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시민권도, 관세도…‘취임 첫날' 약속 어디로, 트럼프 2기의 현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 행정부가 출범 1년 반 만에 ‘선거용 구호’와 ‘국정 운영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고 있다. 대선 기간 “취임 첫날” “24시간 안에” “역사상 최대”를 앞세워 밀어붙이겠다고 했던 핵심 공약들이 법원과 의회, 동맹, 국제정치라는 현실의 벽에 막혀 잇따라 수정·후퇴하거나 표류하고 있다. 30일 트럼프 2기 이민 정책의 상징이었던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제동을 건 연방대법원 판결은 그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잇단 제동…‘취임 첫날’ 공약의 현실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려던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이 수정헌법 14조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기간부터 “취임 첫날 가장 먼저 하겠다”고 공언했던 상징적 공약이 사법부에서 최종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이민정책 하나가 무산된 사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출범 1년 반을 맞은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돌아보면, 대선 당시 내세웠던 굵직한 정책과 외교 구상이 잇달아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관세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가 사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관세(Tariff)”라고 말할 정도로 관세를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올해 초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방위 관세를 밀어붙였던 조치는 대법원에서 위법 판단을 받으며 제동이 걸렸다. 이후 행정부는 무역법 301조 등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해 관세를 유지하려 하고 있지만, 처음 내세웠던 강력한 구상은 이미 상당 부분 수정됐다. 미국 언론에서도 ‘대체 법적 권한(alternative authorities)’을 찾는 작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최근 공개 발언에서 지난해처럼 ‘관세’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국 정책도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상대로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실제로는 협상과 유예가 반복됐다. 동맹국에는 관세 압박을 이어가면서도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단계적 협상을 이어가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대선 당시의 강경한 메시지와 실제 정책 집행 사이의 간극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외교 분야 역시 기대했던 성과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전쟁은 여전히 장기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휴전 조건에서 큰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고 미국의 중재도 사실상 답보 상태다.
가자지구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종식 이후의 질서까지 직접 설계하겠다며 국제기구 성격의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를 출범시켰다. 미국과 우방국들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재건 자금을 약속했고, 가자지구를 통치할 팔레스타인 과도행정기구(NCAG) 구성까지 발표하며 대대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다 평화위원회나 과도행정기구 모두 사실상 활동이 멈춘 상태다.
최근 가장 큰 외교 성과로 내세웠던 이란 문제 역시 아직 성공을 단정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작전 이후 핵 협상과 중동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했지만, 핵 사찰 방식과 제재 해제, 호르무즈 해협 운영 등을 둘러싼 협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군사적 충돌은 일단 잦아들었지만 외교적으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국내 정책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앞세워 연방정부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던 정부효율화(DOGE) 작업 역시 대규모 소송과 인력 복귀가 이어지며 출범 당시의 개혁 동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 단속은 이전 바이든 행정부보다 훨씬 강력해졌고, 연방대법원은 여러 이민 정책과 대통령 권한 확대 문제에서 행정부 손을 들어준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날 출생시민권 판결은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만으로는 헌법과 법률, 사법부, 국제 질서라는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정 아젠다 실종…워싱턴 미관 사업에 쏠린 시선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메시지도 취임 초반 관세와 중국,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등 굵직한 현안을 전면에 내세우던 것과 비교하면 워싱턴 지역 이슈와 시설 관리 등 상대적으로 미시적인 사안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연이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워싱턴DC 시내 미관 정비 사업을 장문의 글로 소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링컨기념관 앞 ‘리플렉팅풀(반사연못)’의 바닥 보수와 배수 공정, 이끼 제거, 훼손된 잔디 교체 계획을 직접 설명했고, 훼손된 기념물에 대해 최고 징역 10년의 처벌을 경고하기도 했다. 또 내셔널몰에서 열린 ‘위대한 미국 주 박람회’의 흥행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오바마나 바이든이라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라고 주장했다.
백악관 인근 광장의 보도블록 교체 상황을 일일이 거론한 데 이어 워싱턴 시내 공공 골프장의 고장 난 스프링클러, 죽은 잔디, 위험한 나뭇가지 등 노후 시설도 직접 점검했다. 대선에서 제시했던 대형 국정 의제들이 현실 제약 속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11월 중간 선거를 넉달 앞두고 트럼프의 메시지 역시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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