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의 시네마 오디세이] 호모 비덴스, 대중은 왜 영화관을 찾는가

2026. 7. 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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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속 판도라는 "절대로 열지 말라"는 제우스의 경고를 무시한 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연다. 그 순간 인류를 괴롭힐 온갖 재앙과 악이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그동안 나 감독이 연출한 네 편의 장편영화는 모두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강렬한 시청각적 체험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카타르시스가 여전히 대중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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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Hope)'
불가항력적 재앙 속 희망…구원인가 고문인가
강렬한 시청각 체험…극장의 존재 이유 증명
황영미 영화평론가·시네라처 문화콘텐츠연구소장

그리스·로마 신화 속 판도라는 “절대로 열지 말라”는 제우스의 경고를 무시한 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연다. 그 순간 인류를 괴롭힐 온갖 재앙과 악이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놀란 판도라가 급히 뚜껑을 닫았을 때, 상자 바닥에 마지막으로 남은 건 ‘희망’이었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베일을 벗은 나홍진 감독 신작 ‘호프(Hope)’는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을 뜻할까.

이 희망을 인류를 향한 신의 구원으로 보기도 하지만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희망 역시 상자 속 악 중 하나며, 상자에 갇혀 인간에게 닿지 못한 채 고통만 연장하는 가장 나쁜 악”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종종 쓰는 ‘희망 고문’에도 이러한 해석이 투영됐을지 모른다.

영화 ‘호프’는 어느 날 비무장지대에 있는 호포항에 나타난 외계 존재에 맞서는 마을 순경과 청년들의 사투를 그려냈다. 묵시록적 메시지까지 품은 이 영화가 구원으로서의 희망을 말하는지 잔혹한 ‘희망 고문’일지는 오롯이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의 해석에 맡겨진다.

그동안 나 감독이 연출한 네 편의 장편영화는 모두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가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05년 제작한 10분짜리 단편영화 ‘완벽한 도미 요리’로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면서다.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고통을 요리사라는 직업으로 치환한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삶의 아이러니’였다. 삶의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내한 결과, 겉보기엔 성공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은 실패보다 못한 성공이 되고 마는 비극적 상황 말이다.

그의 영화는 매 작품 관객이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강렬한 감정적 체험을 통과하게 한다. 러닝타임 동안만큼은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스릴러의 장르적 기법을 극대화했다. 그러면서도 삶에 내재한 허무와 아이러니라는 영화적 화두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왔다.

이번 영화 ‘호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날벼락처럼 호포항에 들이닥친 외계 존재는 인간의 힘으로 막기 어려운 불가항력적 재앙이다. 영화는 미스터리한 재앙과 밀도 높은 심리적 긴장감 속에서도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인 휴먼 스토리와 외계 존재와의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다. 외계 크리처 외피를 두른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눈빛과 표정 연기도 몰입감을 더한다.

공상과학(SF)적 상상력에 한국 최고의 시각효과(VFX) 기술력을 총동원한 ‘호프’는 ‘하드코어 SF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성공적으로 개척했다. 한국 영화 역대 최고의 제작비와 감독의 장르적 야심이 합해진 결과물을 두고 평론가들의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가운데 대중의 평가는 어떨지 궁금하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현대인을 ‘호모 비덴스(Homo Videns)’라고 명명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유하는 능력 대신, 시각적 이미지에 의존하고 반응하는 인간을 뜻한다. 안방에서 편하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온갖 영상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 현대인은 왜 굳이 영화관을 찾는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강렬한 시청각적 체험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카타르시스가 여전히 대중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영화 ‘호프’에서도 그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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