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의 엄마에서 '고혹'의 정점이 된 60초로의 다이안 레인

아르떼 2026. 7. 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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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그녀의 집 비밀번호는
6X4X일까, 6X3X일까. 설마.
다이안 레인

‘여배우 열전’은 일종의 기록이다. 인기에 지나치게 영합하지 않고 (요즘 대세라는 고윤정과 김혜윤에 대해 쓰지 않고 있다) 나이가 젊거나 어린 여배우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이제는 더 이상 S라인이 아니어도 된다. 심지어 조·단역으로 내려갔다 하더라도 아르떼의 여배우 열전은 ‘그녀’를 찾아 기록해야 한다. 아이고 참 나. 다이안 레인을 쓰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는 셈이다. 다이안 레인은 1965년생이고 우리 나이로 환갑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고혹(蠱惑)이란 단어에서 ‘홀릴 고’자는 벌레 세 마리가 한 접시에 몰릴 만큼, 그래서 죽을 만큼 치명적이라는 뜻이다. 다이안 레인은 환갑 나이에 이른 지금의 사진을 보고 있어도 그 매력이 치명적이다. 여자가 예쁘게 늙는다는 건, 과거의 젊음을 유지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보다 우아해져야 한다. 눈가의 주름과 흰머리에 현명함과 통찰력이 녹아 있어야 한다. 섹시한 늙은 여자는 섹스 심볼로 가득한 그 어떤 젊은 여배우 보다도 항상 눈길이 먼저 간다. 지금의 다이안 레인이 딱 그렇다. 키도 170cm이다. 여전히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다이안 레인은 마침 제2의 전성기를 누리려 애쓰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존 시리즈와 완전히 달라진 ‘엑소시스트’ 신작이다. 원래는 올해 3월 말 예정이었던 개봉 일정이 상당히 미뤄지고 있다. 감독인 마이크 플래너건은 그 옛날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만든 <캐리>를 리메이크 중이었는데 그 작업이 늦어지면서 개봉 계획도 순차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플래너건은 제임스 완과 함께 할리우드의 신(新) 공포영화 시대를 열고 있는 양대 축이다. 플래너건의 넷플릭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2018)은 수작이었다. 얼마 전에는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척의 일생>(2025)을 찍어 내는 등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다이안 레인이 마이크 플래너건 영화에 나온다는 건, 대형 상업영화로 복귀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1973년에 만든 원조 <엑소시스트>에는 두 신부가 나오지만(막스 폰 쉬도브, 제이슨 밀러) 이번 플래너건 판에는 아마도 두 수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게 다이안 레인과 스칼렛 요한슨이다. 할리우드 소식지인 ‘데드라인’ 그리고 영화 정보 사이트인 IMDb는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았다고 쓰고 있다. 다이안 레인은 조연급 주연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극장 개봉이 되지 않았고 OTT 플랫폼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훌루’에서 공개돼 상위에 랭크됐다) <애니버서리>(2025)는 다이안 레인이 주인공이었고 비평적으로도 평가가 좋았던 작품이다. 조지타운 대학의 교수 엘렌 역할이다. 엘렌과 남편 폴(카일 챈들러)의 결혼 25주년 가족 파티에 아들 조쉬(딜런 오브라이언)과 그의 여친 리즈(피비 디네버)가 찾아온다. 리즈는 극단적 파시스트 사상을 가진 여자이고, 이 여자의 사상이 미국 전역에 퍼지면서(더 체인지 운동) 엘렌의 가정과 학교, 사회가 붕괴해 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미국은 일당 독재의 나라가 된다. 딱 지금의 트럼프 시대를 겨냥하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이 되지 않겠지만(국내 극장가는 가능하면 정치 스릴러를 피하려 한다.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다이안 레인의 확실한 복귀작, 배우로서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보고 싶다. 훌루에 가입해야 한다. 자막은 없다. 짜증 난다.

2017년에 나왔던 다이안 레인의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귀여운 작품이었다. 유명 감독이자 제작자인 남편 마이클(알렉 볼드윈)을 따라 칸영화제에 온 앤(다이안 레인)은 남편의 다음 행선지인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길을 앞두고, “여보 잠깐만” 한다. 어려운 일정이 아니다. 마이클에게는 전용 비행기가 있다. 편하게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앤은 비행 이명증에 시달린다. 더 이상 공중으로 다니는 것에 진력이 났다. 그래서 “여보 난 차 타고 파리 갈래.” 한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오지랖 넓은 프랑스 영화 프로듀서 자크(아르노 비야르)이다. 자크가 손을 번쩍 든다. “헤이, 마이클. 내가 차로 모실게.” 그래서 이 두 중늙은이 남녀는 칸에서 파리까지 동행 드라이브에 나선다. 직선거리로 7시간 거리를 자크는 프랑스에 왔으니 이건 꼭 보고 가야 한다며 여기저기 그녀를 끌고 다닌다. 이틀이 걸린다.

자크는 앤을 데리고 엑상프로방스에 가서 전통시장의 맛을 느끼게 하고, 비엔을 가는 길에서는 로마인들이 만들었다는 가르교도 보여주며 리옹을 가서는 직물박물관과 뤼미에르 박물관을 끌고 다닌다. 힘들고 곤란해 죽겠다는 표정의 앤은 막상 그곳에 가면 소녀처럼 좋아한다. 자크는 또 생트 빅투아르 산이 ‘폴 세잔의 산’이니 만큼 꼭 내려서 봐야 한다며 근처 야외 풀밭에서 피크닉을 준비해설랑은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연출한다. 자크는 좀 주책스럽지만 자상한 남자이긴 하다. 남편 마이클은 돈이 많고 유명하지만 (코폴라 감독을 말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코폴라의 아내 엘레노어 코폴라가 연출했다) 시간이 없다. 앤은 프랑스 남자 자크의 하룻밤 유혹을 잘 견뎌낸다. ‘썸타기’에서 잘 마무리 짓는다. 자크는 다음엔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자고 한다. 앤은 파리에 있는 남편의 여사친 마르틴의 아파트 비번을 누른다. 마르틴은 5로 시작하는 번호를 알려준다. 자신의 50대 나이, 사귀고 있는 30대 연하남의 나이를 조합한 것이다. 앤은 묘하고 음흉하며 귀여운 웃음을 흘린다. 이때 다이안 레인은 귀여운 50대 후반의 여성 이미지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다이안 레인은 10대 때 이미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렸지만 정작 여성으로서 활짝 만개한 느낌을 준 작품은 2002년 작 <언페이스풀> 때였다. 당시 30대 후반 나이였는데 영화에서는 10년간 아무 탈 없이 남편 에드워드(리처드 기어)와 살아오며 8살 아이를 키우는 주부 코니로 나온다. 그러던 어느 날 맨해튼에 나갔다가 20대 프랑스 남자 폴 마르텔(올리비에 마르티네즈)을 만나 그야말로 격렬한 섹스 행각을 벌인다. 마르텔의 집에서, 카페 화장실에서, 만나기만 하면 둘의 육체는 불이 붙는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탐미적이고 탐욕적인 감독 에이드리언 라인답게(그의 <나인 하프 위크>를 생각해 보라) 폴 마르텔이 그녀의 아래쪽을 애무할 때 거침없이 흔들리는 (균형 잡힌) 뱃살을 부감 샷, 클로즈업으로 잡은 것이다. 다이안 레인의 ‘떨리는 배’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하염없는 자극을 줬다. 이 영화 이후 남자들은 자기 여자에게 배가 떨리는 쾌감을 주는 게 로망이 됐다.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까, 했을 때 지금은 작품 활동을 쉬고 있는 유하 감독이 바보 같은 소리들 하고 있네, 하는 표정으로 단번에 정리했다. “아이고 참, 여배우 등 밑에 진동기를 깐 거여. 연기는 뮈신!”

<언페이스풀>로 ‘일탈의 주부’상, 외도하는 여자를 대표했던 다이안 레인은 <투스카니의 태양>으로 그 일탈이 사실은 매우 정상적인 것, 나쁜 것이 아니라는 식의 참한 로맨스 영화를 찍으며 자신의 청초한 이미지를 복원했다. <투스카니의 태양>은 지금까지도 종종 꺼내 들춰지는 스테디셀러 급 영화가 됐지만 2003년 세계 개봉 당시 ‘망했던’ 작품이다. 이후 다이안 레인이 얼굴을 종종 드러냈던 영화는 죄다 엄마 역이었다. <맨 오브 스틸>(2013)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저스티스 리그>(2017)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 등에서다. 모두 슈퍼맨의 인간 엄마 역이다. 얼굴엔 주름이 잔뜩 있는 그대로, 시골 아낙네의 풀어진 머리 그대로 나왔다. 슈퍼맨에 대한 모성은 그야말로 ‘그렁그렁’했다. 특히 슈퍼맨이 죽고 그의 여자 로이스 레인(에이미 아담스)과 만나자마자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은, 진짜 엄마 같은 느낌이었다. 아 나의 다이안 레인이 엄마가 됐다. 근데 그게 꼭 싫지는 않았다. 같이 늙고 있는 여배우라는, 역설의 안도감을 줬다.


올해 초 골든 글로브 시상식 레드 카펫에 등장한 다이안 레인은 패셔니스타로서의 면모가 여전히 짱짱함을 보여줬다. 그녀는 향후 10년간 작품들을 쏟아 낼 것이다. 어쩌면 <언페이스풀> 유의 성애물도 있을 수 있다. 그녀의 집 비밀번호는 6X4X일 것이다. 설마 6X3X까지는 아닐 것이다. 근데 뭐 그러면 또 어떤가. 세월의 흔적을 지키는 약은 사랑인 것이다. 연애인 것이다. 다 그런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