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반도체 대전환②] 용인의 교훈…호남 성공 열쇠는

이수진 기자 2026. 6. 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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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반도체 800조 투입…정부, 패스트트랙 전폭 지원
전력·용수·인재 3대 난제…국가 주도 인프라 확충 절실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 변동성…세밀한 시장 대응력 관건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

정부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공식 지정했다. 반도체, 피지컬 인공지능(AI), AI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총 800조원을 투입해 호남권에 메모리 팹 4기를 구축하는 대규모 지역 투자가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이 같은 비전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과거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성공의 열쇠는 투자 발표 수치가 아니라 전력, 용수, 소부장 생태계, 핵심 인재 등 기반 인프라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800조원 투입해 메모리 팹 4기 구축…글로벌 AI '속도전'

29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 따르면 서남권 반도체 거점에는 총 800조원이 투입돼 삼성전자 2기, SK하이닉스 2기 등 총 4기의 메모리 생산시설(팹)이 조성된다.

정부는 이번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5년 내에 국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늘어난 반도체 생산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충청권은 첨단 패키징 기술을 집중 육성할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글로벌 AI 경쟁을 미국과 중국의 '국가 대항전'으로 규정하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특히 기존 용인과 평택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거점이 이미 전력과 용수 공급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력과 용수, 안정되고 값싼 용지가 풍부하며 신재생에너지가 밀집한 서남해안 일대를 새로운 거점으로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용인의 교훈'과 정부의 '패스트트랙' 약속

전문가들은 호남 클러스터 구상이 실현되려면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인프라 지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19년 발표된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는 환경영향평가와 토지 보상, 지자체 간 용수 갈등으로 첫 삽을 뜨기까지 6년이 걸렸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기업이 원하는 시점에 부지를 공급할 수 있도록 계획과 보상, 설계 절차를 동시에 병행 추진하는 '패스트트랙'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10년 이상 걸리던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하겠다는 목표다. 이 대통령 역시 청와대 안에 직할 담당관을 두고 프로젝트 집행을 직접 챙기겠다며 추진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출처=연합]

◆팹 가동 최대 뇌관…국가 주도 '전력·용수' 인프라 확충

팹 가동을 위한 전력과 용수 확보, 그리고 생태계 재구축이 핵심 난제다. 전공정 팹은 24시간 끊김 없이 가동돼야 하므로 순간적인 전력 차질만으로도 막대한 생산 불량이 발생한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산단에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활용해 전력을 공급하고, 송전망과 접속 선로를 신속하게 구축하는 등 국가가 직접 인프라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용수 역시 다목적댐과 대체 수자원을 활용하고 도수관로 건설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할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초고압 송전망 확충에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 수도권에 밀집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를 호남권에 새롭게 구축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핵심 인재 유치 비상…'기업형 첨단도시'가 관건

고질적인 반도체 인력 수급 불균형 속에서 고숙련 엔지니어와 석·박사급 핵심 인재를 광주·전남으로 유인하는 것도 핵심 과제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규제 철폐를 전제로 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기업형 첨단도시'를 조성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기업 제안형 주택과 청년 눈높이에 맞춘 주택을 공급하고, 대학 내에 산학연 허브인 '캠퍼스 혁신 파크'를 구축해 첨단 산단, 연구기관, 대학이 하나로 연결된 혁신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또 국가교통망, 대중교통, 첨단 물류체계를 패키지로 묶어 출퇴근 및 생활권은 30분, 공항 및 항만 등 수출입 물류권은 1시간 이내로 단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광주·전남 지역 역시 이번 통합에 따른 지원금 중 적게는 5조원에서 많게는 20조원 전체를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력난 해소와 투자 동력 확보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책도 본격 가동된다. 정부는 10만 명 규모의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로드맵에 속도를 내는 한편, '반도체 특별법'에 기반해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특별위원회 및 혁신지원단을 운영할 방침이다. 아울러 내년인 2027년에는 약 2조원 규모의 '반도체 특별회계'를 신설해 기업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맡는다는 구상이다.

◆2027~2028년 '공급 과잉' 리스크…정교한 수급 관리 필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출처=연합]

호남 클러스터의 대규모 투자는 AI 반도체 호황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제하에 추진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서버용 제품 비중이 57%까지 상승하며, 내년 상반기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이 20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역시 전 세계 300㎜ 웨이퍼 팹 장비 투자가 2024년 약 1000억 달러에서 올해 1330억 달러, 2029년 1720억 달러로 지속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TSMC,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의 신규 팹이 순차적으로 양산에 돌입하는 2028년 전후다. 신규 설비 증설이 본격화돼 시장에 물량이 한꺼번에 풀리면 현재의 칩 공급 부족 현상이 역전될 수 있다. 딜로이트는 2027~2028년경 시장 기대와 실제 수요가 엇갈릴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또한 공급 급증에 따른 가격 조정 리스크를 지적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30년대 중반까지 용인 클러스터 팹 건설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향후 업황이 둔화될 경우 호남 클러스터의 투자 시기나 규모가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현재의 호황이 구조적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장기공급계약(LTA)을 통한 물량 확보와 차세대 공정 전환 등 정교한 수급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패를 가를 핵심은 인프라 구축의 '속도'와 '글로벌 수요 대응'으로 귀결된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업 투자의 성패는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듯, 800조원이라는 수치나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구호에 머물지 않고 전력, 용수, 인재 인프라를 얼마나 적기에 공급해 내느냐가 진정한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여기에 2028년 전후로 예상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 과잉 리스크를 방어할 기업의 정교한 수급 관리 능력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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