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사이트서 에어컨 두 배에 팔려"...6월에 40도, 펄펄 끓는 유럽
셔터가 올라가자 우르르 뛰어 들어오는 사람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매장.
오픈런 해 구하려는 물건은 바로 에어컨과 선풍기.
[전은선 / 프랑스 파리 근교 거주]
"중고 사이트에서도 에어컨이 거의 두 배 정도 가격에 팔리는 상황이라. 코로나 때 휴지 동났던 것처럼 에어컨도 그런 상태에요. 그 정도 수준이에요. 구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사실상 이번 여름엔 못 구할 것 같습니다."
트램 선로가 녹아버리는가 하면,
[이주연 / 독일 데트몰트 거주]
"프랑크푸르트 가는 노선에서 중간에 열차가 없어져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 열차가 자꾸 사라지는..."
신호등이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리기도.
이번 주 들어 한풀 꺾였지만, 주말 기점으로 2차 폭염 예고.
유럽이 심상치 않다.
◆'침묵의 살인자'
역대 가장 뜨거운 6월을 보낸 유럽.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연일 40도를 돌파하면서,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김경은 / 프랑스 파리 출장자]
"체감 온도는 거의 한 45도 정도로 느껴지는 것 같았고. 물을 엄청 많이 마시면서 일을 했는데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간 거예요. 땀으로 (다) 배출될 정도로."
계란도 저절로 익는 폭염에 시민들은 운하와 분수대로 몰려들었고, 독일 베를린 도심엔 아예 경찰 물대포 차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주연 / 독일 데트몰트 거주]
"깻잎을 5월부터 키우고 있었는데. 저번 주 제일 더웠을 때. 그날에 다 죽었어요 그냥 너무 더워서."
대중교통편은 축소되고, 학교엔 휴교령이 내려지는 등 일상은 마비됐습니다.
[전은선 / 프랑스 파리 근교 거주]
"유럽에서 10년 살면서 이런 더위는 정말 처음이고. (아이를) 키즈카페를 데려갔거든요. 거기는 에어컨이 있으니까. 키즈카페에서 아예 노트북 가져와서 일하는 부모들도 되게 많고. 학교도 폭염이라 아예 휴교에 들어갔었거든요."
폭염은 생활 양식도 바꿔놓았습니다.
[콜린 브라운 /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대 공학 교수]
"정말 힘들어요. 너무 피곤하거든요. 그래서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해요. 아침 8시 15분이나 30분쯤에 장을 보러 나가죠.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네요."
[전은선 / 프랑스 파리 근교 거주]
"따뜻한 음식은 아기도 거부하더라고요. 그냥 과일 시원하게 해서 물리고 있어요. (프랑스인) 남편도 원래 따뜻한 음식만 먹는 사람인데, 냉면도 먹을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입맛까지 바꿔버렸습니다."
◆'오메가 열돔'
펄펄 끓는 유럽, 왜 이렇게까지 더워진 걸까요.
바로 거대한 '오메가 열돔'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클레어 바니즈/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극한 기상 연구원]
"대기 흐름이 그리스 대문자인 오메가(Ω) 모양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쉽게 말해 고기압이 위로 툭 불거져 나온 형태를 띠는 겁니다. 그 돔 구조 아래에는 뜨거운 공기가 갇혀 있고, 양옆으로는 찬 공기가 자리 잡게 되죠."
북부 아프리카에서 유입된 뜨거운 공기가 유럽 상공에 정체되면서 전례 없는 폭염이 찾아온 건데, 과학자들은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지구온난화가 열돔을 한층 강화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유럽은 북극을 제외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더워지고 있는 대륙입니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유럽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기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에어컨이 없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유럽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에 불과합니다.
[이주연 / 독일 데트몰트 거주]
"유일하게 에어컨이 있는 데가 마트, 동네에 있는 마트인데, 마트에 다들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살 게 없는데 저번 주에만 마트를 4번을 갔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간 한여름에도 비교적 폭염의 강도와 빈도가 낮았기 때문에 에어컨은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집을 지을 때도, 오히려 추위를 막는 게 우선 과제였습니다.
[안나 마브로기아니 / 영국 런던대학교 환경디자인공학연구소 교수]
"오늘날 새로 지어지는 주택이나 기존 주택 중 상당수는 여전히, 여름철 과열을 방지하기보다는 겨울철 보온과 겨울철 실내 쾌적성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파리는 도시 미관을 이유로 에어컨 설치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전은선 / 프랑스 파리 근교 거주]
"저희 건물도 한국식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주민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해요. 원래 그것도 얘기가 안 나왔었는데 올해는 너무 더워서 단톡방에서 그런 설치에 관해서도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에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체감상 전기요금이 비싼 점도 에어컨 설치를 미루게 만든 요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EU의 엄격한 탄소 중립 목표는 에어컨 보급의 큰 걸림돌 중 하나로 꼽힙니다.
◆'냉방권' vs '기후 위기'
EU는 204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9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유럽 사회 전반엔 기후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돼있습니다.
[킴 스터지스 / 영국 시민]
"창문을 더 많이 열어야 한다면 창문을 열고, 거리에 그늘을 만들어 줄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면 심으면 되죠. 변해야 할 건 날씨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걸 깨달아야 해요."
프랑스 환경부 장관은 단기 대책에 그치는 에어컨 설치가 정답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모니크 바르뷔 / 프랑스 환경부 장관]
"솔직히 경악스럽습니다. 아무 데나 에어컨을 설치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국 런던 시내 캠든 자치구는 '냉방 우선순위' 제도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주택들에 설치된 에어컨에 대해 무더기 철거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냉방권'이 곧 '생명권'이란 인식이 점차 퍼지고 있습니다.
WHO는 지난달 말, 약 일주일간 고온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가 유럽에서 1천3백 명을 넘어섰으며, 이 가운데 프랑스에서만 천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주하이에르 에르텔리 / 프랑스 장의사]
"주말 동안 150건이 넘는 전화를 받았고, (여력이 안 돼) 150구가 넘는 시신을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결국 폭염 대응은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 극우 정당 의원은 대규모 에어컨 설치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는가 하면, 녹색당조차 "학교와 병원에선 에어컨 사용이 불가피하다"며 백기를 들기도 했습니다.
'당장의 생존'과 '미래를 위한 대비'를 두고 점차 뜨거워지는 공방, 과연 유럽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결국 박지성이 나선다…‘K-축구 혁신’ 이영표·박주호도 합류
- 홍명보 귀국 날짜? "몰라"…국회선 "도피 아니라 믿는다"
- [비하인드 뉴스] 배재고 논란에 ‘대통령 탓’…김민전의 ‘철없는 응원’
- [단독] "날 강간범 몰아?"…‘성폭행 자백’ 녹취 들키자 ‘폭행·협박’
- [단독] 물맛 왜 이래…예비군에 소비기한 40일 지난 생수 지급
- 결국 박지성이 나선다…‘K-축구 혁신’ 이영표·박주호도 합류
- "교주의 집사가 된 교도관"…법무장관 "긴급점검하라"
- 김건희 측 ‘청탁받고’ 답변 조율했나…책임자 이창수 소환
- "할 이야기는 있다" 홍명보, LA공항 VIP 통로로 빠져나가
- ‘살라 파넨카킥’ 이집트, 호주와 승부차기 끝에 16강 진출...아시아 전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