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반도체 공화국의 재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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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나라 전체 경제지표들
반도체 가격 급등에 기댄 상황
국채 발행 축소, ‘3고’ 완화하고
거시경제 위험 관리해 나가야
」

다만 반도체 업황은 나라 살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 호황으로 2022년에 처음 100조원을 넘어선 법인세는 2년 뒤 62.5조원으로 급감했으나, 다시 2년 뒤인 올해 이의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나랏돈 쓰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에게 ‘국채 발행 없는 추가예산’이라는 명분을 제공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경기변동에 대응한 재정정책의 기본은 호황일 때 지출을 자제하여 어려울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붐-버스트 사이클과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친경기적(pro-cyclical)’ 재정 운용을 삼가라는 것이다. 1%대 후반 잠재성장률을 넉넉히 넘어서는 성장률, 2% 목표를 크게 상회하는 인플레이션, 200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이 확실시되는 두 자릿수 명목성장률 등 어느 거시경제 지표를 보아도 추가 재정지출이 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반면 이와 같은 지표 급등이 특정 수출품의 가격 급등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관리는 필요해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지난해 3분기까지 2~5달러에 머물다가 시장 선점을 위한 글로벌 빅테크들의 투자 확충 과정에서 15~30달러로 폭등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우리 경제에 수백조원에 이르는 돈벼락이 쏟아진 것이다. 인공지능(AI)이 대세고 따라서 반도체 수요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많긴 하지만, 급등한 가격 상승이 한없이 이어질 것으로 확신할 수는 없다. 빅테크 입장에서는 갑자기 수백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된 AI 인프라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으며, 생산업체 입장에서는 투자 확대를 통해 공급을 늘릴 재원과 유인이 충분하다. 예상하지 못한 금융시장 충격이나 지정학적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지는 알기 어려우나, 수급 조절을 통해 가격이 조정되는 과정을 ‘수퍼사이클’이라는 명칭이 함축한다.
우리와 유사한 대만을 제외하면, 특정 제품의 수출 가격 부침에 국가 경제가 이 정도로 의존하는 경우는 자원 부국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주목받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계획은 유가 등락에 재정이 버티지 못하면서 5~6년 만에 거의 백지화되고 있다.
극단적 사례는 2010년대 몽골이다. 몽골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2009년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2010~2012년에는 광산 개발 투자자금 유입과 구리 가격 급등으로 성장률이 17%까지 치솟으면서 급증한 세수를 임금·연금 인상과 현금 지급 프로그램 등에 쏟아부었다. 그러다 구리 가격이 하락하자 재정적자가 불어나기 시작하여 2016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15%를 넘어섰고, 그 결과 GDP의 40%를 오르내리던 정부부채가 불과 5년 뒤인 2017년에 87%까지 치솟았다. 결국 몽골은 다시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물론 경제 규모와 발전 정도, 그리고 산업구조가 전혀 다른 몽골의 경험을 우리 경제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천연자원인 구리와 첨단산업인 반도체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수도 없고 대외부채 상황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받는 수출 가격 급등락의 위험성을 가늠해 볼 필요는 있다. 몽골의 구리 수출은 GDP의 30%가량이었는데 올해 우리 반도체 수출도 GDP의 20~30%에 이를 전망이다. 당시 구리 가격은 2년간 2배로 급등한 후 5년에 걸쳐 원래 수준으로 회귀한 반면, 반도체 가격은 불과 반년 만에 5배 이상 급등했으니 가격 조정이 진행된다면 구리 가격의 등락 폭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IMF와 세계은행은 이미 2012년에 친경기적 재정정책의 위험을 경고했으나 몽골 정부는 귀를 닫았다. 재정준칙이 있었으나 유명무실했고, 재정안정화법도 의회가 반복적으로 위반하였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는 반도체 수퍼사이클 하에서도 기본에 충실한 재정정책을 집행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그 전통적 방식은 100조원 이상으로 계획되었던 대규모 재정적자의 폭과 국채 발행 규모를 축소하는 데 ‘초과세수’를 투입함으로써 물가·금리·환율의 상승 압력, 이른바 ‘3고’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 방향이 미래세대의 위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현세대 안에서도 반도체 축복의 혜택을 더 많은 국민과 나누는 길이다.
조동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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