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들 단순한 실수 아냐…배재고 사태는 사회적 문제
스벅 파문 겪고도 무감각…교육부 장관 “5·18 폄하하고 지역 비하한 것”
교육계 “우리사회가 뭘 가르쳤는지 비추는 거울…어른들부터 반성을”
배재고 6개월 출전 정지…올바른 역사 교육·헌법 전문 수록 속도내야

“철없는 어린 학생들의 ‘밈(meme)’ 놀이일 뿐”이라는 기성 세대의 안일한 인식으로는 학생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역사왜곡과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교육계와 체육계,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사회적 책임과 민주주의 감수성을 갖출 수 있도록 엄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배재고 야구부에 대해 6개월 대회 출전 징계를 내렸지만 징계 외에도 사회적 책임감과 민주주의 감수성을 키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1일 SNS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이번 사태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지역을 비하한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최 장관은 “사랑과 연대, 존중과 배려를 배워야 할 학생들이 혐오와 조롱과 차별의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은 지도자를 비롯해 어른들의 잘못도 크다”며 “학생 선수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량이 아니라 품격”이라고 강조했다.
교원단체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성명을 통해 “사적 공간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머물던 극우 성향의 조롱과 혐오 표현이 청소년들의 공적 공간과 스포츠 현장에까지 침투한 상징적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실천교육교사모임도 성명을 내고 “학생들의 집단적 혐오 표현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가르쳐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이라며 “타인의 고통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공감해야 할 청소년들이 왜 역사적 비극을 ‘재미’로 소비하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스타벅스 코리아와 신세계 그룹이 ‘스타벅스 탱크데이 파문’으로 역사 왜곡 비판을 받았음에도, ‘재미있는 콘텐츠’처럼 소비하는 행태에 대한 반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전남광주지역 시민단체 109개 단체도 이날 공동 성명서를 내고 “학교는 이번 사안을 학생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지 말고 학교 문화와 야구부 지도 체계 전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이 사태에 진정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어른이고 우리 사회를 혐오와 경쟁으로 내몬 잘못된 정치”라며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에게 과도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집단혐오가 가해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성세대의 그릇된 역사 인식이 한몫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없는 학생들의 장난, 실수”라거나 “사과로 끝낼 일”이라는 식으로 축소하거나 가볍게 넘기려는 어른들의 행태가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국제 체육계가 차별·혐오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선수 자격을 박탈당할 만큼 중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점을 들어 단순 ‘해프닝’성으로 넘기지 말고 역사교육과 시민교육, 스포츠맨십 교육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인 위주로 구성된 샌디에이고 코로나도 고등학교 농구팀은 지난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 고교 농구 대회 결승전에서 라틴계 주축 고등학교 농구팀을 상대로 승리한 뒤 상대팀을 향해 멕시코 빵 ‘토르티야’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했다가 우승을 박탈당했다.
같은 해 유로2020에 출전한 영국 포츠머스 유소년 선수 3명은 잉글랜드 대표팀 흑인 선수들을 조롱하는 인종차별적 메신저 대화를 나눴다가 팀에서 방출당하는 중징계를 당했다. 올해 열린 ‘북중미 월드컵’ 한국-체코전 직후에도 멕시코 관람객이 한국인 유튜버를 상대로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눈 찢기’ 행각을 했다가 경기장 입장을 금지당했다.
안준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미성숙한 10대들이 온라인을 넘어 현실에서도 혐오 표현을 놀이처럼 소비하는 데 따른 올바른 역사 교육과 민주주의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수록하고 역사 왜곡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제도적 보완도 요구되고 있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학생 선수들이 지역 비하와 5·18 폄훼를 바탕으로 상대 팀을 비하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결국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결과”며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학교와 사회 전반의 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긴급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스포츠 정신에 반하고 경기장 질서를 문란하게 한 사안으로 판단, 배재고에 전국 대회 출전 정지 6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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