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돌아온 예지원의 ‘홍도’…“웃고 울며 마음 비워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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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예지원이 12년 만에 다시 만난 '홍도'를 통해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관계의 상처와 이해, 치유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했다.
한동안 무대에서 만나지 못했던 홍도는 12년 만에 예지원에게 다시 돌아왔다. 예지원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지역 공연 관계자들의 요청 등이 이어지면서 다시 홍도 역을 맡게 됐다.
프레스콜에 참여한 배우들도 "관객들의 사랑 덕분에 12년 만에 다시 공연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홍도'가 계속 성장하며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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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 “과거엔 선악만 보였지만 지금은 주변 인물의 사정까지 보여”
대극장서 마이크 의존 낮춘 육성 연기…12년 함께한 배우들과 ‘원팀’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상대 입장 생각하는 것이 치유의 출발”

배우 예지원이 12년 만에 다시 만난 '홍도'를 통해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관계의 상처와 이해, 치유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했다.
뮤지컬 '홍도'가 지난 17일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이날 공연은 극공작소 마방진이 전국 각지에서 이어 온 107번째 무대로, 마방진 창단 20주년 상반기 공연 일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공연 후 진행된 프레스콜에서는 고선웅 연출과 예지원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린 소회와 전국 순회 과정에서 느낀 관객들의 반응을 전했다. 예지원은 공연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많이 웃고 많이 울면서 잠시 현실을 잊고, 마음속 좋지 않은 감정들을 비워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 107번째 무대, 고양에서 마무리한 전국 순회
'홍도'는 1930년대 대표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오늘날의 무대 언어로 다시 풀어낸 작품이다. 기생이 된 홍도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만 시댁의 반대와 음모에 휘말리면서 비극을 맞는 이야기를 그린다.
고선웅 연출은 원작의 탄탄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 관객이 이야기를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인물과 장면의 밀도를 높였다. 무대 장치 역시 최소화했다. 흰색을 중심으로 한 공간에 지붕과 항아리, 칼, 민들레, 붉은 꽃잎 등 상징적인 요소를 배치해 인물의 운명과 관계를 드러냈다.

◇ 예지원 "홍도와 함께 나이 들고 성장해"
예지원이 처음 홍도를 만난 것은 12년 전이다. 당시에는 구리와 대학로에서 각각 3주간 공연하는 작품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예술의전당과 전국 공연을 비롯해 아부다비 무대까지 이어지며 작품의 생명력을 입증했다.
한동안 무대에서 만나지 못했던 홍도는 12년 만에 예지원에게 다시 돌아왔다. 극중 홍도가 18세라는 점 때문에 처음에는 출연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예지원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지역 공연 관계자들의 요청 등이 이어지면서 다시 홍도 역을 맡게 됐다.
그는 "12년 전에는 정신없이 재미있게 공연했고, 작품이 가진 힘이 배우들의 부족한 부분까지 감싸줬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작품을 더 알게 됐고 책임감도 커져 오히려 부담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홍도가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이번에는 내가 홍도를 끌고 가기보다 홍도가 나를 이끌어 주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 절대적 선과 악 넘어 '각자의 사정' 바라봐
12년 전 예지원에게 홍도는 절대적인 선이었고, 홍도를 괴롭히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등은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작품을 바라보자 주변 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지원은 특히 홍도를 내쫓으려는 시어머니의 과거에 주목했다. 시어머니 역시 가난 때문에 기생이 됐을 가능성이 크고, 마담으로서는 성실한 홍도를 아꼈지만 아들의 아내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홍도의 유일한 편으로 여겨졌던 오빠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오빠가 자신의 학업을 위해 동생이 기생이 되는 상황을 사실상 외면했다는 점이 이전보다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 18세 홍도와 무용가를 꿈꿨던 18세 예지원
극중 홍도는 18세다. 가족을 위해 기생이 됐고,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시대와 신분의 벽에 부딪힌다.
예지원의 실제 18세는 한국무용가를 꿈꾸던 고등학생이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연기로 진로를 바꿨지만, 그는 무용을 배운 시간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중요한 바탕이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프레스콜에서 "18세 때는 시집가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무용가가 될 줄 알았다"며 "대학에 떨어져 연기로 전향했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무용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용으로 단련한 체력과 움직임은 '홍도' 무대에서도 큰 힘이 됐다. 빠른 장면 전환과 많은 동선, 감정의 폭발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작품에서 예지원 특유의 신체 표현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 마이크 없이 채우는 대극장…"매일 새로 짓는 집"
'홍도'의 또 다른 특징은 대극장 공연임에도 배우들이 개별 마이크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육성으로 무대를 채운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많은 움직임과 대사를 소화하면서도 객석 끝까지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예지원은 10여 년 동안 무대 연기를 이어 온 동료 배우들의 성장을 보며 위기감까지 느꼈다고 털어놨다. 첫 연습을 마친 뒤에는 "내가 작품을 방해하는 배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동료들에게 자신의 발성과 호흡을 계속 확인했다.
그는 "12년 전에도 동료들이 잘했지만 다시 만나보니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며 "나도 연습을 한 번이라도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12년을 이어 온 배우들…'원팀'이 만든 힘
이번 공연에는 초연부터 참여한 배우들이 대거 함께했다. 일부 배우를 제외하면 12년 전 무대를 만들었던 출연진이 다시 모였으며,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도 기존 구성원들과 호흡을 맞췄다.
예지원은 '홍도'가 장기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배우들의 협력과 신뢰를 꼽았다. 각자 자신의 연기만 돋보이게 하기보다 누군가 흔들리면 다른 배우들이 받쳐주며 하나의 무대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팀에서는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시기하기보다 작품과 연기 이야기를 한다"며 "각자 자신의 것을 잘하면서도 서로를 받쳐주는 원팀의 힘이 작품을 극대화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스콜에 참여한 배우들도 "관객들의 사랑 덕분에 12년 만에 다시 공연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홍도'가 계속 성장하며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 웃고 울며 비워내는 무대…목표는 '치유'
'홍도'는 한 여성의 비극을 다루지만 슬픔에만 머물지 않는다. 고선웅 연출 특유의 위트와 빠른 전개, 배우들의 과장과 절제가 어우러진 연기가 웃음과 눈물을 교차시킨다.
예지원은 작품의 최종 목표를 '치유'라고 표현했다. 홍도보다 더 불행한 삶을 바라보며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와 타인의 입장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 과정이 치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다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을까'라고 생각하는 데까지 가면 스스로 조금 편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양시민들에게 "웃고 싶으면 크게 웃고 울고 싶으면 엉엉 울어도 되는 곳이 공연장"이라며 "여름에 잠시 더위를 식힌다는 마음으로 와서 재미있게 보고, 현실을 잠깐 잊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1930년대 홍도의 비극은 2026년의 무대에서 단순한 옛이야기로 머물지 않았다.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누군가의 사정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오늘날의 삶과 맞닿으며, 고양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 그리고 마음을 비워내는 시간을 선사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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