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파고든 ‘혐오의 놀이화’…“학교 안팎 존중·배려 문화 절실”

문정민 기자 2026. 7. 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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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배재고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비하 응원 사태를 계기로 혐오·조롱·비하 표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소비되던 혐오 표현이 교실까지 확산하면서 학생들이 이를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과 '놀이'처럼 소비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육부가 학생 사회의 혐오·차별 문화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경남 교육계는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민주시민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남교육청도 이번 사안을 계기로 인권·역사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7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전교조

교실까지 번진 '혐오의 놀이화'

"학생들 사이에서는 혐오를 혐오라고 느끼지 않고 그냥 놀이일 뿐이에요. 또래 문화이자 재미로 소비되는 거죠."

창원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혐오 표현이 또래 문화와 '밈'으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사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여성 혐오 표현이나 각종 비하 용어를 그대로 가져와 서로 웃고 즐기는 경우가 많다. 수업 중 압수한 낙서에도 인터넷에서 떠도는 여성 비하 표현이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은 발표 자료나 과제 곳곳에 교사가 잘 모르는 혐오 용어를 숨겨 넣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미지 등도 역사적 의미보다 '웃긴 밈'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들이 차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또래들 사이에서 재미와 유행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교사 대부분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 표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달 2~6일 전국 초·중·고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7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9.3%가 최근 1년간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왜곡 표현을 접했다고 답했다. 직접 목격은 73.9%, 다른 교사를 통해 전해 들은 경우는 15.4%였다.

혐오 표현은 '쉬는 시간 등 학생 간 대화'(77.3%)에서 가장 많이 나타났고, '수업 중 발언'(52.6%)이 뒤를 이었다. 교사들의 88.4%는 배재고 사태를 일부 학생의 일탈이 아닌 온라인 혐오 문화가 학교로 유입된 결과로 인식했다.

학생 설문에서도 온라인 혐오 문화의 영향이 확인됐다. 전교조가 전국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 16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2.5%가 배재고 사태를 알고 있었고, 이 가운데 80.6%는 "다른 사람이나 지역, 역사적 아픔을 조롱하는 표현은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최근 1년간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접한 콘텐츠는 외모·성적·가정환경·지역 등을 조롱하는 표현(53.5%)이었다. 이어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죽음·사고를 조롱하는 콘텐츠(51.2%), 특정 지역 비하 표현(47.7%), 역사적 사건이나 희생자를 조롱하는 표현(46.8%) 순으로 조사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조합원들이 7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전교조

교육계 "존중·배려 문화 조성해야"

교육계는 이번 사안을 학교와 사회 전반의 문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희진 전교조 경남지부 정책실장은 "학생들만 문제라는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교직원들도 다 그렇다"며 "'선생님 페미예요'라고 묻거나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려는 질문을 하고,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수업 협력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폭력은 규정이 있지만 특정 피해자가 없는 혐오 표현은 적용할 기준이 부족하다"며 "인권과 평등, 민주주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기준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열 경남대 교육행정학과 명예석좌교수는 "학생들은 타인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갖고,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학교도 이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학교 밖에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교육은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지만 정치적 양극화와 혐오 문화가 학교 밖에서 계속 확산되면서 교육 효과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다"며 "민주시민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사회가 함께해야 한다. 상호 존중과 배려 문화가 확산돼야 혐오와 배제도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교육청 "인권·역사교육 강화"

배재고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조롱 응원 사태를 계기로 경남교육청도 학교 현장의 인권·역사교육을 강화한다.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 관계자는 "평화·인권·상생의 가치를 배우는 실천 중심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편견을 극복하고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갖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매년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 교육주간을 운영하고, 광복절·제헌절 계기교육과 독도·영토주권 교육, 동북아 역사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계기교육은 학교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특정 주제에 대해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교 맞춤형 역사교육 장학과 교원 연수, 교육자료 개발·보급도 확대할 계획이다.

도교육청은 "학생들이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바탕으로 올바른 역사 의식과 상호 존중의 가치를 실천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역사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인권교육도 강화한다. 경남교육청 교육활동보호담당관실 관계자는 "차별과 혐오 표현 예방 교육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학교별 계기교육을 실시하도록 협조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국가인권위원회 자료 등을 활용해 학교급별 교육자료를 마련한다. 이를 교과 수업과 창의적 체험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각급 학교에 안내할 계획이다.

도교육청은 "학생들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학교문화를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며 "혐오와 차별 표현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문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