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나라’ 스위스에서 찾는 부동산 해법의 실마리 [평범한 이웃, 유럽]

지난해 1월, 스위스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라라 슈톨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6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한 아파트 앞에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촬영한 이 단순한 영상은 인스타그램에서만 조회수가 400만 회를 넘겼고, 연동된 페이스북까지 포함하면 1000만 회 이상 조회됐다. 대체 영상이 무슨 내용이기에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영상 속 사람들은 스위스 취리히에 월세 매물로 나온 한 아파트를 둘러보고 임대 신청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부엌과 거실, 방 한 개로 구성된 이 아파트의 월세는 1100스위스프랑(약 210만원). 집세가 세계 최고 수준인 취리히에서 이 정도의 낮은 금액으로 아파트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에 신청자가 몰린 것이었다. 영상을 올린 라라 슈톨 역시 신청자 중 한 사람이었다. 슈톨은 해당 게시물에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지만 이 영상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왜곡되기 시작했다. “주택난과 집세 상승은 모두 이민자 때문”이라며 인종차별적 내용의 댓글이 폭발했다.
독일 중도 우파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의 한 지부는 라라 슈톨의 영상을 가져가 자신들 채널에 올리고는, 해당 장면이 독일에서 촬영됐고 줄 선 사람이 대부분 이민자라고 주장했다. 슈톨이 이를 부인하며 게시물 삭제를 요청했지만 CDU는 오히려 슈톨을 차단해버렸다. 이 일이 있고 4개월 후 인터뷰에서 슈톨은 영상이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아파트를 찾고, 보고, 계약하고, 이사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안전한 주거에 대한 근본적 권리를 위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민자 유입으로 주택 수요가 늘어난 건 맞지만 공급 부족 사태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숙련 노동자가 필요해 이민자를 고용해놓고 그들이 살 집을 필요로 한다고 불평해서는 안 되죠(2025년 5월7일 〈타게스 안차이거〉 인터뷰 중).”
스위스의 임대난은 심각하다. 2000년부터 2025년 사이에 주거용 임대료(월세)는 약 45% 올랐고, 물가 높은 스위스 최대 도시 취리히는 같은 시기 약 60% 상승했다. 교통이 편리한 취리히 시내 또는 전망 좋은 호숫가 지역에서는 현재 100㎡가량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적게는 4000스위스프랑(770만원) 선이고, 신축에 전망이 좋으면 그 두 배에 이르는 일도 흔하다. 라라 슈톨이 올린 영상 속 아파트는 저렴하고 드문 공공주택 매물이어서 사람들이 더 몰린 것이었다. 임대료뿐 아니라 물량 자체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인구가 증가하고 1인 가구가 늘면서 주택 수요는 계속 커지는데 신규 건설은 부족하다. 2025년 말 기준으로 취리히의 주거용 주택 공실률은 0.06%다. 빈집이 1만 채 중 단 여섯 채뿐이라는 뜻이다. 이는 유럽은 물론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최저 수준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 런던은 공실률이 4%, 샌프란시스코는 6%다. 이러니 비싼 매물이 나와도 금방 사라진다. 평균 거래 기간은 16~18일에 불과하다(취리히대학 지리학과 조사).
‘내 집이 필요하다’ 인식, 한국과 비교하면
스위스는 ‘세입자의 나라’다. 자가 점유율(자신이 소유한 집에 직접 거주하는 비율)이 36%로 유럽에서 가장 낮다. 주거비(임대료, 관리비 등)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매우 높다. 정부는 소득의 30% 이하를 주거비에 쓰는 것을 권장하지만 저소득층은 이 비율이 50%를 넘어서기도 한다. 무리해서 집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쉽지 않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자기 자본 20%가 있어야 하고, 대출이자(최저 연 5% 수준)와 유지보수 및 부대 비용 등을 포함해 주택 소유와 관련된 비용이 월 소득의 3분의 1을 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집값 자체가 비싸다. 그러다 보니 스위스에서 내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둘 중 한 명에 그친다. 한국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자가 점유율은 58%이고,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약 16%로 낮다. 내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87%에 이른다(국토교통부 ‘2024 주거실태조사’와 스위스 연방통계청).
임대난을 피할 한 가지 방법은 살던 곳에서 계속 사는 것이다. 스위스 임대차법상 일단 계약을 맺고 나면 집주인이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고 나가라고 강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준금리가 하락할 경우 세입자가 임대료를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신축 주택이나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경우, 또 세입자가 바뀌는 경우에는 집주인이 임대료를 시장가격에 맞춰 재량껏 설정할 수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살던 곳을 떠나 새집을 찾을 경우 비슷한 조건이라도 월세가 훨씬 높아지는 위험 부담이 생긴다는 뜻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런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곳에서 임대난은 사회문제일 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는 여러 접근법 중 크게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접근법은 국민투표의 나라답게 새로운 규제를 투표에 부치는 것이다. 6월14일 취리히 칸톤(주) 주민들을 대상으로 치르는 투표 안건 중 하나가 임대차법에 관한 것이다. 취리히 임차인 협회가 주도하는 ‘주거보호 이니셔티브(Wohnschutz-initiative)’

리모델링 후 월세 인상 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임차인 협회나 좌파 정당은 이것이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하지만, 우파 정당이나 일부 경제학자는 이런 접근이 시장을 왜곡해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바젤에서 이 조치를 시행한 이후부터 식기세척기 설치 같은 사소한 개보수조차 주택보호위원회 승인을 거치게 됐고, 리모델링해봤자 임대료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노후 시설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에너지 효율이 높은 리모델링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난방 시스템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식의 흔한 리모델링에도 집주인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뷔에스트 파트너(Wüest Partner)의 보고서에 따르면, 임대료 인상이 통제된 제네바에서는 지난 20년간 건축 사업이 위축됐고 주거용 건물의 80% 이상에서 여전히 기름이나 가스 난방을 하고 있다. 한 부동산 개발업체 관계자는 임대료 인상 제한을 “세입자, 집주인, 투자자, 건설업계 모두에게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는 ‘관료주의적 괴물(Bürokratiemonster)’”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 이들이 주장하는 해법은 뭘까? 시 외곽 지역에 더 많은 주거용 건물을 지어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달콤한 특권’이라 불리는 공공주택
임대난에 맞서는 두 번째 접근법은 공공주택을 확대하는 것이다. 공공주택이란 시에서 원가로 임대하는 주택으로 월세가 시장가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임대아파트 입주민을 비하하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지만, 스위스에서는 공공주택 입주에 당첨되는 것을 ‘달콤한 특권’이라고 부른다. 소득과 자산 등 시에서 정한 자격 기준이 있지만, 자격이 안 되는데도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입주권을 얻는 일이 있어 종종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다 2014년 일이 터졌다. 당시 스위스국민당(SVP) 소속 의원이던 헤디 슐라터가 수백만 스위스프랑의 자산가임에도 취리히 호숫가의 공공주택을 저렴한 가격으로 37년 동안 임대받아 별장으로 써온 사실이 스위스 일간지 〈타게스 안차이거〉의 보도로 드러난 것이다. 슐라터는 다른 지역에 별도의 큰 저택까지 소유했다. 극우 정당 소속으로 사회복지 지출 삭감을 끊임없이 촉구해온 의원이 복지제도를 남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규정이 2019년 만들어졌다. 그 과정 중 공공주택 거주 연장 심사에서 떨어진 한 임차인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새로운 규정은 공공주택 방 개수를 가구원 수보다 하나 더 많은 것을 허용했다. 가족이 넷이면 방 다섯 개짜리 주택까지 지원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해당 임차인은 방 다섯 개짜리 공공주택에 25년째 혼자 살고 있었다. 하급심은 일방적으로 새 조건을 적용해 계약을 변경하는 것은 임차인에게 불리하며 납세 자료 등 조회와 관련해 데이터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임차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해당 주택이 공공 재정의 지원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시민에게 혜택이 고루 돌아가도록 제한을 두는 것이 공익적 관점에서 정당하다는 점을 들어 취리히시의 손을 들어주었다(2024년 8월). 이는 임대난 속 공공주택 제도가 실효를 가질 수 있도록 사법부가 강력한 법적 정당성을 부여한 판례로 평가받는다.
세 번째 접근법은 큰 집 거주자를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유인하는 프로젝트다. 한번 계약된 임대료는 거의 인상되지 않기 때문에 자녀 독립 후에도 수십 년간 불필요하게 큰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도 그동안 오른 시장 임대료 때문에 기존 집에 계속 사는 게 월세 지출을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소유한 취리히 일부 대단지 아파트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단지 내 작은 아파트로 옮기면 단위면적당 임대료 단가를 전과 똑같이 유지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면 세입자는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할 동인이 생기고, 기업은 공실이 된 큰 집을 더 높은 월세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서 이익이다. 양쪽이 다 만족할 해법이지만 이 같은 주거 하향 이동 유인 프로젝트를 대부분의 민간 주택으로 확대 시행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
세입자의 나라인 스위스와 부동산을 자산 증식 수단으로 보는 한국의 주거 문제 양상은 꽤 달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겹치는 부분들이 있다. 집값이나 임대료가 과거보다 훨씬 올라 세대 간 주거권에 차이가 생긴 점, 주거 복지 제도의 혜택이 취약층에 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주택의 에너지 효율성과 인구구조에 따른 수요·공급 불균형이라는 새로운 변수도 나타났다. 스위스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여러 방식이 한국 사회에 작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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