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씩 쏠 때마다 ‘골’” 자책골 넣었다고 피살…전 세계 충격에 빠뜨린 ‘월드컵 최악 비극’ [오늘의 그날]
귀국 닷새 만에 총격 피살
월드컵 최악의 비극으로 남아

“괴한이 한 발씩 쏠 때마다 ‘골!’이라고 외쳤다.”
32년 전인 1994년 7월 2일.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국가대표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고향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단 한 번의 실수에 무너진 우승 후보=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둔 남미 지역예선에서 콜롬비아는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콜롬비아는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홈에서 2대 1, 원정에서는 5대 0으로 완승하며 지역예선을 무패로 통과했다.
카를로스 발데라마,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이끄는 콜롬비아를 두고 ‘축구 황제’ 펠레조차 대회 개막 전 “콜롬비아가 우승후보다. 브라질은 월드컵을 갈 자격도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본선 1차전에서 콜롬비아는 루마니아에 1대 3으로 완패했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개최국 미국과의 2차전에 나서게 됐다.
0대 0으로 팽팽하던 전반 34분, 미국 선수 하크스가 올린 크로스를 걷어내려던 에스코바르의 발에 볼이 맞고 방향이 꺾이면서 그대로 콜롬비아 골문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 자책골로 무너진 콜롬비아는 1대 2로 패했고,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탈락 닷새 뒤, 고향 술집서 벌어진 참극=예선 탈락 소식에 콜롬비아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고, 분노는 자책골을 넣은 에스코바르에게로 쏠리고 말았다. 콜롬비아 마약조직 메데인카르텔은 “선수들이 귀국하는 대로 살해하겠다”며 대표팀을 위협했고,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감독은 두려움에 에콰도르로 몸을 피했다.
선수단 전체가 귀국을 주저하는 가운데서도 에스코바르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고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탈락 닷새 뒤인 1994년 7월 2일 새벽, 고향 메데인의 술집을 찾은 에스코바르는 괴한이 쏜 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당시 그와 함께 있던 여자친구는 “괴한이 에스코바르에게 자책골에 대해 시비를 걸었고, 총을 발사하면서 한 발씩 쏠 때마다 ‘골’이라고 외쳤다”고 증언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에스코바르는 이송 45분 만에 2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자살골→자책골로…북중미선 32강 진출=범인은 마약 카르텔 두목 산티아고 갈론의 운전사이자 경호원이었던 움베르토 카스트로 무뇨스로 지목됐다.
그의 고용주인 갈론이 경기 결과에 거액을 걸었다가 잃어 분노했다는 정황이 배후설로 제기됐지만, 콜롬비아 검찰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갈론 대신 카스트로만 기소했다고 알려져 있다. 카스트로는 1995년 징역 43년을 선고받았으나 10년 만인 2005년 모범수로 석방돼 논란을 남겼다.
당시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슬픈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기록에 따르면 에스코바르의 장례식에는 12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모였고, 사건 직후 열린 독일-벨기에전과 스페인-스위스전에서는 경기 전 묵념이 이뤄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살골’이라 불리던 용어가 ‘자책골’로 자리 잡게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에스코바르가 떠난 뒤 콜롬비아 축구는 오랫동안 침체를 겪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한 이후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하다가 16년 만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재도약했다.
32년이 지난 지금 열리고 있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콜롬비아는 K조에 편성돼 우즈베키스탄을 3대 1로, 콩고민주공화국을 1대 0으로 제압하고 포르투갈과는 0대 0으로 비기며 32강 진출에 성공했다.
강지원 AX콘텐츠랩 기자 g1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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