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호남에 원전 신설 첫 거론… 김성환 “영광에 2기 지을 땅 있어”

전준범 기자 2026. 7. 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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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 위해 건설 속도전
“부지 확보 땐 7년이면 완공 가능"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뉴스1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3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반도체는 24시간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양만으로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며 “원전을 추가로 지어야 할지 여부를 빨리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특히 “새로운 부지를 만들지 않더라도 전남 영광 한빛원전에 2기, 울산 울주 새울원전에 2기 등 총 4기를 더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며 “의사결정을 마냥 미룰 수 없다”고 했다. 부지 선정부터 시작하면 원전 완공까지 13~15년이 걸리지만, 부지가 확보된 상태에서는 7년이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현 정부 고위 인사가 ‘호남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을 공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포함한 ‘메가 프로젝트’ 발표 이후 청와대와 정부에서 원전 확대 메시지가 동시다발로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3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SMR(소형모듈원자로) 분야도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날 “SMR 국가전략기술 선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배경에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있다는 분석이다.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전 없이는 대규모 반도체 팹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데, 지금 착공해도 현 정부 임기 내 가동이 어렵다. 결국 ‘호남 반도체 속도전’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 추가 원전 여부인 셈이다. 다만 호남 지역사회가 신규 원전을 수용할지는 미지수여서 청와대와 정부가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원전 없인 호남 반도체 어렵다“… 속도내는 脫탈원전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핵심 가치로 내걸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 메가 프로젝트 발표를 계기로 빠르게 방향을 틀고 있다. 올해 초 탈(脫)탈원전으로 선회한 데 이어 호남 입지의 추가 원전 건설론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재생에너지 이외의 발전원에 대해 언급 자체를 꺼리던 정권 핵심 인사들이 앞다퉈 원전의 필요성을 공개 거론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발전소를 짓고, 송전망을 연결하고, 용수를 확보하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일은 결국 모두 합의의 문제”라며 “지금은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원전이나 SMR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수인 반도체 팹·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서는 원전 확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도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원전 관련 내용이 12차 전기본(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며 “원전을 건설하는 데 보통 9~10년이 걸리는데 이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전기본은 15년 단위의 최상위 국가 전력 수급 법정계획이다.

그래픽=김성규·Gemini

◇원전 확대론에 대통령·청와대도 가세

정부 기류 변화의 바탕에는 반도체·AI 산업의 전력 특성이 있다. 반도체 팹은 미세공정이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순간 정전이나 전압 변동만으로도 치명적인 생산 차질이 발생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서버와 냉각설비가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대표적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메가 프로젝트 규모가 커질수록 전력망 보강과 함께 원전·LNG(액화천연가스) 발전 같은 안정적인 기저 전원 확보가 핵심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호남 반도체 투자를 발표한 기업의 요구도 같은 방향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원전 확대 및 PPA(재생에너지 직접 구매 계약)를 적극 추진해주시고, LNG와 열병합 발전도 반드시 추진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고 ESS(에너지저장장치)도 만능열쇠가 아니다”라며 “2040년 석탄발전 퇴출 로드맵 등을 고려하면 원전뿐 아니라 LNG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성민 카이스트 교수는 “메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삼성전자의 ‘원전 확대’ 요구가 정부로 하여금 실제 산업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키웠을 것이고, 그것이 이번 기조 변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12차 전기본에 대대적 반영 시사

이 같은 흐름은 향후 15년(2026 ~2040년)의 국가 전력 수요와 발전 설비 구성을 정하는 12차 전기본에 반영될 전망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메가 프로젝트 내용을 12차 전기본 수요 전망에 다시 반영 중”이라고 말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메가 프로젝트를 국가 전략으로 내건 이상 전력 수요를 보수적으로 잡기는 어려워졌다”며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전력 수요가 생겼기 때문에 12차 전기본에서 원전과 LNG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12차 전기본 수립 총괄 위원회 산하 설비계획소위원회는 수요 전망이 끝나는대로 어떤 발전 설비를 얼마나 추가할지 구체적 논의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설비소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지금까지는 환경·시민단체 소속 위원들이 원전 추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분위기를 지배했는데, 이번 메가 프로젝트 발표를 계기로 설비 구성 논의 방향이 확 바뀔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9월 정기국회를 전후해 12차 전기본 초안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정기국회는 매년 9월 첫 평일부터 100일 동안 열린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3일 라디오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GDP(국내총생산)가 늘어나면 전기 수요도 따라서 늘어나는 거 아니야?’ 이런 정도였는데, 지금 반도체 공장 추가 건설과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건 일종의 현찰”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현찰에 맞게 전력 공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전력을 얼마만큼 늘려야 할지 12차 전기본을 정기국회 전후로는 확정해야 한다.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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