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남고 사람은 줄었다…축산 공급망 '구원투수' 등장

정용진 2026. 7. 21. 18: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책 비하인드]
고령화·구인난 겹친 도축업계, 외국인 도입 본격화
안전관리·근무환경 개선 없인 정책 효과 한계 우려
축산 공급망 지키기 위한 숙련 인력 확보 과제 부상

[지데일리] 도축장의 칼은 쉬지 않지만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축산물 공급의 출발점인 도축 현장은 오랜 기간 인력 부족에 시달려 왔고, 숙련 인력의 고령화와 신규 인력 기피 현상이 맞물리며 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처음으로 전문 외국인 도축 인력을 국내 현장에 투입하기로 하면서 축산업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번 정책이 인력난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과제를 남길지는 현장 운영과 제도 보완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몽골 숙련 도축원을 처음 국내 현장에 투입하며 인력난 해소에 나섰지만, 안전관리와 근무환경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픽사베이


농림축산식품부는 도축업계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설한 도축원 비자(E-7-3)를 통해 몽골 출신 전문 인력 36명이 국내에 입국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례는 해당 비자 제도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도축 전문 인력이 국내 도축장에 배치되는 사례다. 이달 14일 15명이 먼저 입국했으며, 나머지 인원도 순차적으로 입국할 예정이다.

이번에 입국하는 인력은 몽골 현지 도축 관련 교육기관을 수료하고 3년 이상의 실무 경력을 갖춘 숙련 인력이다. 일반적인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와 달리 별도의 장기간 직무 교육 없이 곧바로 작업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숙련도가 중요한 도축 공정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 설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축장은 축산물 안전관리의 시작점이다. 가축의 도축과 위생 처리, 검수, 냉장 보관 등 모든 과정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 어느 한 공정이라도 인력이 부족하면 작업 속도와 품질 관리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여름철과 명절 성수기에는 작업량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숙련 인력 확보는 축산물 공급 안정과도 직결된다.

그동안 국내 도축업계는 오랜 기간 심각한 구인난을 겪어왔다. 높은 노동 강도와 특수한 작업 환경, 안전사고 위험,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젊은 인력의 유입이 크게 감소했다. 기존 종사자들 역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숙련 기술을 이어갈 인력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이어졌다.

한국고용정보원과 통계청 자료에서도 축산업과 식품가공 분야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산업으로 분류된다. 지방에 위치한 도축장의 경우 구인 공고를 수개월 동안 유지해도 지원자가 거의 없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부 업체는 인력 부족으로 작업일을 줄이거나 도축 물량을 조정하는 사례도 발생해 왔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2026년부터 2027년까지 연간 150명 규모의 외국인 도축 전문 인력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숙련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생산 공정의 안정성을 높이고 축산업 공급망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도축원 비자(E-7-3)는 전문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특정활동(E-7) 비자의 세부 유형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과 경력을 갖춘 외국인이 국내에서 전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로, 일반 고용허가제(E-9)와는 대상과 자격 요건이 다르다. 숙련도를 중심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산업 현장의 생산성과 품질 관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축산업계는 이번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숙련된 외국인 인력이 투입되면 작업 일정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도축 지연으로 발생하는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축산물 공급망 유지와 물가 안정 측면에서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언어와 안전교육 문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도축장은 날카로운 장비와 대형 설비를 사용하는 작업장이어서 안전수칙 전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산업재해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다국어 교육과 반복적인 안전훈련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근무환경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도축장은 냉장시설과 고강도 작업이 이어지는 특성상 근로자의 신체적 부담이 크다. 외국인 인력 확보만으로 인력난을 해결하기는 어렵고, 임금 체계 개선과 휴게환경 확충, 안전장비 보강 등 근로환경 전반의 개선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인권 보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도 외국인 근로자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작업환경 개선과 인권 보호, 현장 적응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숙소 환경과 의료 지원, 통역 서비스, 고충 상담 체계까지 갖춰져야 장기적인 인력 확보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국내 인력 양성과의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외국인 인력 도입이 긴급한 처방이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청년층이 관련 산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직업 인식 개선과 처우 향상이 병행돼야 한다. 자동화 설비 확대와 스마트 도축 시스템 구축도 인력 의존도를 줄이는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앞으로 관계 부처와 협의를 이어가며 도축장별 인력 배정을 확대할 계획이다. 외국인 숙련 인력 도입이 축산업 경쟁력 강화와 공급망 안정에 기여할 가능성은 크다. 다만 지속 가능한 성과를 위해서는 인력 수급 정책과 함께 근로환경 개선, 안전관리 강화, 기술 혁신이 함께 추진될 때 비로소 국내 도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