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팹’ 충청 ‘패키징’ 영남 ‘소부장’… 전국을 반도체 기지로

박순찬 기자 2026. 6. 3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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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삼성·SK “3200조 투자”
이재명(가운데)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직후 삼성전자 이재용(오른쪽) 회장과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어 SK그룹 최태원(왼쪽) 회장에게도 인사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오늘 기업인들에게 너무 감사해서 큰절을 하고 싶다고 했다”며 “참모들이 가까스로 말려서 인사만 하신 것”이라고 했다. /뉴스1

정부가 수도권에 이어 호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 기지’로 조성하고, 총 800조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통해 메모리 공장 4기를 짓겠다는 청사진을 29일 발표했다. 또 삼성과 SK가 경기도 용인에 짓고 있는 반도체 생산 기지 건설을 각각 7년, 12년씩 단축하는 등 5년 내 메모리(D램) 생산 능력을 2배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정부는 “대체 불가 K-반도체 강국으로 대도약하겠다”며 속도전(Speed), 거점전(Stronghold), 선도전(Superhead), 총력 지원(Full support)의 ‘3S+1F’ 전략을 펼치겠다고 했다. 수도권이 포화 상태인 만큼 호남권은 ‘제2 생산 거점’, 충청권은 ‘패키징 거점’, 동남·대경권은 ‘소부장 혁신 거점’ 등 전국으로 반도체 자산을 분산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목표는 거창하지만 구체적인 실현 계획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투자액을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투자 일정은 내놓지 않았다.

그래픽=김현국

◇삼성·SK, 4700조 규모 투자 발표

이날 이재명 대통령 주재 간담회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을 직접 밝혔다. 이재용 회장은 “차기 반도체 단지로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했고 최태원 회장도 “서남권에 약 400조원을 투자해 새로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삼성과 SK가 각각 2개의 메모리 생산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삼성그룹과 SK그룹은 총수들의 발표 직후에 반도체 투자액(3200조원)을 포함해 합계 4700조원대의 천문학적인 투자 계획을 내놨다. 삼성은 미래 성장을 위해 총 265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경기 평택·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천 송도 바이오 기지 등에 2030조원, 호남·충청·영남에 반도체와 로봇, 배터리, IT 부품을 중심으로 625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작년 11월 “향후 5년간 국내에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불과 7개월 만에 그 6배 수준의 투자 목표를 공개한 것이다.

용인 클러스터 현장 29일 경기도 용인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 현장 모습.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이날 공시에서 투자 시기를 2040년까지로 명시하며 ‘규모 및 일정은 추후 변경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30분쯤 뒤 정정공시를 다시 내고 “상기 중장기 투자 계획은 현재 시황에 근거한 장래 계획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이라며 “향후 시장 상황 및 당사 경영 환경 변화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SK그룹은 반도체(1100조원), AI 데이터센터(1000조원) 등 총 2100조원을 투자한다는 자료를 냈다. 반도체에선 기존에 밝힌 용인 클러스터(600조원)와 청주(100조원) 투자 계획에다 서남권 반도체 투자 계획(400조원)을 추가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관련 공시에서 투자 일정에 대해 ‘이사회 승인을 거쳐 확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 그룹의 투자 액수는 발표 당일까지도 계속 바뀌었다고 들었다”며 “급조된만큼 반도체 시황 변동에 대한 우려, 막대한 투자 결정에 대한 책임 부담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국

◇“실현 가능성 있나” 우려도

반도체 업계와 학계의 반응은 분분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신규 투자 계획은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 상황에 적시 대응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6단체는 “국가 핵심 산업 경쟁력 제고와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견인하는 청사진”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 (사업을 챙기는) 직할 담당관을 두고, 제가 직접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챙겨서 신속한 집행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만큼 기대감이 나온 것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컸다. 이날 주무 부처 장관들이 반도체 전력·용수 공급과 거점 도시 조성 방안을 발표했지만 ‘차질 없이 적기 공급’ ‘기업형 첨단 도시 조성’ 같은 선언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은 없었기 때문이다. 강성철 울산과학기술원 반도체소재부품대학원 교수는 “반도체는 타이밍이 핵심인데 공장 관련 각종 문제를 대통령이 나서서 챙기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한 건 고무적인 일”이라면서도 “호남은 반도체 공장을 위한 전력·용수·인력 생태계가 사실상 전혀 구축돼 있지 않아 맨땅에서 처음부터 일궈 나가야 하는데 발표에는 구체적 방안은 없었다”고 했다.

용인 클러스터 건설을 최대 12년 앞당긴다는 정부 계획에 대해서도,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단축이란 목표는 바람직하지만 각종 인허가 절차와 주민 보상 문제 등에 걸리는 기간을 어떻게 간소화할 것인지 뚜렷한 대책이 없어 현실화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정부 발표가 있었지만 현 상태라면 일정 단축이 어떻게 가능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며 “공장 건물은 완공할 수 있겠지만 실제 장비 반입과 대량 생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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