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막고 美통행료, 금리 예상까지 ‘궁지’ [트럼프 스톡커]
트럼프 “美, 호르무즈 해협 20% 통행료 징수”
유가 10% 급등...해상 전략 세부 설명도 없어
MOU 유명무실...종전 출구 막히자 극단 카드
미군 대규모 공습 재개...16일 대국민 담화 예고
이번주 6월 CPI 의미 퇴색...금리인상 가능성 ↑

미국과 이란이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발효한 종전 양해각서(MOU)를 사실상 폐기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국제 유가가 또다시 출렁이고 있다. 특히 미군이 이달 7일부터 쉬지 않고 이란을 공습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20% 통행료 부과를 선언한 탓에 국제 유가가 재차 들썩이고 있다. 종전 MOU 이후 전쟁 이전 수준까지 내려갔던 에너지 가격을 토대로 설정됐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경로도 흔들릴 공산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날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른 것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선박 타격을 빌미로 미국이 해상을 봉쇄하고 20%가량의 통행세를 받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있든 없든 개방돼 있고 우리는 이란을 다시 봉쇄하고 있다”며 “매우 불안정한 이 지역의 안전과 보안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선적된 화물 전체의 20%로 보상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련 절차와 구성은 즉시 시작될 것”이라며 “미국은 지금부터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로 불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폭스뉴스 전화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그동안 무상으로 해협을 지켰지만, 이제부터는 그 대가로 엄청난 돈을 받을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은 아주 부유하고 그들은 우리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CNN은 “상업 선사들에 화물 가치 20%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는 MOU 내용과도 배치되는 결정이다. 종전 MOU 제5항은 ‘전쟁 기간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재개를 위해 이란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지난달 23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자리에서 “현행 국제법상 어떤 나라도 국제수로에 통행료나 수수료를 부과할 수 없다”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 수수료 부과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을 총괄 지휘하는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도 같은 날 X(옛 트위터)에서 “군통수권자(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란 항구를 드나드는 해상 교통에 대한 봉쇄를 재개한다”며 해당 조치를 14일 오후 4시(한국 시간 15일 오전 5시)부터 재개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 4월 13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이란 항구나 연안을 오가는 모든 선박을 봉쇄하면서 이란의 자금줄을 한 차례 차단한 바 있다.
이에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이맘 호메이니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관리에 개입하는 것을 결단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앞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도 12일 성명을 내고 “여러 선박이 승인된 항로로 이동하라는 경고를 무시했다”며 “외세의 불법 개입으로 불안정이 발생했으므로 호르무즈 해협은 추후 공지 때까지, 역내 미국 개입이 종료될 때까지 전면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트루스소셜에 글을 또 올리고 16일 오후 9시(한국 시간 17일 오전 10시) 대국민 연설을 하겠다고 알렸다. 대국민 연설의 주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날 분위기를 봐서는 이란에 대한 대응 전략이 주된 내용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연설은 4월 1일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대국민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동안 이란을 극도로 강하게 타격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보수성향 라디오 채널 ‘휴 휴잇 쇼’에 출연해 “오늘 밤에도, 내일도 이란을 세게 때릴 것”이라며 “이란이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큰소리 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MOU는 종전이라는 본 계약으로 가기 전 단계에 맺는 것이어서 큰 의미는 없다”며 “일종의 시험이었는데, 이란은 그 시험을 존중하지 않았고 통과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소유 물류기업 DP월드가 불확실성이 커진 호르무즈 해협을 위회하기 위해 자국 동쪽 해안에 새로운 항구와 컨테이너 터미널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한 이후 중동 최대 물류 허브인 제벨알리항의 물동량이 90∼95% 급감해 대안을 찾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UAE의 석유 물량은 대부분 칼리파항과 제벨알리항을 통했는데, 이들 항구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협상 국면에서 갑자기 통행세 징수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은 불분명하다. 확실한 것은 MOU 체결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앞세워 미국을 수차례 압박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상전까지 염두에 둔 전면전을 치를 여력도,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장기 대치를 이어갈 이유도 없다. 더욱이 후속 협상 기간 60일 가운데 20일 이상이 지난 시점이라 남은 기간 이란 핵 프로그램 폐기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전격적인 합의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남은 전략으로는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재급등을 감수하고서 이란 항구 재봉쇄, 해협 수수료 징수라는 극단적인 카드밖에 없는 셈이다.

이란도 미군 기지가 있는 주변 중동 국가를 타격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11일 부친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장례식 관련 서면 메시지를 내고 “두 차례의 전쟁에서 흉악하고 수치스러운 살인자들에게 희생된 모든 순교자의 순결한 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며 “이 복수는 우리 국민의 요구이고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로써 기존 MOU의 의미는 거의 상실된 모양새가 됐다.
예멘의 친(親)이란 반군 후티는 13일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브하국제공항을 공격했다. 야히야 사리 후티 반군 군사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사우디 영공에 진입하지 말라고 전 세계 항공사에 경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수도 사나의 국제공항을 타격한 데 따른 보복이라는 설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정세를 다시 한번 흔들면서 연준의 금리 경로도 안갯속에 빠지게 됐다. 실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오는 28~29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준이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확률을 전날 34.2%에서 41.7%로 높여 잡았다. 이는 한 달 전 8.3%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에 반해 금리 동결 확률은 65.8%에서 58.3%로 하루 만에 내려갔다. 7월 FOMC의 금리 동결 확률은 6월 FOMC 직전인 지난달 12일까지만 해도 89.3%에 달했다.
현 국면이 계속 이어질 경우 14일과 15일에 발표되는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생산자물가지수(PPI)의 의미도 퇴색될 것으로 보인다. 월가에서는 지난달 미국과 이란 간 종전 MOU 체결 이후 국제 유가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는 점에서 두 지표 모두 다소 둔화됐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준 의장 후보로 거론될 때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인사로 분류됐던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이날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관세 정책, 에너지 가격 상승, 인공지능(AI) 인프라(기반시설) 확대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으로 통화정책이 갈림길에 서 있다”며 “이번주 발표되는 근원 인플레이션 지표가 또다시 높게 나온다면, FOMC는 단기적인 통화긴축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를 맹비난하던 트럼프 행정부가 돌연 자세를 바꿔 잡음에 따라 국제 원유시장과 자본시장 전반이 당분간 더 불안정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연준의 긴축을 예상하는 시각이 확산하면서 그 여파는 한국 등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을 흔들 수 있게 됐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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