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토론회 청원 95% “대출 규제 풀어달라”
“청약에 당첨돼 중도금까지 다 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은행권 총량 규제 때문에 잔금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돼 계약이 깨질 처지입니다. 정책이 바뀌어서 생긴 피해를 왜 개인이 떠안아야 합니까.”(청원자 A씨)
“작년 6월 이후 전세 퇴거자금 대출이 사실상 막히면서 내 집에 들어가 살 수가 없게 됐습니다. 정부는 ‘비거주 1주택’을 지양한다면서, 정작 1주택자의 실거주를 가로막고 있습니다.”(B씨)
“이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도 가계대출 관리라는 명목으로 대출이 막혀 원하는 집 한 채를 살 수가 없습니다.”(C씨)

23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앞두고 정부 사전 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연들이다. 청약 당첨자, 1주택 실거주 희망자, 무주택 실수요자까지 처지는 제각각이지만 청원은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는 호소로 모아진다.
실제로 본지가 지난 14~20일 토론회 홈페이지에 접수된 금융 관련 의견 1024건을 LG그룹의 AI(인공지능) 엔진 ‘엑사원’으로 분석한 결과, 975건(95.2%)이 대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취지였다.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20건(2%)에 그쳤고, 나머지는 중립적이거나 판단이 어려운 의견이었다. 청원은 공급, 금융, 세제 등 3가지 주제로 나뉘는데, 이 중 의견이 가장 많고 쟁점이 뚜렷한 금융 분야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마침 이 대통령의 아파트 ‘근저당 매각’ 논란으로 현 정부 대출 규제에 대한 여론이 비등한 시점이어서, 국민의 목소리가 이번 토론회를 거쳐 실제 정책에 반영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3건 중 1건이 “대출 한도 늘려달라”
청원 홈페이지에 접수된 규제 완화 요구를 유형별로 보면,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은행권 가계대출 총량 관리 등 대출 한도 규제를 풀어달라는 의견이 373건(36.4%)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 청원 3건 중 1건꼴이다.
둘째로 많은 의견은 공공분양 사전청약 특례대출을 원상 복구해 달라는 요청(201건·19.6%)이었다. 최근 3기 신도시 중 하나인 고양 창릉지구에서 특례대출 축소가 논란이 되면서 관련 청원이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청약 당첨자에게 제공되는 잔금대출을 은행권 총량 규제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청도 148건(14.5%)에 달했다. A씨처럼 당첨의 기쁨이 계약 파기 위기로 뒤바뀐 사례가 그만큼 흔하다는 방증이다.
이 밖에 규제 소급 적용을 막아달라는 의견(40건), 전세·퇴거자금 대출을 완화해 달라는 의견(38건),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등 정비사업 대출을 완화해 달라는 의견(23건)이 뒤를 이었다. 이번 분석은 각 제안의 제목을 추출해 AI로 1차 분류한 뒤, 구분이 모호한 제안은 키워드 학습을 통해 2차 분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 “대출 규제가 부동산 양극화 부추겨”
대출 규제가 서울 주택시장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도 통계에서 드러난다.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금조달계획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강남 3구·용산구 주택 매수자의 금융기관 대출 비중은 11.4%로 작년(19.8%)보다 8.4%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노원·도봉·강북·중랑·구로·은평 등 서울 외곽 10구의 대출 비중은 28.5%에서 33.1%로 높아졌다.
25억원 넘는 고가 아파트가 많은 지역은 대출 한도가 2억원에 불과해 현금 없이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시장이 됐고,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는 6억원 한도가 유효한 외곽으로 밀려나 한도를 최대한 채워 집을 사고 있다는 뜻이다. 김 의원은 “무리한 대출 규제가 강남을 현금 부자들의 ‘그들만의 세상’으로 만들고 자산을 형성하지 못한 청년 세대는 ‘영끌’ 매수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선종 건국대 교수는 “현행 대출 규제가 정상적인 아파트 거래조차 어렵게 만들 정도로 과하다는 사실이 대통령의 주택 매도 과정에서 확인됐다”며 “불합리한 규제의 개선과 폐지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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