 집도의에 대해선 “살인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도 “해당 수술은 산모의 임신종결 의사에서 비롯된 범행인 점”을 참작해 감형했다. 법원이 여성의 임신유지 여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임신중단 여성을 국가가 처벌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은 전향적이다.
이 사건 쟁점은 권씨가 태아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다. 1심은 권씨가 수술 전 태아 심박수가 정상임을 알고 있었고, 사체 처리 동의서에 서명한 점 등을 이유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산모 권씨가 수술할 때 태아가 뱃속에서 사산된 상태로 배출된다고 알았을 뿐, 산 채로 모체 밖으로 나온 태아를 의사가 살해할 것이란 사정은 몰랐다”는 권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사회경제적으로 절박한 권씨가 임신중지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권씨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유로 봤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임신 36주차인 권씨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해 태아를 출산하게 한 뒤, 태아를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1심과 같이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여성의 임신 유지 결정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인격권에 해당한다”며 1심에서 각각 징역 6년,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병원장 윤모씨와 집도의 심모씨에게 징역 4년과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후 7년째 계속된 입법 공백으로 산모와 의료계가 혼란에 빠진 현실은 외면한 채 임신중지 처벌에만 매달린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는 의미가 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기본권을 방치한 국회와 정부의 무책임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다. 국회는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대체입법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법 개정 없이도 허가가 가능한 유산유도제를 승인해 임신중지를 안전한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 산모 개인을 법정에 서게 하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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