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풍자와 조롱 사이

김종우 2026. 7. 1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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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비판' 풍자 vs '사람 겨냥' 조롱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세계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고 코미디 소재다. 미국의 심야 토크쇼는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비틀고, 코미디쇼 SNL은 정책과 외교를 웃음의 재료로 삼는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선 대통령과 기자들이 웃음 속에 독설을 주고받는다. 워싱턴DC 한복판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황금 변기' 조형물이 기습 등장하기도 한다. 권력을 풍자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도 민주화 이후 대통령 풍자가 낯설지 않은 사회가 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풍자의 지향점이다.

요즘 일부 방송과 유튜브에서 웃음의 방향이 권력보다 개인을 향하는 경우가 잦다. 지난해 초 개그우먼 이수지가 유튜브에서 선보인 '대치맘' 패러디는 풍자와 조롱의 경계를 둘러싼 논쟁을 불렀다. 명품 패딩과 영어 말투, 학원 라이딩 등을 웃음거리로 삼았지만, 정작 사교육 과열과 교육 불평등은 화면 밖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보다는 특정 집단을 희화화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풍자는 권력과 사회적 모순을 겨눌 때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나 개인의 말투와 취향, 일상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을 때 풍자는 조롱이나 혐오 표현으로 기울기 쉽다. 조회수는 상승할지 몰라도 통렬한 웃음은 사라진다.

말의 맥락을 놓치면 일상 표현이 혐오의 징표로 오인될 수 있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낙인은 비수(匕首)가 된다. 걸그룹 리센느 원이의 '무섭노' 논란이 그랬다. 경남 방언이 일베식 혐오 표현이라는 의혹으로 번졌고, 정치권까지 나섰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비판에 가세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방언이라는 언어학적 해석이 잇따르면서 역풍을 맞았고, 그는 젊은 세대의 언어문화를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2030세대는 지역어와 인터넷 언어를 자유롭게 섞어 쓴다. 맥락을 떼어내고 단어만 들여다보면 오해를 부르기 쉽다. 표현을 비판하려다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일도 발생한다.

풍자와 조롱, 혐오 표현을 가르는 경계가 흐려질수록 그 모호함을 구실 삼아 표현을 옥죄려는 규제의 유혹도 커진다. 지난 7일 시행된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으로 불리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그렇다. 허위조작정보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는 수긍할 만하다. 문제는 허위조작정보의 정의와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자의적으로 적용되면 정치적 비판이나 공익적 의혹 제기까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법은 풍자와 패러디를 규제 대상에서 뺐다지만, 현실에서 무엇이 풍자이고 무엇이 허위조작정보인지 구분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허위조작정보는 막아야 하지만 권력을 향한 풍자까지 움츠러들어선 안 된다.

풍자는 웃음을 통해 권력을 비판하는 예술이고, 조롱은 웃음을 빌려 사람을 비하하는 기술이다. 둘 다 웃음을 도구로 쓰지만, 여운은 다르다. 권력을 향한 풍자는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하는 동력이지만, 사람을 향한 조롱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독소다. 여기에 낙인과 과도한 검열까지 더해지면 불신만 남게 된다. 풍자는 사회를 돌아보게 하지만, 조롱은 사람을 비웃게 만든다. 그래서 풍자는 공감을 낳고, 조롱은 혐오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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