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 새 비상을 꿈꾸다… 1기 신도시 30년 변천사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수도권 인구 집중과 서울 집값 폭등이라는 전례 없는 주거 위기에 직면했다.
저금리·저물가·원화약세라는 이른바 '3저 호황'을 맞아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국민들의 마이홈(자가 주택) 수요가 폭발했고, 베이비붐 세대의 결혼 적령기까지 겹치면서 서울의 주택 수요는 한계에 다다랐다.
이에 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대책인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발표, 서울 반경 20km 이내 미개발지 및 기존 시가지 인근 지역을 대규모 택지지구로 지정하면서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향후 '1기 신도시'라 불리는 5개의 거대한 도시권을 형성하는 신호탄을 올렸다.
한때 허허벌판과 논밭이었던 땅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교하게 기획된 현대적 계획도시로 완벽하게 탈바꿈했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일구어낸 아파트 숲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이제는 청년으로 자라나 그 도시의 주역이자 경기도민으로서의 뚜렷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다.
1991년 1기 신도시의 본격적인 입주 물결과 발맞춰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중부일보 또한 올해로 창간 35주년이자 지령 1만호를 맞이했다.
1기 신도시의 탄생부터 초기 입주 대란, 부실시공 논란의 아픔, 그리고 상가 분양의 활기찬 현장까지의 모든 호흡을 지면에 생생히 담아왔던 중부일보의 역사는 경기도민과 함께 걸어온 발자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에 중부일보는 창간 35주년과 지령 1만 호를 기념해 1기 신도시의 찬란한 역사적 여정을 되새기며, 향후 100년을 향한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의 나침반을 제안하고자 한다.
고양 일산신도시
서울 대안 주거지서 문화·상업 중심도시로 부상

1991년 중부일보가 경기도의 변화를 기록하기 시작하던 무렵, 고양 일산에서는 새로운 도시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서울 집값 폭등과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1기 신도시 정책 속에서 일산은 분당·평촌·산본·중동과 함께 수도권 주거지도의 판을 바꾼 계획도시로 태어났다.
당시 일산은 논과 밭, 마을이 이어지던 서울 서북부 외곽이었지만, 1990년대 초 택지 조성과 아파트 입주가 본격화되며 '서울의 대안 주거지'이자 '쾌적한 미래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대규모 주택 공급이 가능한 입지라는 점은 일산을 신도시 정책의 핵심 무대로 만들었다.
창간 전후의 아카이브 사진 속 일산은 아직 완성된 도시가 아니었다. 공사 차량과 흙길, 새 아파트 단지, 입주를 알리는 현수막이 뒤섞여 있었다.

반면 새 도시를 향한 기대감도 뜨거웠다. 상가 분양에는 투자자와 입주민의 관심이 몰렸고 호수공원과 넓은 도로, 정돈된 단지 배치는 일산을 1990년대 신도시 생활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일산은 고양특례시의 중심 생활권으로 성장했다. 킨텍스와 호수공원, 라페스타와 웨스턴돔은 도시의 이미지를 주거 중심에서 문화·상업도시로 넓혔다.
그러나 동시에 1기 신도시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노후화 문제도 뚜렷해졌다. 1990년대 초중반 입주한 아파트는 배관, 주차장, 승강기, 층간소음, 에너지 효율 문제를 드러내고 있고, 당시 기준에 맞춰 조성된 기반시설은 현재의 생활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의존형 베드타운 구조와 광역교통 혼잡, 자족기능 부족 역시 일산이 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일산신도시는 재건축을 넘어 도시 재구조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노후계획도시 정비와 선도지구 추진은 낡은 아파트를 새로 짓는 데 그치지 않고, 교통·일자리·공원·생활SOC를 함께 다시 설계하는 도시의 두 번째 출발이 필요한 시점으로 GTX와 대곡역 환승체계 개선, 자족기능 확충 논의 역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김태훈 기자
군포 산본신도시
허허벌판서 서남부 대표 계획도시 탈바꿈

서울 집값 급등과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에 따라 조성된 산본신도시는 분당·일산·평촌·중동과 함께 수도권 주거지도의 판을 바꾼 1기 신도시였다.
개발의 출발점은 1988년 당시 시흥군 군포읍 일대에서 수립된 '산본 택지개발계획'이었다. 이후 1989년 군포시 승격과 함께 사업이 본격화됐고 1990년 착공을 거쳐 1992년 말 준공되면서 논과 밭, 야산이 펼쳐졌던 산본은 수도권 서남부를 대표하는 계획도시로 탈바꿈했다.
산본신도시의 탄생에는 다른 1기 신도시와는 다른 이야기도 남아 있다.
지금은 군포의 중심 역할을 하는 산본역은 신도시가 완성된 뒤 생긴 역이 아니라, 오히려 장래 택지개발을 염두에 두고 먼저 계획된 역이었다. 안산선 건설 당시 주변은 대부분 농경지였지만, 향후 개발을 고려해 정차역으로 예정됐다.
이후 산본신도시 사업이 확대되면서 역사 건설이 추진됐지만, 1기 신도시 동시 개발에 따른 공사비 급등으로 당시 대한주택공사와 철도청이 건설비 분담을 놓고 갈등을 겪으면서 개통이 늦어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또 안산선을 지하화하지 않고 고가로 건설하면서 도시가 동·서로 나뉘는 구조가 형성됐고, 이는 지금까지도 산본 도시공간의 특징으로 남아 있다.
창간 전후의 중부일보가 기록한 산본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시였다. 공사 장비가 오가는 현장과 새 아파트 단지, 입주를 알리는 현수막이 공존했고, 생활편의시설과 상권, 교육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주민들의 불편도 적지 않았다.

30여 년이 흐른 현재 산본은 군포의 행정·상업·주거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산본역 중심상권과 로데오거리, 생활 인프라가 도시의 경쟁력이 됐지만 1990년대 초 입주한 아파트들은 노후화를 피하지 못했다.
주차난과 노후 배관, 승강기 교체, 층간소음 등 생활 불편이 누적됐고, 당시 기준으로 조성된 도시 기반시설도 변화한 생활수요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한때 '새 도시'였던 산본은 이제 1기 신도시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노후화라는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산본은 1기 신도시 가운데 가장 빠르게 도시 재정비를 추진하는 지역 중 하나다.
산본9-2구역과 11구역이 노후계획도시 선도지구로 선정돼 특별정비구역 지정 절차를 마치면서 재건축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주민들의 관심은 재건축 자체보다 '재입주'에 쏠려 있다. 올해 초 열린 경기도와 군포시 주민 간담회에서는 분담금 부담과 이주비, 고령층의 재정 부담, 자녀들의 교육 문제 등이 잇따라 제기됐다.
현재까지 산본이 걸어온 길이 '주택 공급'을 위한 도시로서의 성장 과정이였다면, 앞으로의 산본은 기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며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지가 새로운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다.
손용현 기자
안양 평촌신도시
격자형 도로망·대치동식 학군 갖춘 '안양의 강남'

평촌의 출발점은 1989년 수립된 '평촌 택지개발계획'으로 안양시의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 및 성장과 맞물려 초고속으로 개발이 추진됐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면서 과거 평평한 가평들(벌판)이라 불리던 농경지는 격자형 도로망을 갖춘 최첨단 계획도시로 완벽히 탈바꿈했다.
하지만 고속 개발의 그늘도 있었다. 5대 신도시가 동시에 착공되면서 전국의 건축 자재와 공사비가 폭등했고, 가구당 주차 공간 확보나 지하 시설물 매설 과정에서 공기 단축을 최우선으로 삼다 보니 장기적인 미래 수요를 예측하지 못하는 한계도 남겼다.
중부일보가 기록했던 평촌은 매일같이 타워크레인이 움직이고 이삿짐 트럭이 오가던 활력의 공간이었다.
초기에는 상권과 도로 체계가 미비해 입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으나, 편리한 격자형 교통망과 유해시설 없는 청정 학군이 자리를 잡으면서 평촌은 '안양의 강남'이자 동안구의 핵심 상업·주거 중심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도시 정중앙을 관통하는 수도권 전철 4호선과 직결되는 과천선 노선은 평촌의 대동맥 역할을 하도록 철저히 선제 계획됐다.

특히 평촌을 수도권 최고의 명품 주거지로 밀어 올린 일등 공신은 철저한 계획하에 밀집된 '교육 인프라'였다.
평촌역과 범계역 남측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규모 학원가는 경기 남부권의 교육 수요를 모조리 흡수하며 서울 강남에 버금가는 대치동식 학군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서른 살을 훌쩍 넘긴 2026년 현재, 한때 새 도시의 자부심이었던 평촌은 거대한 노후화 장벽에 부딪혔다.
당시의 생활 기준에 맞춰진 아파트 구조로는 다채로워진 2020년대의 주거 수요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판단 하에, 안양시는 발빠르게 도시 재정비의 닻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의 최종 승인을 받아 2035년 안양 노후계획도시 정비기본계획을 고시하고, 기준 용적률을 최대 330%까지 대폭 상향해 약 1만8천 가구를 추가 공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꿈마을·샘마을 등 선도지구 구역들이 전국 최초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조건부 통과하며 빠르게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재정비를 통해 향후 '포용적 미래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하재홍 기자
성남 분당신도시
뛰어난 강남 접근성 등 계획도시 성공모델 자리매김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처럼 분당신도시는 뛰어난 강남 접근성과 정주 환경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계획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분당신도시는 서울의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조성된 도시 중 하나다.
개발 전 이 일대는 4천706세대, 1만5천423명이 거주하며 오이와 참외를 재배하던 농촌 지역이었다. 하지만 1989년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도시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는 46만8천368명이 거주하는 성남시의 핵심 생활권이자 수도권을 대표하는 계획도시로 성장했다.
정부는 1989년 수도권 5대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며 분당신도시 개발을 본격화했고, 1991년 첫 입주를 시작으로 체계적인 도시계획과 우수한 교육환경, 풍부한 녹지공간을 바탕으로 국내 계획도시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분당신도시가 조성되기까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신도시 조성 초기 일부 주민들은 '분당시' 독립을 요구했지만 1991년 분당구가 설치되면서 성남시 행정구역으로 편입됐다.
또 도시의 성장 이면에는 교통난과 기반 시설 부족, 재건축 논란 등 다양한 도시 문제가 이어졌다. 입주 초기에는 대규모 기반 시설 확충과 교통망 구축이 빠르게 이뤄졌지만, 서울 출퇴근 인구가 급증하면서 만성적인 교통난이 발생했다. 이후 분당선과 신분당선이 차례로 개통되면서 서울과 강남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고 출퇴근 교통에도 숨통이 트였다.
2000년대 들어 판교신도시와 판교테크노밸리가 조성되면서 분당신도시는 주거 중심도시에서 첨단산업도시로 영역을 넓혀갔다.
현재 분당신도시는 단순한 재건축을 넘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재구조화 사업을 추진하며 미래도시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준공 30년을 넘기면서 노후 아파트가 증가하면서 이를 둘러싼 1기 신도시 특별법을 통한 정비사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판교테크노밸리와 정자동, 서현·야탑 상권을 연결하는 첨단산업 벨트는 성남 경제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고, 교통 분야에서는 GTX와 월곶~판교선 등 광역교통망 확충도 추진되고 있다. 더불어 스마트시티 기술과 친환경 도시계획을 기반으로 한 미래형 도시 재편이 추진되면서 분당의 도시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계획도시의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한 분당신도시가 향후 미래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이래 기자
부천 중동신도시
서울과 인천 사이에 대규모 주거·생활권 성장

중부일보가 첫 지면을 펼친 1991년 전후, 부천의 도시 지도도 새롭게 그려지고 있었다. 서울과 인천 사이 수도권 서부의 길목에는 대규모 계획도시가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부천 중동신도시다.
1992년 말 사업이 완료된 중동신도시는 545만2천㎡ 규모로 조성됐다. 수용인구 16만5천740명, 수용호수 4만1천435호의 대규모 주거·생활권이었다. 당시 중동은 아파트만 들어선 주거단지가 아니었다. 행정과 상업, 문화 기능을 함께 갖춘 부천의 새 중심지로 설계됐다.
부천시청과 시의회,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 공공기관이 들어섰고, 백화점과 대형 상업시설, 문화시설도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중부일보가 경기도의 변화를 기록하기 시작하던 시기, 중동은 도시의 골격을 세우며 부천의 새로운 생활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아파트 입주가 이어지고, 상가 분양과 생활 편의시설 조성도 뒤따랐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시민들은 중동에 터를 잡았다. 그 흐름 속에서 부천의 중심 생활권도 조금씩 이동했다. 구도심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부천의 일상은 중동을 거치며 행정과 상업, 문화가 어우러진 새 생활권으로 확장됐다.

도시가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중동은 새로운 전환점도 맞고 있다. 1990년대 기준에 맞춰 조성된 주거 환경은 오늘의 생활 방식에 맞게 새롭게 다듬어질 시기를 맞았다. 주차 공간과 단지 내 보행 동선, 생활 편의시설, 주거 성능 개선 등은 앞으로 중동의 주거 만족도를 높일 주요 요소로 꼽힌다. 재건축과 리모델링 논의 역시 기존 도시의 장점을 살리면서 더 편리한 생활권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천시는 중동신도시의 다음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를 닮는 새로움을 담는 중동'을 비전으로 2035 부천 노후계획도시 정비기본계획을 추진 중이다.
은하마을은 중동신도시 내 첫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됐고, 반달마을A는 LH를 예비사업시행자로 지정받아 특별정비계획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 선도지구는 향후 중동 전역의 정비 방향을 가늠할 첫 단추가 될 전망이다.
중동의 미래는 속도보다 방향에 달려 있다. 주택 공급과 교통, 녹지, 교육·문화 인프라, 공공공간을 어떻게 조화롭게 엮느냐가 핵심이다. 35년 전 부천의 새 중심지로 출발한 중동은 이제 다음 30년을 준비하는 도시로 다시 변화의 시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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