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훈의 월드컵 현장 관찰기 ㉛] 독일은 이제 전차 '군단'이 맞을까? 근성이 보이지 않는다
<베스트일레븐> 댈러스(미국)-양정훈 칼럼니스트

콜롬비아가 16강 대진표의 마지막 한 자리를 채우면서 이번 대회부터 새롭게 선보인 32강 라운드는 모두 종료됐다. 독일, 네덜란드가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꿇으며 예상보다 빨리 월드컵 현장을 떠나게 된 게 32강전의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2025년 6월 초, UCL 결승전 직후 믹스드 존에서 만난 덴젤 덤프리스가 일찌감치 '아메리카의 월드컵'에 임하는 각오를 비장하게 밝혔던 모습을 떠올리면 네덜란드의 조기 탈락에 연민의 감정이 조금은 더 보태지는 듯하다. 하지만, 월드컵 속의 네덜란드는 항상 뭔가 보여줄 듯하다가도 삐끗하는 행보를 반복해 왔기에 솔직히 그리 놀라운 충격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반면, 독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역사적인 그날, 전차군단은 이스타지우 미네이랑에서 홈팀 브라질을 맞아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게 진정한 존중이라며 골 폭격을 퍼붓지 않았던가. 7-1 대승으로 준결승을 돌파한 독일은 이어진 결승에서 27살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격파하고 팀 사상 4번째 월드컵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2006년 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막 피어오르는 새로운 얼굴 다수를 대표팀에 발탁한 독일은 4강에 오르며 준수한 성과를 남겼다. 당시 홈 팬들의 성원과 박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건, 당장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젊은 세대들의 활약이 더욱 밝아질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페어 메르테자커, 그리고 루카스 포돌스키 등 2006년의 신참들은 8년 뒤 브라질에서 독일 축구의 네 번째 별을 완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물론 루카스 포돌스키의 2014년 그라운드 위 기여는 제한적이었으나, 그는 그 세대가 함께해 온 지난 시간을 상징하는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한 디펜딩 챔피언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대한민국에 0-2로 발목을 잡히며 토너먼트 진출 실패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한 번의 미끄러짐인 줄 알았던 처참한 결과는 4년 후에도 재현됐다. 이번에는 일본에게 당한 패배를 극복하지 못하고 두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월드컵의 역사 속에 찬란하게 기록된 독일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거듭해서 칠해지고 말았다. 30대임에도 이미 명장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율리안 나겔스만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 북중미 월드컵에 나선 독일이지만, 지난 네 번의 우승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자국 팬들을 납득시키기 힘든 비참한 모습으로 여정의 종결을 맞이했다. 되돌아보면 에콰도르에 패한 조별리그 3차전은 전조였고, 32강 파라과이전은 우리가 기억하는 좋았던 시절의 독일이 더 이상 현재형이 아님을 확인시킨 본편이었다.

누군가는 승부차기의 냉혹한 속성에 의지해 이미 집으로 돌아간 독일 대표팀을 감싸려 할지 모른다. 파라과이를 저평가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전성기의 독일이라면 90분, 혹은 120분 내에 승리를 따내지 않았을까? 저조한 성적의 독일 팀을 두고 흔히 '녹슨 전차군단'이라고 낮춰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의 독일은 녹이 슬었는지, 안 슬었는지를 논하기 전에 전차인지, 또 군단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이처럼 전쟁의 용어로까지 비유됐던 그 강인했던 이미지는 왜 이렇게 희석되고 말았는가.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 이미 사퇴 의사를 표명한 율리안 나겔스만 전 감독의 전술적 아이디어와 능력이 부족한 탓일까? 그가 클럽팀에서 남긴 성과를 고려하면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2006년의 독일처럼 아직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선수들의 세대를 지나는 중인 것일까? 스쿼드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 역시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럼 성공의 추억에 지나치게 젖어 정체하고 있어서일까? 마지막 월드컵 우승이 무려 12년 전이고, 그간 조별리그 실패를 연속해서 경험했으니 이 또한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쉽게 답을 낼 사안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명확히 짚고 넘어갈 수 있다. 지금 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호텔에서 코튼볼(Cotton Bowl) 스타디움까지는 DART 전철로 12분 거리에 불과하다. 1994년 6월 27일, 그곳에선 지금의 기온과 다르지 않은 체감온도 40도 이상의 땡볕 아래 독일과 대한민국의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이 치러졌다. 전반전에만 3골을 기록하며 앞서가던 독일을, 후반전에 2골을 만회한 대한민국이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환경의 악조건 속에서도, 사투를 벌인 두 팀은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연출했다. 항상 우리의 시각에서 봐온 클래식 매치지만, 상대의 시각을 취했을 때 비로소 승리를 지키려는 독일의 필사적 노력이 깃든 진심이 감지된다. 그때의 정신력, 근성, 승부욕이 지금의 독일 팀에서는 많이 희석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녹은 나중에 닦아내더라도 전차라는 팀의 구조를 재건하고 그 안에 정신력, 근성, 승부욕을 불어넣는 일이 전통의 축구 명가 독일이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너무 뻔한 글의 마무리 같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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