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스타벅스 구호’ 논란…놀이가 된 혐오, 교실을 덮치다

최서은·임주영 기자 2026. 6. 3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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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성향 표현과 ‘일베식 밈’
일상에서 문제의식 없이 사용
“우발적 일탈로 치부해선 안 돼
사회적 감수성·책임 가르쳐야”

서울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경기 중 상대팀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구호를 외치면서 불거진 ‘지역 혐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제일고 야구부 학생들은 시민을 짓밟는 군사정권의 만행을 현장에서 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배들이 겪은 비극이 46년 뒤 어린 후배들을 향한 ‘조롱의 언어’로 운동장에서 재현된 것이다.

논란은 지난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내뱉은 구호에서 시작됐다. 배재고 선수들은 경기 후반인 8회초 5·18민주화운동 폄하 논란이 일었던 스타벅스 이벤트 관련 표현을 반복해 외쳤다.

이번 사태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비되던 5·18민주화운동 왜곡과 지역 혐오 표현이 일상으로 확산한 현실을 보여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30일 “극우 세력이 청소년이나 일부 계층의 호응을 얻으며 혐오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혐오 표현 사용이 이미 놀이처럼 일상화돼 있다고 입을 모은다. 비수도권 고등학교 교사 박모씨는 “학생들이 ‘~노’ ‘북딱북딱’ 등 일베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기존 비속어마저 일베 용어로 대체됐다”며 “과거엔 교사들이 지적하고 주변 친구들도 만류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그런 말을 하면 ‘선생님 좌빨이냐’ ‘전교조냐’ ‘페미냐’ 등의 말을 한다”고 전했다.

교사 “학생들 과제물에도 ‘일베 용어’…지적 땐 ‘선생님 좌빨이세요?’ ”
배재고 “해당 선수 조치” 사태 수습
‘특정 선수 일탈로 축소’ 비판 목소리

수도권 고등학교 교사 유모씨도 “학생들이 아무 경각심 없이 일베 용어를 쓴다”며 “과제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코알라에 합성하거나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사진과 영상을 만들고, ‘운지’ ‘야 기분 좋다’ 등 표현을 교사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쓴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걸 지적하면 ‘자기는 몰랐다’ ‘그냥 애들이 써서 쓴 거다’라고 말하는데 그 뒤로도 또 쓴다”며 “학생들이 일베 용어가 아니라고 우기면 특별히 지도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전이된 혐오 표현에 대처하려면 규제와 교육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오프라인에서의 혐오 표현 등장은 온라인에서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스포츠 등 특정 영역에서라도 혐오 표현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놀이처럼 즐기는 것은 명백한 의도가 없어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손쉽게 동참하고 피해자까지 생긴다”며 “나쁜 의도가 없다고 해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구 교수는 “학생들은 키득거리며 하는 ‘일베 놀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잘못이라는 걸 모른다”며 “교육 현장도 이런 표현들을 규제하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개인적·우발적 일탈이 아니다. 전반적인 (사회) 구조적 변동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엄격한 매뉴얼과 처벌 강화가 필요하고 민주시민 교육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성세대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른들의 그릇된 역사 인식과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사회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전교조 광주지부는 “5·18에 대한 폄훼를 담은 스타벅스의 ‘탱크데이’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직시하고 분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면서 “기성세대로서 더 성숙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학생들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상처와 부담을 떠안게 한 현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배재고는 학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새로운 논란을 낳았다. 배재고는 “논란에 연루된 ‘해당 학생 선수’를 생활교육위원회에 넘겨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밝혀 사안을 특정 선수의 일탈로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기 중계 영상을 보면 선수들이 단체로 해당 표현을 사용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배재고는 사과문에서 “해당 학생 선수를 즉시 제지했다”고 했지만 광주제일고 코치가 강력 항의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관련 당국은 사실관계 파악 등에 착수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배재고를 방문해 발생 경위와 학교의 후속 조치 등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도 “사실관계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며 “7월1일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개최해 관련 규정에 따라 공정하고 엄정한 절차를 거쳐 필요한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서은·임주영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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