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인(江都人)들은 무얼 먹고 살았을까 [우리나라 문화샘터,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4)]
포도·귤·복숭아 등 ‘과일 사랑’
강화 섬… 800년전 생선회도 먹어
이규보 詩에 다양한 먹거리 나와
최고 실권자가 술·얼음 하사도
고려도경엔 무료급식소 이야기

‘광야’의 시인 이육사는 노래했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그의 고향 안동에서만 7월에 포도가 익어가는 것은 아니다. 강화도 역시 7월의 포도는 익어가느라 바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 지역의 해풍 영향인지 강화도 포도는 그 품질이 뛰어나기로 이름 높다. 포도의 제철은 하우스 재배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무튼 여름철로 보면 된다.
800년 전 고려시대 사람들도 포도를 먹었다. 이규보의 시가 그 사실을 전한다. ‘건성사 제석전 주인 선생이 기거하는 누각 앞에 시렁을 만들고 포도 넝쿨을 틀어올려 차양을 삼았는데 이를 두고 시를 읊은 이가 많았으므로 선생이 나에게 차운을 청하다(乾聖寺帝釋殿主謙師所居樓 架葡桃遮陽 賦者多矣 師請予次韻)’란 다소 긴 제목의 시. 이때는 포도(葡萄)를 포도(葡桃)라고도 썼던 모양이다. 시는, 포도 넝쿨이 낮게 깔려 대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우거져 있고, 옥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고, 서리를 맞아야 달콤하게 맛이 드니 이걸 미리 함부로 따 먹지 말라는 내용이다. 이때의 포도는 서리가 내린 뒤인 늦가을에나 제맛이 들었던 듯하다. 포도 넝쿨로 차양을 삼아 햇빛을 가리는 게 많은 이들에게 신기하게 보였는지 여러 시인 묵객의 시심을 자극했다. 이규보에게도 써 보라는 제안이 왔다. 이때는 이규보가 39세이던 1206년이다.
건성사는 개성 송악산에 있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의 명으로 지어졌다. 고려 정부는 개성에서 강화로 천도한 뒤 개성의 주요 사찰을 모두 강화에 새로 짓게 했다. 건성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성의 건성사 포도 넝쿨 또한 꺾꽂이 형태로 강화에 옮겨 심었을 터이다.
포도뿐만 아니라 복숭아, 귤, 배, 홍시, 모과, 오얏(자두), 앵두 등의 과일을 고려 사람들은 먹었다. 귤은 제주에서 보내주어야 먹을 수 있는 특별 선물이었는데, 당시 문헌에 감자(柑子), 감귤(柑橘), 황감(黃柑), 청귤(靑橘), 금귤(金橘) 같은 다양한 표현이 나오는 걸로 보아 귤의 품종 또한 여럿이었던 모양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강화에서는 800년 전에도 생선회를 먹었다. 이 역시 이규보의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강화 천도가 이루어진 지 5년, 이규보가 70세가 된 1237년에 ‘남헌에서 우연히 읊다’라는 시에 ‘붉은 생선회를 쳐서 안주를 삼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는 생선회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이규보가 72세이던 1239년에는 팔딱거리는 생선 이야기를 시로 남겼다. 몸져누워 있던 그에게 어떤 어부가 비늘이 살아서 날아갈 듯한 물고기를 가져와 보양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다. 또한 이규보는 찐 게[蒸蟹]를 술안주로 먹는 걸 무척 좋아했다.
이규보가 숨지기 두 달여 전인 1241년 6월에는 당시 최고 실권자 최우가 술과 얼음을 보내주었다는 얘기도 시로 읊었다. 이 시에는 최우가 전에도 순채(蓴菜)와 혼돈(蓴菜)을 보내왔다는 내용도 주석 형태로 덧붙여 놓았다. 순채는 수련과의 수초(水草)이며, 혼돈은 밀가루나 쌀가루 반죽을 둥글게 빚은 뒤 그 속에 소를 넣어 찌는 만두 같은 것으로 보인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도 고려 사람들의 먹거리가 다양하게 실려 있다. 평상 위에 소반을 놓고 구리 그릇에 어포, 육포, 생선, 채소 등을 섞어서 연회장의 안주로 내놓는 모습이 서긍의 눈에 잡혔다.
양이나 돼지고기는 고위층만 먹을 수 있었고, 가난한 백성들은 해산물을 주로 먹는다고 서긍은 보았다. 미꾸라지, 전복, 조개, 진주조개, 왕새우, 무명조개, 대게, 굴, 거북이다리, 다시마를 귀천 없이 즐겨 먹는다고 ‘고려도경’은 설명하고 있다.
‘고려도경’은 특이하게도 ‘무료급식소’ 이야기를 싣고 있다. 궁궐 담벼락 쪽에 일정 거리마다 큰 항아리에 흰 쌀죽을 담아두고 대접과 국자를 놓아 지나가는 사람이 맘껏 먹을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얘기다. 그곳에는 불상을 설치해 놓았고, 일은 승려들이 맡았다고 서긍은 썼다.
서긍이 파악한 고려의 과일도 따로 있었다. 복숭아만큼이나 큰 밤이며 6월에 먹는 앵두, 그리고 개암[榛]이나 비자[榧]도 많았다. 일본에서 왔다면서 능금, 청리(靑李), 참외, 복숭아, 배, 대추 들의 과일도 적었다. 연근(蓮根)과 연밥[花房]은 부처가 밟았던 꽃으로 여겼기 때문에 고려 사람들은 따지 않았다고 서긍은 썼다.
지금, 강화도의 7월 포도는 익어가느라 바쁘지만 7월의 포구는 한산하다. 금어기이기 때문에 그물질하는 어선은 선착장에 배를 대고 쉬어야 한다. 포구마다 수족관은 비었고, 백합 같은 맨손으로 채취하는 조개류뿐이다.

/정진오 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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